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 (일러스트레이터)
“모두들분명히잘알고있겠지만, 은하계변두리지역개발계획에따라지구를관통하는초공간고속도로를건설하게되었다. 애석하게도너희행성은철거예정행성목록에들어있다. 모든계획도면과철거명령은알파센타우리행성에있는지역개발과에너희지구시간으로50년동안공지되어있었다. 그러므로너희에게는공식적으로민원을제기할시간이충분히있었다. 이제와서야단법석을떨기시작해봐야이미너무늦은일이다. 철거광선을작동하라.”
은하수를여행하는히치하이커를위한안내서中/ 더글러스애덤스
지난 3월 15일,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중앙당사에서 가덕도 신공항법 졸속 추진을 규탄하는 시민불복종 직접행동을 진행했다. 멸종저항 서울 활동가 6명은 민주당사 출입문과 지붕을 점거했고, 전원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영등포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현장에서 사슬을 걸고 있는 우리에게 민주당 관계자는 “절차를 밟고 오시라, 여기서 무작정 이러시면 안 된다” 고 말했다.
‘절차’라는 표현이 너무나 위선적이고 우스워 씁쓸하게 웃다가 이내 분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수년간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밟으며 행동했다. 자다 일어나서 이불을 박차며 “오늘은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쇠사슬을 손목에 묶고 소리쳐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사회문제를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실행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실천을 했다. 채식을 시작하고, 에코백과 텀블러, 손수건을 들고 다녔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보부상처럼 온갖 잡다한 물건을 지고 다녔다. 그러다 개인의 사회적 영향이 미미하다는 통계자료를 보고 다양한 단체를 후원하고, 디자인과 영상제작 등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에 재능기부를 했다. 정당에 가입해 정치적인 활동도 했다. 법개정에 대해 공부하며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송을 지지하고, 국제단체와 연계하여 세계공동행동에 참여했다. 스스로 예술행동을 기획하여 실행하거나, 다양한 단체들이 진행하는 대규모 집회나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공허한 외침을 하는 동안 너무 많은 땅이 돌이 킬 수 없이 허물어지고, 생명들이 죽어 나갔다. 아무리 열심히 ‘절차’를 밟아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사회운동을 오래 할수록 더 큰 무력감에 빠졌다.

▲세월호 3주기를 기억하는 예술행동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하고 있다.
우리가 폴리스라인을 넘은 – 그들이 “넘지 말라”고 쳐 놓은 그 선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 이유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절차’로는 그들에게 단 한발짝도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으로, 비혼 여성으로, 시민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지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쳐 놓은 선을 넘어야 했다.
법은 사람이 만들었기에 완벽하지 않고 그렇기에 판사와 검사, 변호사라는 보조장치가 있다. 여기에 더해,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직접행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사회문제의 전선에 있다. 우리는 선을 넘고, 소외된 존재를 조명하며 공기처럼 산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문제를 들추어낸다. 그런 활동가로서 비합법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도로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트럭이 그 사람을 향해 돌진한다면, 사람들은 그 행동이 위법한지의 여부를 생각하기보다 그를 구하기 위해 일단 무단횡단을 할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고, 미래세대의 삶을 짓밟으며 자신의 이윤을 취하는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는 손목에 쇠사슬을 묶었다. 그 행동은 위법행위로 저지당했고,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합법과 비합법이라는 이분법 사이로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배제된다. 나는 현행법과 개인의 믿음보다 앞서는 보편선험적 가치인 자연법에 따라 행동했다.
사람들은 흔히 ‘우선 순위’가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어떤 가치가 지금 당장 실현되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그 일이 취지는 좋으나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나중에”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미뤄지는 현재들 속에서 목숨을 잃는 존재들에게 ‘나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50년 후 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 나올 법한 삶이 아닌, 땅을 일구고 그림을 그리는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성 정체성이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에서, 인간과 다른 종이라는 이유로 그 사체를 잔혹하게 뜯어먹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외친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야 한다면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렇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