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출처: 서염 @hagozebee
예은 (팔레스타인 연대 시민)
요즘 무얼 하고 지내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어라 말할지 몰라 조금 곤란했다. 아르바이트하고, 책을 읽고, 조금씩 쓰고, 몸을 움직이고 …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을 쏟고 자주 한 것(이라고 여긴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 연대 운동에 함께 하는 일이었는데, 거기서도 구체적으로 무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말을 얼버무리게 된 것이다.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마주하면서는 그냥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며 지낸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었으며, 무엇보다도 집단학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6일,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다시 고강도로 전환해 “일을 완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이란과 레바논, 시리아까지도 침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드론과 폭격이 지속적으로 병원에, 학교에, 사람들에게 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식민 감옥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강간, 고문,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모함메드 엘쿠르드가 『완벽한 피해자』에서 쓰듯, “업계를 막론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는 것이 산업표준”(24)이 된 세계는 여전히, 심지어는 제도화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인의 “눈을 마주보기를 거부”(25)2)한다.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와 불법 점령, 집단학살은 정상화되며, 팔레스타인은 송곳니 뽑힌 슬픈 피해자 혹은 죽어마땅한 테레리스트로 위치 지어진다. 이 끔찍함에 매번 새롭게 경악한다.
팔레스타인 연대는 이런 세계에 대한 저항이다. 분노한, 슬픈, 괴로운 사람들이 모인 덕분에, 저항과 연대는 가능해진다. 함께하는 덕분에, 연대의 자리에 아름다움과 기쁨이 종종 깃든다. 연대를 단순히 낭만화 하거나 연대자의 무결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집단학살 상황을 지켜보며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불온하게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잔혹한 ‘정세’를 집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뎡야핑 님3)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홀로 이미지, 텍스트로 읽고 괴로워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같이 듣고 구호를 외치며 몸과 마음이 달라진다. 여러 형식의 연대를 함께하며 무언가 달라진다. 변화의 틈에 슬픔과 기쁨,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끼어든다.
몸에 새겨진 기억 중 일부
하나
2024년부터, 6월은 자긍심의 달이 아니라 퀴어팔레스타인연대의 달이 되었다.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으며,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퀴어 해방은 없다. 지난 6월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은 ‘집단학살을 멈추지 못한 좆같은 자긍심의 달’이라는 제목의 성명4)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퀴어한 해방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연대하고 투쟁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와 연계한 여러 연대의 자리가 열렸다. 그중 하나가 서울 안팎에서 활동하는 디제이들이 주도하여 만든 레이브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팔레스타인을 위한, 저항과 소음」이었다. 녹사평 광장, 격주로 연대 집회를 하는 SK서린빌딩 앞, 이태원 클럽에서 디제이들은 저항의 음악을 틀었고, 연대자들은 구호를 외치며 춤을 추었다.
녹사평역 앞 광장에서 처음 레이브가 열린 날, 비가 조금 내려 공기도 바닥도 촉촉했다. 나는 친구와 스피커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섰다. 아직 해가 밝은 오후, 광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슬쩍 눈을 감고 바닥을 보며 음악이 몸을 통과하게 두었다. 점점 사람이 모이고, 해가 졌고, 그러면서 무아지경으로 춤에 몰입하게 되었다. 스피커에 점점 더 가까이 갔다. 땀을 마구 흘리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눈 앞에 팔레스타인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문득 슬픔과 죄책감, 묘한 감정이 몰려들었다. 너무 즐겁게 춤을 추어서, 춤을 추는 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해 잊었음을 자각해서였다. 해리, 모든 것을 잊음, 음악에 몰입함은 레이빙을 구성하는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가자지구의 어떤 장면과 함께, 내가 춤을 춰도 되나 하는 마음도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그날 나의 친구, 아랍어 선생님, 팔레스타인인 시마는 말했다. “프라이드는 사람들이 공공의 장소에 함께 모여, 불의 앞에서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일입니다”.5) 프라이드는 언제나 ‘적절하지 않게’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일이었다. 말과 이해 이전의 몸과 활기, 감정과 열망이 모일 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 머뭇거림이 있을지라도, 옆에 선 누군가의 소리와 움직임에 응답한다. 나도 모르게 옆 사람과 비슷하게 춤을 추고 소리를 낸다. 깃발과도 함께, 춤을 춘다. 그것이 프라이드. 그러니 나는 춤추며 팔레스타인을 잊은 것이 아니라고, 몸이 달리 열리고 있었다고 말해볼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었다고, 글과 말로 고정하려니 어쩐지 긴장이 된다. 그렇지만 레이브가 끝날 무렵 친이스라엘 관광객이 광장에 알짱거리며 우리를 향해 웃을 때, 프리 팔레스타인을 이전보다 더 크게 외치게 되었던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둘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행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은 BDS운동이다. BDS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운동으로,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주도하에 전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BDS 운동의 일환인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학술 문화 보이콧 캠페인(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 이하 PACBI)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불법 점령, 식민 지배에 공모하는 학술, 문화에 저항한다.

사진: 예은
지난 6월, 퐁피두센터 한화가 개관했다. 문화예술인, 활동가, 시민들은 개관일에 맞춰 ‘철회하라 한화 6.4 서울행동’을 진행했다. 미술관 앞에서 참가자들은 ‘집단학살 아트워싱’에 반대하며, ‘예술은 폭력을 세탁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라고 외쳤다. 퐁피두센터에 자금을 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스라엘 방산기업(엘빗 시스템즈, 엘타 등)과 협력하며 집단학살에 공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 묻은 돈으로 개관한 미술관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팔레스타인 국기에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 조각이 담긴 피켓을 들고 섰다. 이는 단순히 한화라는 기업 하나를 보이콧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문화 예술이 유통·공유 되는 토대를 심문하고, 예술을 자본·정치와 분리된 자리, 침묵하는 자리에 놓음으로써 문화예술 기관이 집단학살에 공모한다는 지점을 폭로하는 행동이었다. 이는 퐁피두 센터에서 열렸다던 ‘샤넬쇼’만큼이나 보도되거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도 중요했다. 모인 몸들은 여러 방식으로 이 행동을 중요하게 만들었다. 특히 ‘불의에 저항하여 촬영하는 자들’의 존재가 그랬다. 기자회견은 일차적으로 보도를 위해 행해진다. 그러나 기성 매체는 자주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충분히 응답하지 않으므로(거듭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사 대다수는 여전히 집단학살을 ‘전쟁’이라 명명한다), 기자없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내가 가본 어떤 집회나 기자회견 자리보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보도 기자가 아닌 촬영자, 예술인의 카메라가 있었다. 단순 행위의 증거로써 사진을 생산하기 위함이 아니라, 연대의 실천으로서 ‘카메라를 든 사람’6)들. 그들은 이 행동을 더욱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게 했다. 사진이 기사로 보도되든, SNS로 공유되든, 영원히 누군가의 외장하드에 남아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후 사진은 공유되었고 (무척 아름다웠고), “연대의 결과물이자 공동의 성명으로 제시”7)됐다. 그것들과 함께, 다수의 카메라가 우리 행동을 담았다는 감각 또한 몸에 오래 남았다. 행동의 중요성을 만들어가는 행위들. 거의 매번의 집회를 카메라로 담는 몇몇 촬영자의 노고를 더욱 떠올리게도 됐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또 퐁피두 센터에 갔다. 집단학살 1000일 차가 되는 날이었다. 프랑스 본사 큐레이터는 하얀 미술관 속 큐비즘에 대해 말했고, 활동가들은 또 한 번 팔레스타인-게르니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게릴라처럼 모였다가 흩어졌다. 9월에는 6.3빌딩 퐁피두센터가 보이는 한강 어귀에서 “한강에 폭죽이 터지는 지금 가자지구에서는 폭탄이 쏟아집니다” 글귀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따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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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으나 그것이 보이지 않는 양 폭력을 정상화하는 세계에서, 자주 분열과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해방 세상 향한 무한 믿음과 이스라엘화되는 세계에 대한 무한 분노 사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음과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음 사이를 오가며 지냈다. 겁이 났고, 화가 났고, 슬펐다. 방금 전에 한 생각, 말과 글이 부족하지 않은지, 팔레스타인을 훼손하지 않는지, 시오니스트 폭력을 공고히 하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주 실수했다. 잘못했다. 얼마전 아랍어 수업에서는 내가 낸 ح (‘하’) 소리가 이스라엘인의 발음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후부터 단어를 발음할 때 더 자주 멈칫하지만, 계속 소리내며 적절한 발음을 익히려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까지 아마 나는 계속해서 실수하게 될 것이다. 끔찍해하며 무언가를 되풀이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또 갱신하려 애쓸 것이다. 그것이 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수무드(صمود)를 자주 떠올린다. 팔레스타인인 번역가 알라 알카이시는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흐푸즈의 소설을 거쳐 “승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서의 희망이 아니라 나아가는 행위에 충실함으로서의 희망, 알지 못한다는 것의 무게 아래 무너져 내리기를 거부하는 행위로서의 희망”(157)에 대해 말한다.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그 자체야말로 문이 열릴 가능성을 계속 살아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일”(156)8)로서의 희망이다. 그것을 믿으며 움직인다. 행동의 실마리는 기나긴 역사 속 해방의 주체인 팔레스타인에서 찾는다. 팔레스타인, 답케를 추는, 노래하는, 굶주린, 살점이 떨어져 나간, 총을 든, 돌을 든, 하마스인, 피다이인, 올리브 나무인, 모든 팔레스타인에게서. 팔레스타인인이 되어 가기로 하는 친애하고 존경하는 이들과 함께.
주석
1) 뎡야핑, 「20260919 정세 보고 – 이중 폭격, 집단학살 가해자들의 평판 관리」,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자료실 https://pal.or.kr/wp/20260919-news/
2) 모함메드 엘쿠르드, 『완벽한 피해자』, 박종주 옮김, 마티, 2026. 24-25쪽.
3) 20여년 간 활동 해온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활동가. 격주로 진행되는 집회에서 매번 정세보고를 하신다. 최근 발간된 소책자 『연대자의 윤리: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우리』 (리시올/플레이타임, 2026) 에는 한국에 있는 연대자의 책임과 윤리에 대한 귀한 통찰이 담겨있다. 글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독을 권한다. 구매 링크: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urlvj9J6jDJ9HEDr8r7fXAcP1AeKfA3c8i88RDiX2Pv4A/viewform
4)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성명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TNdAT2acJdMbkyv2ZpEuxCWuaY_CC6cE/view?usp=sharing
5)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긍심 레이빙 중, 팔레스타인 활동가 시마 자이예드 발언문」, 2026.06.26 https://pal.or.kr/wp/sima-s-speech-at-the-pride-noise-for-palestine/
6) 다큐멘터리 감독 커스틴 존슨의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은 그의 회고록이자, 수년간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자리 안팎의 틈새를 보여준다.
7) @withoutframe_ 인스타그램 게시물. 2026.05.31. https://www.instagram.com/p/DY_-7BQAb1i/?stkn=MW1naW5kc3Z2czlmO
8) 알라 알카이시,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서제인 옮김, 글항아리, 2026.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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