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jungmin.duck@gmail.com)
작년 말 출간된 에리카 체노웨스와 마리아 J. 스티븐의 책 <비폭력 시민운동은 왜 성공을 거두나(Why Civil Resistance Works: The Strategic Logic of Nonviolent Conflict)>를 이제야 다 읽었다. 코로나로 집콕이 권장되면서 그나마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까운 상황이긴 하지만 이 기회를 빌어 공부를 하고 내공을 쌓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영어로는 2011년 발간된 책, 각종 통계자료 등으로 일반 독자대중이 읽기에는 쉽지 않은 이 책이 늦게 라도 번역, 출간된 데에는 2016~17년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정국에서 체노웨스 교수의 테드 강연(2013) 중 3.5%의 법칙(운동의 절정기에 인구의 3.5%가 참여한 사례 중 실패한 사회운동은 없다)이 소개된 덕이 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뉴스를 보고 고무되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조사된 바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법칙이 언론에 소개된 그 주와 그 다음주 촛불집회에 주최측 추산 각각 190만, 232만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 인구의 3.5%면 180만이 조금 넘는데 우연치 않게 그 룰을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물론 232만이 참여한 제6차 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주위 사람 관리 잘못한 죄밖에 없으며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 하야 못하겠으며 대통령 직에 관한 문제는 국회에서 해라) 이후 국민들의 분노가 정점에 달했고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날짜 바로 이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집회 주최측의 전략적 조직화의 공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체제변화, 외국 점령군의 추방, 분리독립운동의 사례들 중 눈에 띄는 사례 323건(그 중 비폭력운동 106건)을 조사해 비교, 분석함으로써 비폭력운동이 폭력운동보다 언제나 전략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사회과학적 논리로 증명해낸다. 비폭력운동은 발생빈도와 성공률이 계속 증가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폭력운동은 끈질기게 지속되었지만 성공 확률은 계속해서 감소해왔다. 사실 비폭력 저항운동이 성공이나 부분성공을 이룬 경우는 폭력 운동에 비해 거의 두 배에 이른다. 분리독립운동의 영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운동 영역에서 비폭력운동은 폭력적 운동에 비해 월등히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특히 이 책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저항운동(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등)의 사례에서는 오직 비폭력 저항운동만이 성공을 거두었다. 저자는 이렇게 비폭력 저항운동이 폭력운동에 비해 성공적인 이유를 시민참여를 끌어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것이 운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비폭력운동은 시민들의 참여와 헌신을 가로막는 도덕적, 신체적, 정보의 장벽이 낮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의 참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수록 운동의 회복력이 높아지고 다양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어 권력이 자신들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의 현상유지비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이는 많은 운동의 경우 승리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체제 지지자들의 충성도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 책은 더 나아가 운동이 성공한 이후 비폭력 저항운동이 훨씬 더 탄탄하고 평화롭게 민주주의로 이동하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우리의 가까운 역사에서는 사실 본격적인 무장투쟁이랄 사례들이 없어서 그런지 비무장투쟁의 효과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주장이 썩 와 닿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없는세상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비폭력프로그램도 왜 비폭력이냐는 질문을 매번 받고는 한다. 비폭력이 집회에서 (경찰 혹은 용역에 대한) 시위대의 작은 대항폭력을 비난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흔하다. 비폭력이라는 말이 애초에 폭력에 대당하는 말이기 때문에 폭력(투쟁이나 시위)이 애초에 없는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는 좀 뜬금 없다거나 뭔가 의도한 바가 있어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연구를 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하지만 이러한 오해는 대부분 비폭력을 합법이나 준법과 혼동하면서 오는 것이라 본다. 여기서는 얘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하지만 이 책의 사례가 비폭력보다는 훨씬 많은 폭력투쟁의 사례를 싣고 있는 것처럼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폭력을 자신들의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필리핀의 New People’s Army나 네팔, 리비아 등 최근까지도 무장 투쟁의 목록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사례로는 1960년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419혁명, 1980년 전두환 독재에 저항한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이 각각 성공한, 실패한, 부분적으로 성공한 비폭력 운동의 사례로 올라가 있다.
2016년 10월 29일, 주최 측 추산 3만의 첫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이를 심사해 최종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기로 결정, 3월 31일 대통령 구속으로 이어지는 7개월 간의 이 시위는 철저히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조차 딱히 없었다. 12월로 접어들며 날씨가 추워져 참여자의 수가 줄어들 거란 예상을 깨고 촛불은 점점 커져 12월 3일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숫자가 모이면서 클라이막스를 찍었다. 전국 1,533개 단체가 참여한 촛불집회의 주최측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더욱더 많은 시위대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한국의 잘 발달될 IT 인프라를 이용해 시민들을 독려했다. 전국의 오프라인 촛불집회 현황을 취합해 만든 ‘대동하야지도’를 만들고 촛불집회의 온라인 생중계로 여러 가지 사정상 집회에 직접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의 참여를 도왔다. 덕분에 책에도 한국의 사례 중 하나로 소개된 87년 6월항쟁은 그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난 뒤 본격적으로 폭발한 반면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에 100만명이 모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4주였다. (각주1) 이 외에도 퇴진행동은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집회 아이디어를 모으고 매 집회에 수화통역사를 두었으며 집집마다 현수막 걸기, 1분 소등, 1분 경적 울리기 등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술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학생파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운동에 참여했지만 결국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것은 다양한 연령, 계층, 지역, 종교, 성별 등에서 참가한 주말 대규모 거리시위 덕분이었다.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여당 소속 의원 중 과반이 넘는 인원이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정치적 성향으로 나눴을 때 상당수가 ‘보수’로 분류되는 헌법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함으로써 핵심지지층의 충성심 이동 역시 확인되었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탄핵이 부결될 경우 기무사가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조총련과 묶어서 간첩사건으로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국군 기무사령부는 계엄령 선포를 검토했었다고 한다.
사실 촛불집회는 (정치)체제의 변화를 꾀했다기 보다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정상적 작동을 요구하는 시위로서의 성격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단순했고 일면 보수적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구호나 요구사항이 어느 정도는 보편적이어야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보편적이지 않은 요구를 하는 사회운동은? 애초에 그런 어마어마한 대중을 동원하기조차 어려운 아젠다를 가진 그런 운동은(예를 들면 병역거부운동이나 소수자운동)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체제변화, 외국 점령군의 추방, 분리독립운동과 같은 대규모의 사회운동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소규모 캠페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책의 제2부에서 이란 혁명,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필리핀 피플 파워 혁명, 버마 혁명을 비교하며 분명한 것은 대중동원은 성공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운동이 성공을 거두려면 다양한 성격의 지렛대가 필요하고 이것은 전략적 창의성과 혁신으로 가능하다고 썼다. 이를 위해 운동의 단합력과 네트워킹, 충성심을 이동시킬 수 있는 전략 혹은 중간지대의 존재, 외부의 지원, 운동의 탄력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전략적 창의성과 혁신이 없으면 많이 모였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전략적 창의성과 혁신을 탑재한 운동은 많이 모이지 못했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 많이 모일 수 없으면 오래 모이고, 온라인을 통해 운동의 외연을 부풀리고, 자진해서 감옥에 가는 등의 전략으로 권력의 탄압을 극적으로 확대해서 대중의 연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기득권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처럼 그 기득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우리도 똑똑해져야 할 것이다. 창의성과 혁신을 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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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주간경향 1370호 [특집]촛불 민주주의와 인터넷 민주주의는 대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