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큐플래닛> 진행자)
2020년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다가간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올 한해가 어떻게 남을지 궁금하다.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2020년은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 거 같다. 원래도 외출이 많거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에도 사는 동네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근처의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게 일과의 전부였고 쇼핑도 인터넷으로 거의 대체한지 오래였다. 물론 오랜 시간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취소할 수 밖에 없긴 했지만, 이마저도 여행을 했다면 불가피했을 고생을 안 했고 지출도 굳었으니 완전히 불공평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다. 어쨌거나 올해 우리는 세계적인 난리를 겪었고 2020년은 절망적인 시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 갖은 고생 끝에 치료는 되었으나 후유증을 얻은 사람 혹은 사망에 이른 이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 19의 유행은 사람들의 이동과 밀집에 제한을 걸었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거나 혹은 노동자들이 자리를 잃었다. 연말을 떠들썩 할 수가 없고 아마 전세계의 모두가 근래에는 유례가 없었던 분위기의 가라앉은 새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고요한 세상에서 웃음과 유머가 자리할 공간은 있을까. 이토록 암울하고 급박한 시대에 웃음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그런 질문이 든 것은 코미디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보편적인 장르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분위기와 환경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는 대중예술 분야이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인 ‘세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는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진 이후 새 시즌을 시작하는 무대에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최근 갖은 기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그 줄리아니가 맞다)를 초대했고, 뉴욕에서 촬영되는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의 전통과 의미를 되새기는 다소 엄숙한 모놀로그 이후에 프로그램은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많은 이들이 경악했던 2016년 대선 이후에는, 힐러리 클린턴으로 분한 케이트 맥키넌이 당시 작고한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를 부르며 다소 차분하게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언급한 두 사건이 그 어느 일과 경중을 따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무거운 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때 무대에 섰던 사람들은 어쨌거나 사건이 벌어진 이후 수습의 과정이 진행 중일 때 다시금 코미디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염병 사태가 점점 장기화가 되고 거의 유일한 희망인 백신 보급도 막 시작되는 시기가 아닌가. 정리하자면 지금은 ‘이후’가 아니고 우리는 아직 재난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다시 머리 속으로 질문을 떠올려 본다. 이런 시대에 웃음을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지금 우리에게 코미디가 필요한가.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코미디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유머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팬데믹 이전에도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넷플릭스의 프로그램 ‘위험한 세계 위험한 코미디’에서 진행자이자 코미디 작가인 래리 찰스는 유머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공간과 사람들을 찾는다. 1부의 주제는 무려 ‘전쟁’이다. 그는 전쟁으로 고통을 겪었거나 혹은 그 여파가 현재진행형인 국가들을 찾는다. 소말리아·나이지리아·이라크·라이베리아와 같은 국가들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지만 어쩌면 놀랍게도 그 나라들에는 코미디가 있었다. 물론 서구 국가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가령 이라크에서 데일리쇼 진행자로 활동하며 거침없는 풍자 코미디를 선보이는 아메드 알바시어가 유머에 눈을 뜨게 된 사연은 매우 특이한데 그는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웃겼다. 아메드의 사연은 정말 파란만장한데 서구문화를 금지하는 독실한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이 일어난 어느 날 밤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노래를 듣다 아버지에게 걸려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심지어 그는 납치를 당하고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도 겪는데 눈앞에서 사람들이 고문으로 미치거나 죽어가는 걸 보던 그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심문실로 끌고가는 군인들을 웃기기 시작한다. 아메드의 농담에 웃던 군인들은 그에게 끔찍한 고문까지는 저지르지 못하고 아메드는 결국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오게 된다.
아메드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험한 세계 위험한 코미디’에 등장한 많은 이들은 코미디가 말 그대로 사람을 살리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 이어지는 전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음이라도 없다면 버티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코미디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에는 보다 과격하고 공격적인 코미디도 존재한다. 이라크 코미디 프로그램인 ‘부카에 잡아넣자’는 유명인들의 차에 가짜 폭탄을 싣고 이들이 가짜 검문소에서 곤혹을 겪는 모습을 방송하는데,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물론 가짜이긴 하지만) 구속과 처벌 심지어 살해협박을 받기도 한다.
라이베리아의 소년병이었던 마이클 잘라와 디알로 칸자. 이들은 트라우마 치료의 일환으로 길거리 퍼포먼스를 벌인다. (출처:넷플릭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없는 일을 소재로 방송을 만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2010년 당시 이라크에서는 알카에다가 가짜 검문소를 세워 민간인을 억류하는 게 큰 문제였고 몰래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그 광경은 운이 없다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이 프로그램은 너무도 진짜처럼 보이는 검문소가 사실은 몰래카메라처럼 가짜일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코미디는 현실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경종을 울리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나는 지금의 재앙과 같은 팬더믹이 언젠가는 끝이 나리라 희망하고 있다.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 우리가 이어질 시간 모두를 마스크와 집합금지와 감염병과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재난의 한 가운데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한국의 상황이야 그나마 낫다고 해도 하루에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국을 보면 정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험한 세계 위험한 코미디’가 보여주었듯 아무리 암울해 보이는 순간에도 웃음이 할 수 있는 일, 웃음을 전하는 게 할 수 있는 일, 코미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힘든 겨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능한 많이 웃기를,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를 질문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우리가 열심히 버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