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시아 인로 Cynthia Enloe(<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저자)
번역: 쥬(전쟁없는세상 비폭력팀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신시아 인로는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이론가, 교수로서, 젠더와 군사주의에 관한 작업과 페미니스트 국제 관계 분야의 기여로 알려졌다. 인로 교수는 WILPF 학술 네트워크의 구성원이다. 국내에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바나나, 해변, 그리고 군사기지> 같은 책들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글은 2020년 3월 23일 여성국제평화자유연맹(WILPF)에 처음 게재되었고,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다.  이 글은 비록 미국적 맥락에서 쓰였지만, 6월 3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한국 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천막학교를 운영했다”고 언급하는 등 한국에서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옮겼다.

 

도시들과 온 국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병 “곡선을 완만하게” 하기 위해 폐쇄 명령을 내리면서, 우리는 이 위험천만한 시기에 우리가 집단적으로 해야 할 일에 관해 잘못된 비유를 사용할 유혹에 빠져 있다. “전쟁”은 현존하는 위험에 맞서기 위한 공적·사적 자원의 동원에 관해 가장 현혹적인 비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누차 가르쳐준 바 전쟁은 무수한 국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성차별과 인종차별, 동성애혐오, 독재, 비밀주의, 외국인혐오를 부추겼다. 이 중 무엇도 바이러스의 범세계적 유행을 예방하지 못한다. 결코 믿을 만한 과학과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증진하지도 못한다.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 범세계적 유행 이후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지 못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전쟁이 유혹적인 비유인 이유는 바로 대중과 문화적·정치적 지도자들 다수가 전쟁을 취사 선택하고, 우리가 각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취사 선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로 두려움에 떠는 미국인 대다수는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이 장밋빛 전쟁의 비유로 선호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수많은 영화에서 해설되고, 수많은 공공 추모식에서 기념되었듯, 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인 모두가 협동하고”, “모두가 희생한” 시기였다. 전쟁은 우리에게 “공동의 목적”을 부여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장병들”을 응원했다. 우리는 “공동의 적”에 맞섰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적은 “악”이었다. 국내 전선에서는 “지아이 조”[1]와 “리벳공 로지”[2]가 모범 시민이었다. 금상첨화로 미국인들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구원자”로 기억되었다.

반군사주의 페미니스트로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따른 심각한 국제적·지역적 난관에 최선의 대응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우리는 사회 정의와 젠더 평등, 지속 가능한 평화를 증진하는 접근법을 구상해보려 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전쟁의 반대쪽 극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을 감상적이고 취사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가장 애정하는 전쟁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증진했다.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2차 세계 대전의 낭만화된 버전에서 전쟁은 “사람들의 협동을 이끌어냈고”, “모두가 자신의 몫을 다 했으며”, “평화가 승리했다”. 지 아이 조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고 꿈꾸던 집을 살 수 있었다. 로지는 육아 서비스와 정당한 보수를 받았다 – 잠깐이나마 말이다.

달리 말해,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전쟁과 페미니즘적 평화 구축이 서로 반대된다고 생각하지만, 강성 군사주의자들은 “정의로운 전쟁”이 승리에 의한 평화의 미명 아래 연대와 정의, 여성의 기회 확대를 촉진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많은 국가에서 그렇듯, 이 취사 선택된 전쟁 기억의 장밋빛 이미지는 전쟁의 경험 중 무엇이 기억될지를 취사 선택하는 것에 달렸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빠른 속도로 퍼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유형의 전쟁”을 수행할수 있다고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1940년대에 죄 없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전시 수용한 것에 관해 잊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랑받는 “정의로운 전쟁” 중에 미 육군과 해군의 계급에 인종분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도 불편할 것이다.

지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블랑슈 바이젠 쿡 Blanche Weisen Cook, 메리 루이스 로버츠 Mary Louise Roberts, 브렌다 무어 Brenda Moore, 잔 와카스키 휴스턴 Jeanne Wakatsuki Houston, 모린 허니 Maureen Honey, 앨리슨 번스타인 Alison Bernstein은 집단적인 장밋빛 색안경을 벗기기 위한 연구를 면밀히 진행해왔다.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성매매를 조장하고, 인종주의적·동성애혐오적·유대인혐오적 관행을 강화하고, 여성에게 거짓 약속을 함으로써 소위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했다.

오늘날 빠르게 퍼지는 질병에 대해 “2차 세계 대전 같은 유형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오직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의 발견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전쟁”에 소요되는 일체의 집단적 민간 노력의 실제 비용에 관해 그들이 가르쳐준 중요한 정치적 교훈을 받아들이기 거부할 때에만 바람직한 전략일 것이다. 효과적이고 포괄적이며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공중 보건을 제공하고자 현대 사회를 동원하려면, 전쟁을 연구한 페미니스트 역사학자들이 우리에게 제시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미빛 군사주의의 솔깃한 유혹을 이겨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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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 지아이 조 GI Joe는 미군 보병을 뜻하는 속어다.

[2] 리벳공 로지 Rosy the Riveter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수 공장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