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5월 15일은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이다. 1982년부터 매해 5월 15일에는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의 이유로 복역했던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가 전 세계에서 진행되어 왔다. 2026년 5월 서울에서는 이날을 맞아 전쟁없는세상, 한베평화재단, 서울인권영화제가 함께 한 상영회가 열렸다. 대체복무제라는 결실을 얻어낸 분투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고, 이어 완전 거부로써 현행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두부(김민형)와의 대담이 진행되었다. 과거의 저항이 현재의 저항으로 이어지고, 그 저항이 다시 미래를 향해 손 뻗는다는 점에서 평화를 향해 점차 나아가는 과정을 은유하는 듯한 형식이었다. 무력을 통한 방위를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균열을 냄으로써 평화를 향해 가는 길 위에, 오늘의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성역을 침범하는 17년의 기록
“전부 빨갱이들이야”, “6.25 구경했어? 안 했어?”, “38선이 있는데 뭐 하는 짓이야”
병역 거부 운동 캠페인이 진행 중이었던 한창, 몇몇 시민들이 활동가들의 면전에 대고 분노에 가득 찬 삿대질을 하며 한 말들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란 단순히 군대를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사주의라는 사회의 성역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영화는 2004년 전쟁없는세상 개소식부터 2018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까지, 그 긴 싸움의 궤적을 촘촘히 따라간다.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을 합헌으로 결정한 날, 병역거부자들이 연이어 수감되던 날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대체복무 논의가 백지화되던 시간이 담긴 장면은 기나긴 싸움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한다.
하지만 영화는 수난을 드러내기만 하지 않는다. 병역거부 당사자가 주가 될 수밖에 없는 지점 등 운동 내부의 딜레마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무기거래 반대 운동 등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더 넓은 평화운동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를 통해 단체의 지향은 대체복무 도입이 아닌 평화 그 자체로 확립된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2006년 이후 병역거부운동이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거부에서, 스스로를 ‘군대에 적합하지 않은 개인’으로 지칭하는 다양한 목소리들로 폭을 넓혀가는 흐름 또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층적인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군대를 통해 설계된 남성성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안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온 폭력이라는 군의 핵심 구조가 가시화된다. 이로써 병역거부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임이 강조된다.
2018년 6월,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종교적·양심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다. 병역거부 활동가들을 위시한 시민들이 17년의 세월을 바쳐 성역을 침범함으로써 얻어낸 값진 성취였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직후 헌재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이름만 빌려 간 ‘대체복무제’
2020년 대체복무제 도입은 2001년부터 이어진 병역거부운동이 거둔 빛나는 성과였다. 이는 이 사회에 대화와 비폭력의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가는 선택지가 존재함이 표명되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그러나 현행 대체복무제는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대체복무를 신청하려면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위원회는 과반 이상이 국방부와 병무청 추천 인사로 구성된다. 심사 방식은 신청자가 얼마나 평화적인 신념을 지니고 살아왔는지를 따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군사주의적 시선으로 평화적 신념의 진정성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현역 입대 가능자만 신청할 수 있어 이미 복무를 진행 중인 이들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기준이 지나치게 깐깐하고 자의적일 뿐 아니라 대체복무 자격이 주어진다더라도 육군 현역 복무 기간의 두 배에 달하는 36개월을 합숙 교정 시설에서 보내야 한다. 이는 명백히 국제인권기준에 저촉되는, 오직 징벌만을 목적으로 설계된 구조다. 활동가들이 주장해 온 취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 채 도입된, 이름만 빌려 간 ‘대체복무제’인 것이다.
‘완전 거부’를 선언하다
두부의 병역거부는 이러한 징벌적 대체복무제까지 거부하는 ‘완전 거부’다. 이는 현행 제도의 불합리함에 대한 저항이자 군대와 무력을 통한 방위 자체에 대한 근본적 거부에 기반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가혹한 견제가 달라붙는다. ‘병역의무 불이행자의 경우 고용주는 임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다’라는 병역법 제76조를 근거로 직장에는 병역 거부자를 해고하고 결과를 제출하라는 연락이 가고, 해고하지 않으면 직장에 징계가 내려진다. 병역거부를 선언하면 관례적으로 군이 면제되는 기준인 1년 6개월 형이 내려져 왔는데, 현재는 법이 바뀌어 주어진 형을 다 살고 나오더라도 입영통지서가 다시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은 국가기구의 숱한 위협에도 두부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가자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수단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이 순간 평화를 실현시키고자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 선언은, 개인의 저항 그 이상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되려 이러한 상황이기에, 이런 시대이기에 병역거부가 더욱 터무니 없다고, 불가능한 싸움에 도전하는 헛된 일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는 게 운동”이다. 어떤 일이든 당장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도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이와 같은 운동의 가치는 더욱 멀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병역거부 운동은 이에 반증해왔다. 지금보다도 더욱 이념적으로 불모지였던 17년 전 모두의 의심을 샀던 대체복무제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두부의 완전 거부는 제도적 무(無)의 상태에서 대체복무제를 만들어 낸 병역거부 운동이 다음으로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가리킨다. 복무 기간을 국제인권기준에 맞게 조정하고, 복무 분야를 소방·보건·재난·돌봄 등으로 확대하여 현행 대체복무제의 징벌적 구조를 개혁하는 것 그리고 현역 복무 중에도 신념의 변화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과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들은 전쟁 대신 평화가 자리하는 세계로 향하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영화 상영 후 진행한 GV에서 이야기를 하는 두부. 작년부터 바뀐 시행령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두부는 병역거부로 실형을 살고 출소한 이후에 입영통지서가 다시 나와서 병역거부가 무한반복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병역 기피라는 소란이 세상을 가득 메우도록
한국에서 군대란 특정 기간의 복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 특권층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가르는 기준으로 통용될 뿐 아니라 갈라치기에 동원되는 먹잇감으로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안보라는 미명하에 폭력과 학살의 도구로 기능하는 군대의 본질은 쉽게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는 일개 개인으로서는 대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는 무력감 앞에서 저항의 필요성 자체가 잊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역 완전 거부 선언은 가해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평화를 택하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실천이다.
나는 전쟁과 군사주의가 망가뜨린 세상의 일원으로서, 영화 속 모든 활동가들의 병역 거부를, 그리고 두부의 완전 거부를 온전히 지지한다. 그렇기에 거부에 대한 거부가 압도적인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병역 거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게 된다면, 불가능이 가능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해 줄 힘을 가진 이 영화 그리고 두부의 목소리가 더욱 멀리 뻗어나가, 세상이 잔뜩 소란스러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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