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jungmin.duck@withoutwar.org)

2021 아덱스가 끝났다. 아덱스 홈페이지에는 28개국 440개 업체, 23개 심포지엄/세미나/컨퍼런스/포럼, 68종 79대 야외전시, 40개국 222명 초청외빈, G2B미팅 709건, B2B미팅 1,017건으로 행사 결과를 정리해놓았다. 2년 전(34개국 430개 업체, 13개 심포지엄/세미나/컨퍼런스/포럼, 76종 92대 야외전시, 48개국 88명 초청외빈, G2B미팅 1,040건, B2B미팅 1,450건)과 비교하면 초청외빈의 수가 늘었고(코시국에 말이다!!!) 이에 따라 정부・기업 간 거래(G2B)미팅, 기업 간 거래(B2B) 미팅의 수가 증가했다. (물론 미팅을 했다고 모두 수주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아덱스가 매번 규모를 늘려나가니 짜증이 몰려오지만 우리가 할 일은/할 수 있는 일은 올해 액션을 잘 정리해서 다음을 또 기약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올해 우리가 했던 행동 중 서울 ADEX 공동운영본부에서 했던 현수막 떨구기 행동에 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현수막 떨구기 액션은 아덱스가 시작되기 전, 대중적으로 행사의 본질을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현수막 떨구기는 아덱스와 같이 다가오는 행사를 재구성하거나 맥락화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고 대중에게 부정의나 불의를 알리는 공익 광고 역할도 할 수 있다. 2021 아덱스는 (물론 아덱스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국산전투기 Fa-50을 타고 등장하면서 자주국방만이 부각되고 이 전투기가 필리핀, 이라크 등지에 판매되어 내전에 사용 중이라는 사실은 얘기되지 않았다. 군사기밀이라고 여러 차례의 정보공개 청구에도 초청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222명의 초청외빈(잠재적 고객) 중 사우디 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등 예맨 내전과 웨스트파푸아 독립운동 탄압 등을 주도하고 있는 요주의 나라 핵심 국방관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얘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 ADEX 공동운영본부 건물에 걸린 ‘환영합니다 전쟁범죄자 고객님’ 현수막은 앞으로 개최될 각종 에어쇼와 전시들이 실제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분명히 했다. 아덱스는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수도 있는 무기를 파는 비윤리적인 시장이고 그 시장의 고객은 전쟁범죄자들이라는 것을.

현수막 떨구기 행동은 목적에 따라 전쟁없는세상이 기획안 행동처럼 사회적 의사소통을 위한 행동이 있을 수 있고 드물긴 하지만 직접 어떤 사회 부정의를 방해하고 차단하기 위한 행동이 있을 수 있다. 1991년 그린피스는 핵 함정의 진입을 막기 위해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다리의 아랫부분까지 내려가 거기서 거대한 현수막을 묶어 떨구고 심지어 현수막의 아랫부분에 사람들이 매달려 결국 함정의 진입을 지연시키기도 했었다.

사진출처=Beautiful Trouble A Toolbox for Revolution 책 캡쳐

사진출처=Beautiful Trouble A Toolbox for Revolution 책 캡쳐

 

현수막 떨구기는 그린피스의 방식처럼 어디에 어떻게, 어떤 크기의 현수막을 거느냐에 따라 굉장히 난이도가 높고 전문성을 요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치 않고 위험성이 낮은 행동의 방식이다. 전쟁없는세상이 내건 현수막의 경우 가로 5미터 세로 10미터짜리였는데 성인 혼자 들고 옮길 수 있는 무게였고 건물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릴 때에도 성인 4명이 줄을 잡고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었다. 한 번 정도의 리허설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행동이다.

현수막 떨구기가 성공하려면 전쟁없는세상처럼 전략적으로 위치를 선택하거나 사람이 많이 오가는 지역을 공략하는 것이 좋다. 전쟁없는세상과 같은 날에 개식용 반대 현수막을 떨군 동물해방물결은 사람들(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홍대입구역 인근의 큰 건물을 선택했다.

사진출처=동물해방물결 페이스북

사진출처=동물해방물결 페이스북

만약 현수막을 떨구기가 마땅하지 않다면 애드벌룬이나 풍선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작년 12월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부동의 건에 대한 행정심판 심리가 시작되는 날 정부세종청사 상공에 설악산 케이블카 행정심판 기각 촉구 메시지가 적힌 애드벌룬을 띄웠다.

사진출처=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페이스북 캡쳐

사진출처=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페이스북 캡쳐

우리는 이번 현수막 떨구기 행동을 위해 전쟁없는세상의 기존 조직도상 존재하는 팀들 말고 따로 별도의 액션팀을 구성했다. 기존의 전없세 팀들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팀으로 액션을 준비하는 팀과는 회의방식에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액션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액션팀을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캠페인팀의 산하로 두고 액션팀에 무기감시캠페인팀의 코디네이터가 합류하여 액션에 관한 팀의 최종 결정이 무기감시캠페인팀이나 더 크게는 전쟁없는세상의 전체 기조와 따로 노는 일이 없도록 했다. 또 이를 통해 실무적으로도 필요한 지원을 효율적으로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액션팀은 3차례의 사전회의(1차 아이디어스토밍, 아덱스 운영본부를 목표로 결정, 2차 아이디어스토밍, 아덱스 운영본부를 대상으로 한 현수막 떨구기+사신 퍼포먼스 결정, 3차 아이디어스토밍, 슬로건 결정)를 진행했고 1차례의 평가회의를 하여 이후 또 다른 직접행동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였다.

팀이 다양한 비폭력행동의 전술 중 현수막 떨구기를 선택한 것은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가능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지(필요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였고 아덱스를 멋진 에어쇼 정도로 생각하는 대중의 시선을 전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쟁없는세상은 지금까지 어떤 액션의 아이디어나 슬로건의 아이디어를 모을 때 아이디어스토밍(브레인스토밍)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 행동에서는 팬데믹으로 사전회의를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발언 순서를 그림으로 그려 화면에 띄우고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었는데 분위기가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회의부터는 각자 10여분의 시간을 갖고 10개 정도의 아이디어를 스스로 생각한 후에 한꺼번에 발표하고 논의하는 방식을 취했다. 발표한 내용은 모두 패들릿(오프라인에서 전지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과 같은 방식의 툴)이라는 온라인도구를 활용해 기록하고 아이디어를 붙이고 빼고 합치고 하면서 최종적으로 행동과 슬로건의 아이디어를 합의했다. 나중에 다른 비슷한 액션기획 회의에서는 이 과정에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액션아이디어나 그림, 사진 등을 화면에 슬라이드쇼로 띄우기도 하고 음악을 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무기거래의 진실> 웨비나를 들으면서 슬로건을 떠올리는 브레인스토밍을 혼자 해봤는데 이 방식도 꽤 괜찮았다. 10개 이상의 구호를 만들 수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나중에 아덱스 비즈니스데이 액션에서 사용했다.

현수막 떨구기 액션은 언제, 어떤 효과를 얻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은 행동인지, 보통의 사회단체는 어떻게 그 액션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 정리해보았다. 특히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맞닥뜨렸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기록해두고 싶었다. 올해의 액션이 다양한 댓글잔치를 만들었는데 그 중 귀한 몇몇 댓글은 이런 사회운동의 뒷얘기를 알면 더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럼 내후년에도 We’ll b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