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예비군 훈련 거부자)

 

대체복무 도입이란 진전,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힌 현실

올해 10월이면 대체복무제가 시행된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대체복무를 배제한 병역법의 병역종류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 하다는 결정을 한 이후로, 대체복무가 도입되는 진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체복무를 도입하는 과정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길처럼 보였다. 병역거부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국가의 안보는 곧 병역이며, 병역만이 신성한 의무라는 주장은 되풀이 되었고, 이로 인해 병역거부자는 잠재적 기피자, 범죄자라는 낙인 속에서 국가가 선별해야할 대상일 뿐이었다.

대체복무 도입 과정에서 핵심은 대체복무가 군사행위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면서도 사회공동체의 공공 복리에 기여할 수 있는 복무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제껏 1년 6개월의 징역형으로 형사처벌을 받아온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가 또 다른 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 쟁점이었다. 이에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는 사회복지 및 소방 업무 등의 다양한 업무를 바탕으로(복무영역), 처벌의 성격이 되지 않도록 가장 일반적인 군복무인 육군 현역 복무기간의 1.5배 이내(복무기간)에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합숙/비합숙(복무형태)을 결정해, 군으로부터의 심사과정 독립성을 담보한 대체복무제를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국방부는 36개월(육군의 2배 이내)동안 교정시설(교도소, 구치소 등) 내에서 합숙하는 대체복무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방부는 심사과정의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사위원 추천 시 국방부 병무청 추천 위원이 과반을 넘지 않도록 안을 만들기도 했다.(1년 6개월의 징역형이 3년의 감옥 합숙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역입영대상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는 고지의무는 반영되지 않았고, 현역복무 중에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현역 입영 전, 현역 복무 후에만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를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로 지칭함으로써 양심의 다양한 발로를 종교로 국한하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국방부가 제도를 만드는 핵심 기조는 현역과의 형평성 문제였다. 즉,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때 현역 복무자들이 억울하지 않을 복무기간, 복무형태, 복무영역을 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했다. 대체복무가 국가에서 부과한 ‘역’을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군대에 가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군대에 가든, 대체복무로 감옥에 가든 모두가 국가가 부과한 ‘역’을 행한다는 점에서 자발적이지 않음에도 군대에 간 현역들의 비자발성은 억울함을 풀어줘야할 문제고, 대체복무는 그 억울함을 강화하기 보다는 풀어주는 도구여야한다는 기조가 팽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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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할을 못한 20대 국회 그리고 국방위

사실, 제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회는 이런 국방부의 안을 더 넓은 시각에서 검토하고 평가하면서 법률을 심사하고 입안해야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의 대체복무 논의과정을 보면 오히려 국방부의 안이 통과된 게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국회 제371회 제2차 국회회의록을 보면, 이주영 의원의 경우 대체복무를 손쉽게 하면, 군대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 국가안보태세가 흔들린다며 복무기간도 좀 늘려야 양심을 핑계로 기피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36개월 보다 더 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종명 의원의 경우 유해발굴, 지뢰제거 업무도 대체복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병역거부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군대 안에서 일을 시키는 데에 혈안이었다. 물론 지뢰제거와 유해발굴의 경우 법률 상 비군인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에 군에서의 독립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말이다. 백승주 의원의 경우 병역거부자 심사는 (병역기피를 찾아내고 징집하는) 병무청이 최고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병무청에서 해야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결국 병역거부자들은 잠재적 기피자라는 인식에 기반한 시각이다.

물론 다른 주장을 이야기 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홍영표 의원은 징벌적 형태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된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36개월이 적당하며, 복무형태도 합숙과 출퇴근 둘다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6개월이면 기피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니, 합숙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민홍철 의원도 보충역인 방위병도 출퇴근을 했다면서 합숙을 고집하는 것은 징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이남우 국방부인사복지실장이 현역병들이 어려워하는 것,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계속 합숙을 하면서 근무한다는 점이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를 줄 경우 현역병을 가기 싫어서 병역기피 수단으로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답변을 하자, 더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거나 의견을 더하지 않았다. 애초에 국방부가 제시한 안에 대해서 더 검토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의 대체복무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본래 입법 취지는 사라지고 현역군인들의 상대적 박탈감 해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체복무제가 우리 사회 어떤 영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 또한 없다. 지금의 군대에선 선택의 자유가 제약되어 있기에 현역복무자들이 합숙을 싫어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은 개선할 사항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대체복무 신청자를 잠재적 기피자로 보고 최대한 까다롭게 심사하고 최대한 불편한 방식으로 복무하게 하려고 한다.(현역이 이 모양인데 왜 기피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는 군사훈련을 전제로 국가가 부과하는 현재의 다양한 ‘역’은 병역을 정상으로 혹은 필수적인 것으로 절대화하며, 병역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결국 현역과의 형평성을 전제로, 대체복무를 선택하지 않도록 현역보다 길게 현역보다 힘들게, 더 나아가 현역이 억울하지 않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다 보니 현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대체복무제도는 처벌적 성격이 될 수 밖에 없다.

 

21대 국회는 현역과의 형평성 덫에서 빠져나와야

21대 국회는 현역과의 형평성이란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대체복무가 곧 국가가 부과한 ‘역’의 한 종류가 된 이상, 국가와 법률이 나서서 복무형태 간 우열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군사행위를 전제하지 않는 ‘역’ 또한 어떤 국민이든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제도가 되었으므로, 병역의무 대상자에게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다른 복무영역과 동등한 ‘역’이 되려면, 이를 선택하는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선별하거나 심사하지 않아야 한다. 즉, 심사는 제출 자료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선에 그쳐야 한다.

현역 뿐 아니라 보충역 등 다양한 복무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현역이 형평성의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처벌의 성격이 짙은 교정 시설내로 복무영역이 국한되지 않아야 하고,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채로운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사회복지 시설, 소방 시설, 재난 대응 시설 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 복무형태 또한 복무내용에 조화될 수 있도록 합숙을 못박아서도 안 된다. 사회복지시설이 복무 영역에서 빠진 이유는 당장 합숙시설을 마련할 수 없는 여건에서 합숙이 전제 되었기 때문이다. 복무기간 또한 현역과의 비교가 아니라, 복무 영역에서 필요한 숙련도에 따라 조정되고 논의 되어야 한다. 현역과의 형평성을 기준으로 하다보면,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지며 의미있을 수 있는 대체복무 제도가 왜곡될 수 밖에 없다.

21대 국회, 더나아가 국방위가 이런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기대는 선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요구하지 않고서는 국회는 과거의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현역과의 형평성(그 이면에는 국방의 의무는 곧 병역이며, 병역은 신성하고, 정상이라는 뿌리깊은 인식) 기조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현역과의 형평성 기조를 완화하고 그 이면의 군사행위의 필수성과 우월성을 절대화하는 태도를 상대화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대체복무가 사회에 의미있게 자리매김 하기 위한 비판과 요구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니 국회에 바라고 기대하는 만큼 함께 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