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쭝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10zzung@hanmail.net)

 

내가 예전에 다니던 직장은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꽤 다양한 단체들의 기획안을 읽었다. 어떤 글은 반짝였고 어떤 글은 희미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목표에서부터 시작했다.

반짝반짝하는 기획안은 대체로 목표가 손에 잡힐 듯 뚜렷했다. 뭘 하고 싶은지가 명확하니 사업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사업이 성공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이 됐고 그 변화에 나도 함께 하고 싶었다. 읽는 사람도 이런데, 실제 사업을 하는 활동가들은 얼마나 신날까 싶었다.

반대로 뭘 하겠다는 것인지 딱 떠오르지 않는 기획안은 목표부터 두루뭉술했다. ‘인식 개선’, ‘권리 지원’ 등의 표현만으로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때로는 과연 사업기간 안에 가능할까 싶은 목표도 있었다. 목표만 보면 당장 새로운 사회의제가 등장하고 법제도와 문화도 바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SMART한 목표’는 바로 이렇게 희미해진 운동 및 캠페인의 목표를 점검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툴이다.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하게, 달성 가능하게, 유의미하게, 시간 제한을 두고

SMART는 ▲구체적이다(Specific) ▲측정 가능하다(Measurable) ▲달성 가능하다(Achievable) ▲유의미하다(Relevant) ▲시간 제한이 있다(Time-bound)는 5가지 요소에서 영어 첫 글자를 떼 온 것이다. 운동 전략 수립에만 쓰는 툴은 아니고 다양한 상황에서 목표 설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구체적이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대한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한다’는 목표는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이지 않지만, ‘법 제정 촉구 국민청원 서명을 벌인다’는 목표는 구체적이다. 여럿이 함께 활동할 때 목표가 아주아주 구체적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매우 어렵고 때로는 오해와 갈등도 벌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차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서 끝내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늘 목표는 ‘굳이 이렇게까지 구체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게 구체적인 것이 훨씬 낫다.

‘측정 가능하다’는 것은 목표의 달성 여부와 정도를 확인하고 이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다’는 목표만으로는 결과를 측정할 수 없다. 반면 ‘차별금지법에 대한 적극적 찬성 여론을 10%p 높인다’는 목표는 구체적이다. ‘20만명 이상의 청원을 받는다’도 구체적이다. 담당자 입장에서 ‘평가’라고 하면 일단 압박감부터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평가 없이는 결코 좋은 운동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측정이 필요하다. 캠페인을 모두 마친 뒤 성과를 평가하려고 하면 부담이 커진다. 그보다는 중간중간 캠페인을 점검하고 방향을 수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조금 더 편할 것 같다.

‘달성 가능하다’는 것은 현재 조건을 감안할 때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당장 세상을 뒤집을 것만 같은 목표는 단체나 활동가의 ‘다짐’으로 유용할 지 몰라도 목표로는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원대한 목표는 오히려 활동가를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성과도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반쪽의 성공’에 불과하고, 아무리 애쓰고 헌신해도 끝내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사람은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차별금지법을 당장 제정한다’’는 목표보다 ‘풀뿌리 조직과 연대해 20만명 이상의 국민청원 서명을 이끌어낸다’가 더 좋은 목표다.

‘유의미하다’는 것은 사회변화에 보다 더 영향을 줄 수 있는 효과적 캠페인을 하는 것이다. 물론 활동가가 하는 일은 모두 사회변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상황에서 더 효과적이고 더 적절한 캠페인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청원으로 청와대가 입장을 밝히도록 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압박하는 것은 꽤 유의미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법 제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민교육을 기획하는 것은 유의미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시간 제한이 있다’는 것은 특정한 시기를 정해서 캠페인을 하고 그에 대해 평가한다는 뜻이다. 활동가들에게는 시급한 일들이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래서 시간 제한이 없는 일은 다른 시급한 일들에 밀릴 우려가 있다. 또한 시간 제한이 있어야 정해진 일정에 따라 평가 및 보강을 하고 더 나은 캠페인을 만들 수 있다. 그냥 ‘서명을 받는다’보다 ‘한 달 동안 서명을 받는다’는 목표가 더 좋다. 그래야 늘어지지 않고 한 달 동안 바짝 서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 SMART하게 목표를 세우는 방법은

SMART하게 목표를 세우거나 점검하는 워크숍 방법도 간단하게 소개한다.

새로운 목표를 SMART하게 세우는 워크숍에서는 우선 모둠 내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다양한 목표를 뽑아본다. 이 단계에서는 되도록 SMART의 기준을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넉넉하게 목표를 뽑는 것이 좋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SMART의 기준으로 각 목표를 평가하면서 각 요소와 동떨어진 목표를 빼거나 각 목표에 SMART한 요소를 보강한다. 만일 모든 목표가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다시 브레인스토밍을 해서 목표를 새로 뽑는다. 이렇게 해서 기준을 통과한 목표들 중에서 가장 SMART한 목표 한 가지를 고른다. 여러 목표를 조합해서 한 가지 목표로 정리해 보아도 좋다.

smart

현재의 목표도 점검할 수도 있다. 유인물에 방사형 차트를 그리고 각 항목에는 S, M, A, R, T를 적는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지금의 목표에 대해 요소별로 점수를 매겨 차트에 표시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중심점에 가깝게 점을 찍는다. 이 점을 연결하면 도형이 나온다.

참가자들은 모둠 안에서 자신의 차트를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목표를 더 SMART하게 바꾸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본다. 중요한 것은 평가보다 대안이다. 현재 목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논의하기보다는 어떻게 더 좋은 목표를 수립할지에 집중해 논의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목표는 운동의 첫 단추… 다 같이 끼우자

SMART 목표 툴은 장기적인 운동이나 캠페인을 시작할 때나 현재의 목표를 점검하려 할 때에 매우 유용하다.

사실 SMART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측정을 하려면 그에 따른 시간과 인력이 필요할 때가 있고, 달성가능하고 유의미한 목표를 세우려면 단체 안팎의 환경을 더욱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시간 제한을 두려면 다른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 이 모든 어려움을 넘어서야 구체적인 목표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원래 운동은 참 어려운 것이며, 그 중에서도 목표는 ‘첫 단추’같은 것이다. 충분히 공을 들여 첫 단추를 끼우자.

특히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다 함께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단체에서 같은 운동을 해도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어떤 활동가는 ‘우리의 목표는 이미 뚜렷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다. 또한 모두가 ‘우리의 목표는 뚜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각자 그 뜻을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오래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관행적으로 캠페인을 지속하다가 목표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만일 함께 목표를 점검하거나 수립한다면 또한 이 과정에서 충분히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논의한다면, 여러 활동가들이 같은 방향을 보면서 협업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운동에 힘을 쏟다가 소진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목표가 없는 혹은 목표를 알 수 없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법이다.

결국 목표란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활동가들이 SMART 툴과 함께 그 답을 함께 찾길 바란다.

 

* ‘SMART하게 목표 세우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등은 ‘https://guide2change.org’ 페이지 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