인터뷰어: 용석, 인터뷰이: 뭉치
전쟁없는세상 주:
뭉치(김민영)가 2020년 2월부터 전쟁없는세상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뭉치는 쭈야의 뒤를 이어 전쟁없는세상의 무기감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이자 사무국 활동가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뭉치 님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17살 때부터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영화 <벌새>를 보면 은희가 맨 마지막에 선생님한테 편지를 읽고서 수학여행 버스를 타는 그 순간에 자기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 시선이 뭔가 내 열다섯 살 때 시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 시점이 저한테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 뭉치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사회운동을 해야겠다’ 혹은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청소년 때부터 한 거예요?
저는 17살때부터 NGO 활동가가 장래희망 란에 항상 있었어요. 엄마가 활동가였는데 사실 저는 엄마 일에 관심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2008년이었는데 한참 촛불집회를 하고 경찰은 광화문에서 명박산성을 쌓고 이럴 때였어요. 저는 그때 서울에 없었거든요. 담양에서 대안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처음으로 광주를 갔어요, 5월에. 5월 18일을 앞두고 망월동 묘지를 한바퀴 돌고 그 다음에 도청앞에서 열리는 전야제에 참가를 했는데, 그 문화제가 자연스럽게 촛불집회로 된 거예요. 그때부터 친구들이랑 같이 촛불도 들고, 중간 방학 때는 같이 광화문 촛불집회도 갔어요.
지금 활동가인데, 꿈을 이룬 거네요?
그렇죠 저 그래서 되게 감격스러워요. 그런 거 생각하면. 근데 생각해보면 사실 이미 17살때부터 활동가였는데 나는 그때 활동가가 될것이랄고 생각했지 당시 하던 일을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취직하고서야 갖게 됐어요.
첫 취직도 NGO 단체였잖아요. 취직을 해보니까 어땠나요? 활동을 하는 거랑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는 건 또 되게 다르잖아요.
처음에는 마냥 좋았던 거 같아요. 너무 신났어요. 저는 광장에 나가서 피켓 들고 소리 치고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하고 거기 나가서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걸 좋아했는데, 그 일은 언제든지 같이 하고 고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겨서 되게 꿈같았고, 심지어 돈을 줘요, 그 일을 하면. 그게 너무, 되게 신기했어요.
감옥에서 비리 공무원이 같은 방에 있었는데, 대추리 투쟁으로 재판 받으러 다니는 저한테 그랬어요. 얼마 받고 집회 다니냐고. 자기가 뇌물 받는 사람이라 남들도 다 돈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돈 주니까 집회 가는 건 아니지만, 집회 기획하고 조직하고 참가하면서 돈 받은 건 맞네요(웃음).
그러네요(같이 웃음). ‘전문 시위꾼’이네, 진짜.
판을 까는 사람
활동가들이 되게 다양한 일을 하는데, 뭉치는 거리에 나가서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는 이런 일들을 좋아하는 편인가 봐요?
네 그런 일은, 뭐라고 해야 할까, 제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그런 소스인 거 같아요. 사실 그 일을 맨날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전에는 무조건 되는 대로 하자는 편이었는데, 직장생활하면서는 활동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전에는 다른 활동가들이 깔아놓은 판에 가서 그냥 열심히 소리 치고 오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판을 까는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전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포인트가 된 거죠 그게.
판을 까는 일을 해보니까 어때요?
되게 어려웠어요 저는… 그걸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시에는 근처에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판을 어떻게 깔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잘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잘 하고 싶은 일이에요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듯이 활동가들도 다 잘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집회에서 사회 보는 일을 잘하는데, 어떤 사람은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은 싫어하지만 무언가를 조사하고 연구하고 이런 일을 잘하기도 하고. 또 기질이나 성향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기도 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할 때도 있죠.
저는 그런 역할도 잘 하고 싶어요. 이전에 못해봤던 역할이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것도 스스로 좋아하기도 하고.
똥 꿈으로 시작한 전쟁없는세상
최근에 전쟁없는세상 사무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잖아요. 전쟁없는세상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어요?
제안 받은 날이 마침 비폭력 트레이너로 처음 트레이닝을 진행한 날이었어요. 제주로 갔다가 돌아와서 전쟁없는세상에서 진행한 병역거부 상담 교육, 시우님 강연을 들으러 갔어요. 강연 끝나고 나서 뒷풀이 가는 길에 제안을 받은 거였는데, 깜짝 놀랐어요. 깜짝 놀랐는데 그 날 밤에 꾼 꿈이 예사롭지 않아서 오늘 무슨 일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무슨 꿈 꿨어요?
똥 꿈이요(박장대소). 제안 받았을 때 처음에는 되게 감사했어요. 내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나랑 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주신 거니까. 그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해서 걱정이 됐어요. 저는 좀 용감한 결정을 한 거예요.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기로 한 거는. 왜냐면 비폭력 트레이너를 하면서 비폭력 프로그램은 무슨 일을 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고 병역거부도 접했던 주제였는데 무기 감시 운동은 전혀 모르거든요.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기도 마음먹은 건 무기 감시 운동에 대한 기대보다는 전쟁없는세상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거일 수도 있겠네요.
처음에는 전쟁없는세상의 제안이라서 마냥 좋았죠. 그 다음에는 무기 감시 운동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때가 아덱스 저항행동이 끝난 직후였는데 저한테는 아덱스 저항행동이 처음으로 접해본 무기 감시 운동이었어요. 그냥 재밌게 참여했어요. 근데 그때는 무기 감시팀 활동가가 무슨 일 하는지 몰랐어요. 무기 감시팀 코디인 쭈야가 내가 되게 좋아하는 활동가니까 멋있는 일 하는 것 같다는 생각 정도만 했죠.
아덱스 때 무기와 난민 토크쇼 했잖아요. 그때 좀 더 발견했던 거 같아요. 아덱스 직접행동은 그냥 재밌었고, 그 토크쇼가 저는 되게 아프더라고요. 한국 사회의 그 이중적인 태도가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가해자라는 측면이 가려져 있으니까. 우리 안의 괴물 같은 모습을 계속 가리니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데…
그리고 나서 작년 11월 평화활동가 대회 갔어요. 거기서 마지막 날에 여러 이슈들 놓고 도전하고 싶은 거, 중요한 거, 시급한 거 투표했었잖아요 평화활동가들이. 도전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서 무기 거래 감시하는 운동으로 뽑혔더라고요. ‘아 이게 진짜 도전해야 하는 거구나’ 해봐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전없세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거기 모인 평화활동가들이 무기 감시 운동을 한국 사회에서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이게 되게 중요한 거구나, 그때 쪼금 알게 된 거 같아요.
전없세를 거쳐간 활동가들 대부분이 전없세를 통해서 서로 성장했던 거 같아요. 뭉치에게도 전없세가 성장을 촉진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전없세에서 일하는 게 나한테 좋은 기회인 거 같아요. 성장에 대해 목말라 했었거든요. 그때 내가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뭔가를 같이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던 곳이 전없세였어요. 평화캠프 처음 갔을 때 3박 4일 동안 되게 많이 배웠는데 전없세에서 같이 일하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관계에서 오는 배움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전쟁없는세상에서는 중요한 의사 결정이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원칙으로 세우고 있고, 전없세 활동가들이 오래 활동한 사람이나 최근에 시작한 사람이나 항상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았어요.
노력은 하지만 전없세도 완벽하게 평등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오래 활동한 사람들의 말에 더 무게가 실리죠. 정보나 경험도 더 많고. 완벽한 평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아요. 어느 조직이든.
노력이 중요한 거 같아요. 항상 되돌아 봐야 하고. 그런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전없세에서 내가 생긴 그대로 있을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서 그게 좋았던 거 같아요.
예전에는 전없세는 쉬고 싶을 때 오는 곳이었어요. 안식처 같은 곳.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일터가 되어버리면 안식처를 잃을까봐. “내가 굳이 여기를 내 안식처로 마련해 놓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를 가면 좋을까?” 이렇게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엄마는 니가 좀 더 더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가라고 하셨죠.
뭉치가 되고 싶은 활동가의 모습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져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한테 주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뜯어 말리는 사람 밖에 없었고, 활동가라는 직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우리 엄마는 최근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래요. 저도 최근까지 석사 같이 공부 했던 친구들이, 제가 활동하는 사진 SNS에 올리니까 뭘 하는 줄은 아는데, 제가 이게 직업이라고 말하면 “너 그거 하고 돈을 받아?” 이러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이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 못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 평생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저렇게 살고 싶으면 살아도 되는 구나, 안심을 줄 수 있는 사람. 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기 불안하고 다들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현실이거든요, 저한테는. 활동가로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더라도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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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 들려주신 뭉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전쟁없는세상에서 멋진 평화활동 만들어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