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 활동가)

 

 

해마다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국제 산업 박람회가 열린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산업 박람회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국제 박람회인 만큼 해외에서 바이어들이 방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판데믹을 뚫고 개최 된 박람회가 있다 바로 DX 코리아라 불리는 방위산업전이다.

사실 한국에서 개최되는 박람회 중에 더 유명한 군수산업 관련 박람회는 따로 있다. 바로 아덱스(ADEX)라 불리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다. 이 박람회는 기존의 군수산업 전시회가 공군 주최의 항공 우주 심포지엄과 협력, 결합하여 점점 발전해 온 것으로, 서울공항에서 에어쇼를 개최하는 등 스펙타클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은 이런 행사를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격년으로 열리는 아덱스에 줄곧 항의 액션을 벌여왔다. 올해에는 아덱스가 아닌 DX 코리아가 열렸다. 나는 다른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이 행사에 대한 항의 액션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이 행사에 또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아덱스라는 상당한 규모의 군수산업 박람회가 존재하는데, 또 하나의 군수산업 박람회가 열린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다소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두 개의 박람회가 등장한 이유는 DX 코리아의 주최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DX 코리아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주최자가 대한민국 육군협회로 되어있고 주관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DXK로 되어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DX 코리아를 주최하는 주식회사 DXK는 민간 기업으로서 전시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일부를 육군협회에 육군발전기금 명목으로 기부한다. 이 기부금의 액수는 경영상 비밀로 알려져 있다. 육군협회도 현직 육군참모총장이 임기를 마치면 육군협회 부회장직과 DX코리아 추진위원장을 겸임시킨다(관련 기사). 추진 배경부터 일부 관계기관 인사들과 군수산업 간의 연계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일산 킨텍스에 들어서기 직전 나는 “과연 아덱스는 규모면에서 참가자들에게 보여줄 것이 많은데, 이곳은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행사는 군비 확장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동향 파악을 위한 자료 수집의 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혹 평화활동가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현행 군사장비 체계 파악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농담삼아 이런 활동가들은 “내가 평화활동가인지 밀리터리 덕후인지 헷갈린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박람회장에 들어선 순간. 나에겐 일종의 허탈함이 엄습해왔다. 내가 이제까지 가 본 박람회 중에서도 볼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전시해 놓은 장비들은 양적인 면에서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었다. 일부 중장비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었고, 라팔이나 록히드 마틴같은 주요 무기 제작사들의 부스도 썰렁했다. 심지어 몇몇 외국 회사의 부스의 외국인 직원들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별로 집중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든 부스는 대한민국 육군의 공식 부스였다. 가장 크고 가장 화려했지만 사실상 육군 자체를 홍보하는 내용만 있을 뿐 산업전시회의 부스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런 곳에 시민들의 세금이 흘러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그 옆의 한 업체의 부스는 철제 수통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군필자들이 사용해본 그 수통 말이다. 수통 뒤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이 수통은 화학탄 낙하시에 취수관을 연결해서 화학전하에서도 물을 마실 수 있다”라는 내용의 영상이 진지하게 상영되고 있었다. 나는 일순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진지하게 전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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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사장 한가운데에서 DX 코리아를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참가자들 중 일부는 저승사자 복장을 하고 무언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잠시 한 장소에서 멈춰 서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천천히 출구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행진을 시작할 때 까지, 안전요원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행사장에 온 관객들 중 일부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일부 외국인들만 이런 퍼포먼스가 익숙하다는 듯이 우리를 조용히 응시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무기 박람회에서 평화활동가들이 무기 거래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수년 전, 뉴욕의 중국계 미국인 박물관을 방문 했을 때, 나의 눈을 잡아 끈 사진이 하나 있었다. 중일전쟁 당시 오레곤의 한 항구에서 중국계 미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고철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사진이었다(아래). 전쟁을 막기 위해 무기나 군수물자를 거래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동은 아주 오래전 부터 존재해 왔다. “명목상으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도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연유한다.

중일전쟁 당시 오레곤의 한 항구에서 중국계 미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고철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일전쟁 당시 오레곤의 한 항구에서 중국계 미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고철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리가 행사장 출구에 거의 도달했을 때, 경비업체 직원들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보안요원들이 이런 퍼포먼스에 접근해서 정중히 나가달라고 하면 활동가들도 별 다른 이견 없이 천천히 나가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좀 달랐다. 거친 말을 퍼붓기도 했고 플랜카드를 빼앗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행사의 경호업무에 관해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우리는 행사장에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우리는 철저히 합법적인 방식을 택했다.

일순간 내가 여기에서 항의 액션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머쓱하게 느껴졌다. 목적도 불분명하고 전시회로서의 의미도 별로 없는 행사장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아무래도 특정 이익을 위해 자신들끼리 개최한 행사라는 느낌이 강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볼것 없는 행사의 이면에서 살육을 위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국가의 세금이 낭비된다고 하니 화가 났다. 오히려 평화주의와 전쟁 반대를 떠나 이 행사는 사회 전반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퍼포먼스를 마치고 몇 시간 뒤, 행사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나는 더럭 겁이 났지만 다행히도 실내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울러 차후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해외에서 초청받아 입국한 바이어들 중 몇몇은 코로나 확진자로 판정되어 아예 행사에 참석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지난번의 DX 코리아에 비해서는 절반도 안되는 외빈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들은 정부에서 허가한 특별입국 절차를 통해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입국했다(관련기사). 심지어 행사장 내부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전세계적 팬데믹에 이런 특혜를 누리게 하는 군사주의와 전쟁산업이 새삼스레 무섭게 느껴졌다. 이러한 특혜는 물론 과거 군사정부로부터 이어진 군사국가 체제의 끝물이자, 군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남루한 군사주의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이미 국내 언론은 여러차례 예멘을 비롯한 국제 분쟁 지역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 한 바 있다. 나 또한 예멘 지역의 한국산 무기에 대해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한국산 폭탄이 민간인의 머리 위에 떨어지고 있다. 국제 분쟁이 지속하는 곳에는 해당 지역에 무기를 공급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공세종말점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이 와중에 죽어나가는 것은 민간인들이다. 한국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죽음의 상인의 대열에 합류했다. 나는 어서 이 끔찍한 대열에서 한국이 빠져 나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