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쟁을 지탱하는가2]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 안보팔이 정치인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으로 돈을 버는 군수산업체들의 전쟁에 대한 책임은 잘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군수산업체들이 전쟁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 솔직한 편입니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합니다. 이 솔직함을 칭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평화를 추구하는 척을 하지 않고 전쟁을 대놓고 반기니 헷갈리지 않습니다. 군수산업체들이 비교적 솔직한 나쁜 놈들이라면,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전쟁을 바라거나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겉과 속이 다른 나쁜놈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다 전쟁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인 가운데서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노벨평화상을 받은 정치인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정치인이 다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북의 군사적 갈등을 해소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인종차별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 같은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공로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노벨상을 받은 정치인도 있고 헨리 키신저처럼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 단지 종전 협정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기도 합니다.

히틀러 같은 예외적인 존재를 제외한다면 현대의 정치인들은 대체로 입으로는 평화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일부는 전쟁이나 군사적인 갈등을 매우 반깁니다. 어떤 경우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전쟁을 조장하고, 기획하고, 실행하기도 하죠. 그런 정치인을 안보팔이 정치인이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군수산업체들이 전쟁으로 돈을 번다면, 안보팔이 정치인들은 때로는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기도 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이득을 챙기기도 합니다. 이런 정치인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볼 수 있고, 특히 더 호전적인 나라나 전쟁을 치르는 나라, 혹은 군사적 갈등 상황에 놓인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안보팔이 정치인들이 왜 전쟁과 군사적 갈등을 반기고,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전쟁으로 표를 모으는 안보팔이 정치인들

사람들은 누구나 공동의 적이 생기면 단결하기 마련입니다. 철천지원수인 자본주의 진영의 리더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 소련이 나치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과 맞서기 위해 동맹을 맺은 것처럼 말입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국내 정치에서도 평소에는 서로 으르렁대던 정치인들이 공동의 적을 상대할 때는 겉으로나마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공멸하지 않기 위한 전략적 동맹일 수도 있고, 서로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각자의 판단 속에서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일 수도 있고, 혹은 동맹인 척 하다가 뒤통수를 치기 위한 위장일 수도 있고, 동상이몽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외부의 적, 공동의 적이 생기면 정치인들도 내부 단결을 외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이건 뭐 시대를 떠나, 지역을 떠나, 이념이나 계파를 떠나 정치의 속성일 것입니다. 이 자체를 비판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전쟁 이슈에서는 극대화 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우선 전쟁이라는 블랙홀은 국내 정치의 많은 이슈를 삼켜버립니다. 특히 비리에 연루되거나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치인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절호의 찬스겠죠. 혹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집권당의 정치인들 또한 전쟁으로 사회에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자신들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안보팔이 정치인들은 우연히 찾아온 안보 위기를 발판 삼아 위기를 탈출하는 기예를 여러 차례 보여주었습니다. 요즘은 잘 안 먹히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보수정당들은 선거 때만 되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거나 과장해서 톡톡히 재미를 봤습니다. 이른바 ‘북풍’이라고 부르는데요,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과 긴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1996년에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 직전에 판문점에서 북한군의 무력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전신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속해있던 당)의 선거 전망은 어두웠었죠. 국회 의석수의 1/3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한국당은 때마침 일어난 북한군의 무력시위를 지렛대 삼아 안보 불안을 대대적으로 부추겼고, 그 결과 당시 제1 야당인 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속해 있던 당)보다 60석이나 많은 139석을 휩쓸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들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기 어렵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됩니다. 위기와 공포가 과장되면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이 희생되기 마련이니까요.

영화 <공작>은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무력 충돌을 기획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른바 ‘총풍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나마 이런 사례는 운 좋게 찾아온 기회를 잘 살린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안보팔이에 맛을 들인 정치인들이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전쟁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베이징에서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박충을 만납니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북한군의 무력시위 덕을 톡톡히 봤으니, 아예 대놓고 활용할 속셈이지 않았을까요? 결국 이 일이 들통나 재판까지 받게 됩니다. 1심에서는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것이 인정되어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2심 재판부는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실을 확인할 증거가 부족하고 사전 모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북한을 접촉한 것만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 위반만 적용해 유죄를 선고합니다. 증거가 불충분했을 뿐이지 정황상 무력시위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황정민, 이성민 등이 출연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이 이 ‘총풍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문만 무성하던 ‘북풍 사건’이 세상에 처음 드러나는 사건이었는데요, 드러나지 않은 정치인들의 ‘북풍’ 공작도 언젠가는 다 밝혀지기를 기대합니다.

안보를 팔아서 돈을 버는 안보팔이 정치인들

안보팔이 정치인들의 활약은 정치적인 위기를 모면하거나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전쟁을 활용하거나 무력 충돌을 조작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군수산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전쟁을 이용한 돈벌이에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 바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부통령인 딕 체니입니다. 딕 체니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1989년~1993년 재임) 시절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이후에 석유회사인 핼리버튼Halliburton에 경영자로 취임하여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 시절을 보내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런닝메이트로 다시 백악관에 돌아옵니다. 행정부와 기업 사이를 종횡무진하죠.

이렇게 고위 정치인이나 국방 관료들이 퇴임 후 군수산업체에 들어가는 일을 ‘회전문 인사’라고 부릅니다. 회전문 인사는 꼭 안보팔이 정치인들과 군수산업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나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이 대법관 등 고위직 판검사를 데려가는 일도 회전문 인사입니다. 이런 회전문 인사들은 자신이 정부의 요직에서 일하며 얻은 정보와 인맥을 일반 사기업의 돈벌이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안보 영역에서는 주로 고위 군인들이 군수산업체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후임들과 거래를 하며 군수산업체에 돈을 벌어다 줍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직업군인 출신 413명이 방위산업체에 취직했습니다.(2011년 연합뉴스 기사 “5년간 직업군인 출신 413명 방산업체 취업”) 정치인들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거래를 성사시키기는 경우도 있지만 방위산업체들이 국가의 규제를 피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살펴줍니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안보팔이 정치인으로 돌아오려는 시도를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이름을 올린 김병관입니다. 4성 장군이었다가 군수산업체의 고문으로 일했던 그는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됩니다.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합니다만, 이런 회전문 인사가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딕 체니가 부통령이 되고, 이라크 전쟁을 이끄는 내용이 담긴 영화 「바이스」. 딕 체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기사를 보시면 됩니다. 국내에선 신동아가 기사를 번역했습니다.

딕 체니는 회전문 인사의 대명사입니다. 국방부 장관이었다가 핼리버튼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고, 다시 미국 부통령이 되었으니까요. 그는 핼리버튼에서 일하는 5년 동안 무려 4400만 달러를 벌었고, 1800만 달러어치 핼리버튼 스톡옵션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부통령이 된 딕 체니는 이라크 전쟁을 주도합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부통령은 실질적인 권한이 많이 없고 명예만 드높은 자리인데, 딕 체니는 아주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핼리버튼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다 줍니다. 핼리버튼은 이라크 전쟁 직후인 2004년 이라크 재건사업으로 110억 달러어치의 계약을 따냅니다. 2위가 벡텔의 28억 달러어치 계약이니 사실상 독점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딕 체니는 당시 핼리버튼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딕 체니는 부통령 그만둔 뒤에도 핼리버튼에서 해마다 15만 달러를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핼리버튼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딕 체니가 아무리 자기들 전직 CEO라고 돈을 공짜로 주진 않습니다. 해마다 15만 달러씩 주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고 재건 사업으로 110억 달러 계약을 몰아준 딕 체니에 대한 답례의 의미였겠죠. 이라크 전쟁은 결국 핼리버튼과 딕 체니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다준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