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기업과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황필규 변호사가 2026년 9월 10일에 진행한 강연 ‘억압 도구 수출에 제동 걸기 – 기업 인권 기준을 통한 경찰 무기 수출 통제와 책무성 강화’의 내용을 전쟁없는세상 쥬 활동가가 요약한 것입니다.
2014년, 바레인 최루탄 수출의 추억
2014년 한국산 최루탄의 바레인 수출 중단 캠페인 당시 국내 시민사회는 대중 캠페인과 기자회견, 국회 토론회, 외국 활동가 초청 등을 통해 대대적인 운동을 펼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레인으로 최루탄 추가 수출을 중단시키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과 뒤에는 국제·비사법적 구제 절차의 한계와 과제도 분명히 남아있었습니다. ‘바레인 워치’ 등 바레인 인권단체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유엔 특별보고관에 진정을 내고, 제조사 대광화공을 상대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른 한국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NCP는 “해외 지사가 없는 중소기업은 다국적기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사건을 각하했고, 유엔 진정 역시 소식 없이 묻혔습니다.
기업과 인권의 국제 기준: UNGPs와 OECD 가이드라인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은 구속력 있는 조약은 아니지만, 글로벌 기업과 국가가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연성규범이자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UNGPs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Protect): 영토/관할권 내 기업의 인권 침해를 예방·조사·처벌할 의무.
- 기업의 인권 존중 책무(Respect): 사업 활동 및 공급망/비즈니스 관계 전반에서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해결할 책무.
- 구제 절차 제공(Remedy): 침해 발생 시 사법적·비사법적 구제 수단 마련.
특히 중요한 것은 기업의 책임 범위입니다. UNGPs 원칙 13조와 OECD 가이드라인 IV장에 따르면 기업의 책임은 다음 세 단계로 나뉩니다.
- 원인 제공(Cause): 기업이 직접 인권 침해를 일으킨 경우.
- 기여(Contribute): 인권 침해 행위에 협력하거나 기여한 경우.
- 직접 연관(Directly Linked): 기업이 직접 침해하지 않았고 기여하지 않았더라도, 사업 관계(운영·제품·서비스)상 인권 침해와 직접 연결된 경우.
무기나 경찰 장비, 감시 기술 수출의 상당수가 세 번째 범주인 ‘사업 관계상 직접 연관’에 해당합니다. 설령 시위 탄압 목적으로 쓰일지 몰랐거나 직접 탄압하지 않았더라도, 자사 제품이 타국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되었다면 기업은 거래 관계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침해를 예방·완화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기업은 제품의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위험을 평가하는 ‘인권 실사’를 지속해서 이행해야 합니다.
비사법적 메커니즘의 활용: 유엔 특별절차와 NCP 진정
강연에서는 법원 재판과 달리 국내 구제 절차 완료나 조약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는 두 가지 대표적인 국제 비사법적 메커니즘을 소개했습니다.
1.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및 실무그룹 진정
유엔 ‘특별절차’는 긴급 조치가 필요하거나 기업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할 때 유용합니다. 진정 처리 과정에서 사건의 심각성이 인정되면 복수의 특별보고관이 ‘공동 성명’을 발표해 강력한 메시지를 냅니다.
- 인도 포스코 제철소 사례(2013): 주민 강제 이주 및 생계 파괴 우려에 대해 8개 분야 유엔 전문가 그룹이 사업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여 기업에 큰 압박을 주었습니다.
-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참사(2020): 참사 2년 후 유엔 전문가들이 SK건설 등 관련 기업과 정부에 피해자 구제와 인권 존중 의무 이행을 촉구했습니다.
- 해외 무기/감시 장비 통제 통보: 유엔 감시·기술 수출 지침(미국, 2019)에 대해 제품 수명 주기 전반의 인권 실사를 권고하거나, 영국의 경찰 장비·무기 수출 통제 법안(영국, 2025)이 유엔 고문 특별보고관의 인권 기준에 미달함을 지적하고 법 개정을 권고한 사례 등이 대표적입니다.
2.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과 국내연락사무소(NCP)
OECD 가이드라인 수락국 정부는 분쟁 해결을 위한 비사법 기구인 NCP를 설치·운영합니다.
- 이란 물대포 차량(지노모터스) 수출 사례(2025): 이란 시위 진압에 한국산 물대포 차량이 사용된 것에 대해 해외 단체가 한국 NCP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NCP는 추가 진행 실익은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특수목적차량 제조·수출 기업으로서 기업책임경영과 위험 기반 인권 실사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공식 권고했습니다.
- 호주 사브(Saab) 미사일 잔해 사례(2025): 원주민 유적지에서 군사 훈련 중 발견된 미사일 잔해 사건에서 호주 NCP는 “기업이 인권 침해를 직접 야기하진 않았으나 제품과의 직접적 관련성이 인정되므로, 거래 영향력을 행사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나가며: 억압 도구 수출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최루탄, 물대포, 감시 장비, 무기류 등 경찰 및 보안 장비는 국경을 넘어 타국 시민의 자유와 신체를 억압하는 도구로 돌아서기 쉽습니다. 이제 무기 및 경찰 장비 수출을 다룰 때 단지 국익이나 방산 수출 실적이라는 경제적 논리에만 기댈 수 없습니다. UNGPs와 OECD 가이드라인이라는 글로벌 기업 인권 기준을 적극 활용하여,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체 공급망을 통제하고 무기 제조·수출 기업에 인권 실사 의무와 책무성을 엄격히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억압 도구의 수출에 제동을 걸고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인권국가로 거듭나는 길입니다.
2026년 10월 21~2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는 경찰무기 박람회 ‘국제치안산업대전(KPEX 2026)’에 대응하여, 10월 23일 오후 7시 국제 포럼 ‘평화의 눈으로 본 한국 경찰무기 수출: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가 열립니다.
국제 포럼에는 특별히 인도네시아와 영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은 시민을 과잉진압하는 데 사용된 한국산 최루탄이 가져온 피해 사례를 증언합니다. 포럼에서는 세계 경찰무기 산업과 한국산 경찰무기 산업의 심각한 현황을 짚어봅니다. 이어서 한국산 경찰무기 수출을 막기 위해 한국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향도 함께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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