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유례없이 차별금지법 제정이 목전에 다가왔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세력은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혐오를 선동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주요 선동 구호들을 살펴보면, “동성애 합법화 반대”가 눈에 띄게 보인다. 애초에 불법도 아닌 걸 반대한다는 모순된 문장을 십수 년째 업데이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애석하게도 한국 사회에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군대이다.

 

군형법 제92조의 6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군형법 제92조의 6, 차별금지법만큼이나 한국 사회에서 오랜 논의를 거치고 있는 법 조항이다. 조항 자체에는 성소수자나 동성애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지만, 해당 조항은 ‘국내 유일 동성애 처벌법’이라는 악명을 떨치며, 오랜 시간 군대 내 동성애자를 검열하고 처벌해왔다. 휴가 나온 군인이 군부대 밖에서 성관계를 해도 처벌하고, 합의된 성관계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까지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만큼 악법 중에 악법이다.

이에 학계 및 시민사회에서는 성소수자를 범죄화하고 동성애에 대한 낙인을 씌운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였고, 유엔 자유권위원회, 사회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등 국제 인권기구들에서도 지속적으로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법에 대해 세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이고, 군대 내 동성 간 성관계를 허용하면 군 기강이 침해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현재 네 번째 군형법 제92조의6에 관한 위헌제청이 헌법재판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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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없는 동성애자 군인

그동안 군대 내에서 동성애는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92조의 6 뿐만 아니라 입영 심사에서 동성 간 성관계 유무를 묻기도 하고, 부대 내에서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바로 관심병사로 등록이 되어 관리 대상이 된다. 한 편, 『부대관리훈령』 에는 군대 내 성소수자 군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조항이 있는데, “아웃팅 금지”등 군대 내 성소수자의 존재를 적극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반된 제도의 존재가 뜻하는 바는, 군대에서는 이른바 ‘동성애 없는 동성애자 군인’을 원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모순적 상황이 펼쳐진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는 일반 사회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성소수자 혐오 선동 세력의 논리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동성애 허용하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이 정도인데 군대에서는 오죽하랴.

군대 혹은 군사주의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어야 하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전형적인 남성성을 강요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낙오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남성성의 경계를 허물거나 빗겨가는 동성애를 군대 내에서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군인 충원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 동성애자라고 보충역으로 보낼 수는 없고. 결국 군대는 ‘동성애자 군인의 성애를 제거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그렇게 ‘동성애 없는 동성애자 군인’이라는 모순된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사적 공간에서의 합의에 따른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법

그러다 지난 4월 21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군형법 제92조의 6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해당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육군에서는,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형사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육군 사이버수사팀이 복무 중인 동성애자 군인 수십 명을 표적하여 집중 색출하고 강압조사를 벌인 바 있다. 해당 색출 사건의 피해자가 5년에 걸친 긴 소송 끝에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은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판결한 것인데, 이는 그동안 동성애자 군인의 성애를 애써 제거해 온 군대 제도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동성애 하는 동성애자 군인’의 존재를 허용한 것이다.

‘동성애 하는 동성애자 군인’은 이미 존재한다.

‘동성애 하는 동성애자 군인’은 이미 존재한다.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아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어디까지나 해당 사건에 대한 판결일 뿐, 군형법 제92조의 6은 굳건히 자리하고 있으며, 여전히 군대는 성소수자 군인의 평등권과 존엄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 물론 해당 조항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군대 내에서 성소수자 혐오와 배제가 일순간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가 그 마중물이 될 수는 있다.  ‘동성애 하는 동성애자 군인’의 존재 자체로 남성중심적 군사주의와 군대에 균열을 내면서 성소수자 군인의 평등은 물론, 군대 내 평등을 앞당길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마지막 합헌 결정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위헌제청에 대한 판결을 미루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적극 참작하여 하루빨리 군형법 제92조의 6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평등한 군대를 만드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