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기록노동자)

 

두부(김민형)를 만나기로 한 날, 선물로 설거지바와 천연수세미를 준비했다. “식사는 챙겨 드세요?” 바쁜 활동가에게 종종 하는 질문이다. 두부는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일이 바빠 꽤 소홀해졌다고 덧붙인다. 한베평화재단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후원 행사까지 겹쳐 일이 많은 게 단체 회원도 아닌 내 눈에도 보였다. 12월에는 베트남 평화 기행도 준비 중이다.

“평화 기행이 너무 기대되는데, 저는 가지 못해 아쉽죠.”
“아, 그거 때문에?”

두부는 올해 2월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내가 그를 만나러 온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대체복무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이조차 거부한 채 완전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아니에요.”

그런데 아니란다. 자신이 스물여덟 살이라 그렇다고 했다. 병역을 하지 않은 한국 국적 남성은 일정 나이가 되면 해외로 나갈 수 없다.

“저도 처음 알았어요. 25살부터 외국에 가려면 허락을 구해야 해요. 병무청에 공문서를 보내서.”

내가 모르는 세계다. 병역법을 찾아보니, 만 25세 이상인 병역준비역 남성이 해외로 나가려면 병무청장의 국외여행 허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다. 제70조다. ‘병역 의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동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사회에 내가 살고 있었다니. 놀랍다.

“저도 매번 놀랍니다.”

그를 놀라게 하는 것 중에 병무청의 ‘해직 요구’도 있었다

 

생존권은 지켰다만

병무청은 한베평화재단에 두부의 해고를 지시했다. 병역 불이행을 이유로 직장을 뺏을 수 있다. 이 또한 실존하는 법이다. 병역법 76조. 최근 9년간 329명이 이 법 조항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두부는 330명 번째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했으나, 한베평화재단은 이를 거부했다.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하려면 삶의 기반까지도 잃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2026년 7월 7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두부 발언)

한베평화재단은 병무청의 해직 요구를 거부하며 이에 항의했다. '병무청의 병역거부자 해직 요구는 중대한 인권침해다' 기자회견에서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한베평화재단은 병무청의 해직 요구를 거부하며 이에 항의했다. ‘병무청의 병역거부자 해직 요구는 중대한 인권침해다’ 기자회견에서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삶의 기반을 뺏어서라도 ‘국방의 의무’를 지우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있다. 아니, 그런 힘이 있다.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병무청은 두부의 해직 조처를 보류했다. 헌법재판소가 병역거부자의 고용을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조치다. 두부는 생존권을 지켰다만, 국가는 그의 신체를 구속할 것이다. 병역법 위반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기 이전,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갔다.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된 지금도, 대체역 심사위는 대체복무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이때 입대를 거부하면 재판을 거쳐 구속된다. 지난 9월 10일, 첫 재판을 앞두고 법원 앞에서 두부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병역거부는 제가 양심을 지키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입니다. 재판부는 제가 왜 이 선택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주고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있나

법원은 이제 두부의 ‘양심’을 판단할 것이다. 헌법상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헌법 제39조)지닌다. 이 막강한 의무에 반기에 들 수 있는 법적 논리는 헌법 제19조에 있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이래, 법정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에게 양심의 진실을 묻는다. 그 양심이 진실로 ‘깊이’있고 ‘강력’하고 ‘진지’한지 증명하라고 한다.

두부는 법정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심을 아무리 증명해도 이 재판의 끝은 □□교도소가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묻는다.

“왜 군대 가길 거부하나요?”

2026년 2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후, 아니 이전부터 무수히 받아왔을 질문이다. 두부는 언론에 보낼 <병역거부 선언문>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고 했다. 납득과 설득을 동반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군대는 제가 바라는 평화에 다가가기 어렵게 한다는 결론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한 줄로는 부족했다. 누군가는 입대를 피하려는 거짓이라 여기고, 누군가는 순진하거나 무모한 생각이라 여긴다. 온라인상에서 두부의 기사를 언급하며 이렇게 덧붙인 글도 보았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있나.”

그러니 설명이 길어진다. 두부는 자신이 접경 지역인 파주 문산에서 자랐음을 밝히고, 어릴 적에는 특전사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참전용사인 할아버지를 소환한다. 사회복지학과에서 배운 실천과 연대의 정신을 평화 운동에 가져오고, 베트남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거쳐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곳곳의 전쟁을 말한다. (두부의 병역거부 선언문 보러 가기 )

“전쟁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만 그 전쟁에 “자신의 몸과 삶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라, 설명해야 할 것이 많다. 두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설득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그 자체로 ‘운동’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말 다양하게 있는데, 그중에서 저는 이른바 사회 운동이라는 실천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전쟁을 멈추게 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제가 그동안 해온 문제 해결의 방식을 가져온 거 같아요.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일. 그렇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선언함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여정을 시작한 두부는, 그러다가 설명을 멈추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사람이 죽으면 안 되니까. 이제 저의 병역거부에서 가장 큰 이유였어요.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명제, 여기에 더 거창한 이유라든가, 더 진솔한 이야기라든가. 그런 거를 저는 더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찾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 선택을 거부하는 순간

살인을 저지르면 큰 범죄로 여겨지는데, 그 살인에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당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옛날부터 이상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던” 그 일을 자신은 수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내게 병역 의무가 부여되는 건 다른 일이었다. 나였다면 입대를 거부할 수 있을까.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런 나에게 두부는 ‘선택을 강요받는 사람의 선택’에 관해 이야기했다.

“한국이 징병제 사회니까 군대에 가든지 안 가든지 무조건 선택해야 하는 거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군대를 가야 된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군대는 당연히 가는 거고, 대학교에 들어와선 ‘언제 군대를 가지?’를 내내 고민하다가, 이번에 군대 대신 병역거부를 선택해 ‘병역거부를 어떻게 해야 되지?’를 또 고민하는 거죠.”

한국에서 군대는 선택이 아니지 않나.

“사실 선택지는 하나죠. 그런데 이 선택을 거부하는 순간,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 같아요. 그 선택을 택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선택지를 또 하나 만들었잖아요.”

앞서 병역거부자들은 군대를 가지 않을, 아주 좁은 선택지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두부는 지금 ‘완전 병역거부’라는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선택을 요구받았기에 고민하고, 고민하다 보니 다른 선택지를 만든다. 그런데 ‘완전 병역거부’라는 선택지는 왜 필요한가?

 

비난을 잠재우려면

두부가 22살이 된 해에 대체복무제가 시행된다. 다른 선택지가 열린 것이다. 그다음 해 두부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김환태, 2021)을 보러 간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다룬 다큐 영화다. GV에도 참석했다.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용석이 무대에 나와 있었다.

두부는 관객석에서 손을 들고 물었다. 대체 근무도 군대의 한 형태인 것 같은데, 그 지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그게 의문이었다.

“대체복무가 매끄러운 제도라 생각이 들지 않은 거예요. 대체복무제도가 군대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뒤로 그 내용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나서는 정말 다양한 문제가 있구나 싶었죠.”

현재의 대체복무제는 두부의 말대로 어딘가 의아한 면이 많다. 대체복무자들은 교도소 등 교정 시설에서 36개월 동안 근무를 한다. 감옥에 가두진 않지만, 감옥에서 일하게 한다. 군대 마냥 3년간 합숙을 시킨다. 아주 엄격하다. 솔직히 말해, 징벌에 가깝다.

2001년 이래로 평화와 반전을 내걸고 병역을 거부한 이는 70여 명이다(종교적 이유로 거부한 이들을 합하면 1만 9천여 명이다). 그들의 선언과 행동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수백 명이 있었다. 이들의 시간을 다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에서 이 말을 접할 수 있었다.

“결국 모두를 위한 일이다.”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두부완전병역거부를 선언한 후, 두부는 상영회에 참석해 완전병역거부의 의미와 현행 대체복무제도의 문제를 알렸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두부. 완전병역거부를 선언한 후, 두부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상영회에 참석해 완전병역거부의 의미와 현행 대체복무제도의 문제를 알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체복무제도를 ‘모두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소수다. 오히려 병역거부는 무임승차 취급을 당한다. ‘모두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는 믿음은 총을 들지 않겠다는 행위를 무임승차라 여기게 한다.

헌법재판소마저 같은 말을 한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대체복무제를 합헌이라 판단했다. 병역 부담의 형평성을 따져본다면 지금의 제도가 합당하다는 판결이다.

“헌법상 의무인 국방의 의무와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조화시키고,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간에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여…”(대법 판결 2021헌마117 등)

판결문을 읽는데, 어쩐지 온라인에서 본 말들이 떠오른다. 이런 이기적인 인간이 있나. 누구는 군대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아나. 군대 간 사람만 불쌍한 거 아니냐. 아무리 판결문이 법리로 채워져 있어도, 내게는 법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비난을 잠재우려면 감옥이라는 장소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형평은 균형을 찾는 일인데, 판결문이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균형이 아니다. 비난하는 이들도, 이들에게 비난 받는 이들도 그저 동등하게 방치되고 있다. “국가의 부름에 의해 삶을 저당 잡혔던 군필자들”의 분노를 방치하는 건 그들을 존중하는 일이 아니다. 국가는 책임지지 않은 채, 그들이 느끼는 상실과 손해의 감각이 그저 비난과 차별로 표출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그럴수록 대체복무제도는 ‘모두를 위한 일’과 멀어진다.

 

계속 고민한다, 운동이니까

영화를 본 그날 이후, 두부는 전쟁없는세상이 주최한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 참석한다.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라고 생각만 했는데, 모임에서 대체복무와 병역거부에 대한 개념을 쫙 정리해주더라고요. 이때부터 좀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요.”

모임에 참여하며 외국의 대체복무 사례들도 보았다. 대만은 대체복무제도가 내정부(행정안전부) 소속이다. 핀란드는 고용경제부가, 오스트리아는 연방총리실이 담당한다. 심사는 병무청이 하고, 운영은 (교정 시설을 담당하는) 법무부가 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달랐다. 대체복무제가 순수 민간 성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군 당국의 통제 하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엔의 권고 사항이다. 대체복무 기간 역시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할 경우 징벌적 성격이라 본다. 복무 장소도 소방서, 양로원, 보육원, 도서관, 박물관, 응급실 등 복지기관이나 공공시설로 다양했다.

지금은 징병제가 사라져 대체복무제도가 운영되고 있지 않은 국가들도 있다. 공부하고 상의할수록 “어딘가 매끄럽지 않은 대체복무”에 대한 생각은 점차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대체복무는 안 돼. 나는 안 해야지. 옛날에는 그랬다면, 지금은 대체복무가 이렇게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쪽으로 선회가 된 것 같아요.”

대체복무의 개선을 바란다. 그러나 대체복무를 선택하진 않는다. 대체복무를 앞서 시행해 온 국가들에서도 평화 활동가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아무리 전쟁과 거리가 먼 곳에서 근무를 하더라도, 복무자를 선별하고 심사하는 권한은 국가에 있다. 대체복무 역시 국가가 청년들을 ‘징집’하고 통제하는 시스템 아래 있다. 국가가 국민의 신체를 동원하고 징집할 권한을 갖는다. 군사주의 핵심은 총이 아니라, 국민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의 통제권에 있다.

그러니 대체복무제가 “징병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대체복무제 개선이 지금의 병역거부 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런 고민을 계속 해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 정립이 다 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운동이니까. 두부는 계속 고민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양심을 묻는 법정에서 다른 말을 하고자 준비한다.

“지금 같은 대체복무 제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게 되겠죠.”

두부의 재판 첫날, 법원 앞에서. 두부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모였다

두부의 재판 첫날, 법원 앞에서. 두부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모였다


완전히 달라질 수 있구나

병역거부 선언을 접할 때마다 궁금했다. 왜 전쟁을 반대하고, 군대를 거부하는지는 선언문을 통해 확인했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데까지 무르익을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내게는 그랬다.

앞서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선언하고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음에도, 지금도 대체역 심사에서 기각 당한 후 군대가 아닌 감옥을 택한 활동가(나단)가 있음에도, 현재 3천여 명이 군대 대신 교정시설에서 복무하기를 선택했음에도,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 마음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확고한지 알고 싶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온 세상이 법정이다.

두부와 대화를 나눴다. 내가 알게 된 것은 두부의 양심이 아니었다. 두부가 평화에 대해 고민해 온 시간이었다. 돌아와 이 글을 쓰며,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인 응우옌떤런 씨의 말을 떠올렸다.

“전쟁도 격렬하지만 평화도 격렬하다.”

오랫동안 모를 말이었으나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싸우고 소리치는 이미지로 다가왔던 그 격렬함이 비로소 나와 동시대에서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끈기와 혼란, 고민과 겹쳐 이해가 됐다. 두부에게 반복해 전쟁에 관한 생각을 물었을 때, 그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영화를 봤어요. 영화에서 도로를 따라서 차가 달리고, 그 차에 어린이 두 명이 함께하는 가족이 나오는데. 한 어린이가 도로 옆 강을 보면서 ‘강이 끝났다. 전쟁도 끝나겠지. 나중에 돌아오자.’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게 기억에 남아요. 어떤 사람은 해 질 녘 노을 보면서 ‘마치 불타는 것처럼 붉은 게 우리 마을 같다’ 이런 말을 하거든요. 우리는 감상하려고 보는 노을이 누군가에겐 폭격으로 불탄 하늘을 연상케 하는 거죠. ‘이런 게 전쟁이구나. 완전히 달라질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쟁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서 이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내 앞의 평화 활동가에게서 그 말을 듣는다. 그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겪지 않은 전쟁의 무서움을 알게 되는 것.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달라지는 일이 아닐까. 전쟁은 격렬하고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그리고 평화도 격렬하다.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두부의 양심을 물을지언정, 평화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두부 병역거부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1. 무죄판결 촉구 탄원에 동참해주세요. 탄원에 참여하기 →

2. 재판(11월 12일) 방청 연대에 함께해요. 방청연대 신청하기 →

3. 후원으로 함께해주세요. → 카뱅 3333-37-1108959 ㄱㅁ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