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9개월 아기를 돌보는 일은 꽤나 높은 수준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하루 종일 놀자고 보채는 아기 옆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기가 잠든 틈을 타 이유식 공장을 한바탕 돌리고 나면 금세 밤이 찾아온다. 아기를 재우고 난 후 인터넷 속 슈퍼맘들처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럴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날이 태반이다. 여느 날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인스타그램 속 릴스를 스무 번쯤 넘기던 중이었다. 어떤 남성이 슈퍼맨처럼 몸에 두른 담요를 펄럭이고 있는 영상과 함께 자막이 나왔다.
“0.1% 유니콘 아빠 체크리스트. 8개 이상이면 당신은 유니콘 아빠입니다.”
체크리스트의 항목들은 대략 이랬다.
“산부인과 입원 중인 아내 머리를 감겨 준 적 있다.
기저귀 가방을 혼자 챙길 수 있다.
혼자 아기를 재울 수 있다.
아기 똥을 씻겨 준다.
아기 목욕을 시킬 수 있다.”
아기를 돌보는 데 필요한 지극히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일들이었다. 함께 육아휴직 중인 내 남성 배우자가 모든 항목에 해당된다는 사실에 살짝 우쭐할 뻔하다가, 이내 불쾌감이 팍 올라왔다. 내가 출산을 한 당사자라 배우자의 머리를 감겨 줄 일이 없었다는 걸 빼고는 나도 다 체크할 수 있는 목록들인데, 누구도 나를 유니콘이라 생각할 것 같지 않았다. 나조차도 내가 유니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사람의 SNS에 댓글을 다는 일은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일이지만, 살포시 댓글을 남겼다.
‘엄마는 저거 다 해도 유니콘이 아닌데.. 아빠들은 유니콘 되기 참 쉽다.’
밤사이 꽤 많은 사람들이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출산과 동시에 육아휴직이 시작되었지만, 활동은 계속 이어 나가고 싶었다. 3개월 동안의 산후 회복기를 갖고, 나는 비상근으로 속한 단체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글 쓰는 일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간간히 강의나 토론회에 초대받아 이야깃거리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종종 기자회견과 집회에도 나갔다. 겉으로 보면 아기를 낳기 이전의 활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양새지만, 내 활동에는 전과 다른 아주 중요한 전제조건이 생겼다. 내가 활동을 하는 동안 집에서 아기를 전적으로 돌봐 주는 공동 양육자의 노동이 있다는 것. 내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동료 활동가들과 부대끼며 종종거릴 동안, 집에서는 먹이고, 재우고, 똥을 치우며 아기를 돌보는 배우자의 노동이 공백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활동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그가 육아 외의 다른 일과를 보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할 때는 내가 아기를 돌봤다.
내가 아기를 낳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활동에 대한 강한 열정이나 의지 때문만은 아니다. 육아휴직 제도 덕분에 출산 후 몸을 회복하고 아기를 돌볼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이 주어졌고, 무엇보다 공동으로 양육을 책임지는 사람과의 분업과 조정이 가능했다. 당연한 조건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조건들은 아니다. 우리의 돌봄 분업은 이성애 기반의 법률혼과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이라는 특권적 제도에 기대고 있다. 법률혼 밖의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나, 육아휴직은커녕 단 며칠의 휴가조차 내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와 같은 돌봄 분업이 쉽게 이뤄질 수 있을까. 특정한 가족 형태와 한정된 노동 자격 안에서만 돌봄 분업이 가능하다면, 돌봄과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육아와 활동을 병행하며 새삼 깨닫는 사실은, 활동에는 시간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생업과 활동을 병행하며 일상을 유지하고,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하거나 글을 쓴다. 주말이면 집회에 나가고, 그 집회가 끝나면 사람들과 교류하고, 활동 내용을 정리하는 데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쓰인다. 별다른 보상 없이 쓰이는 시간과 노동에는 흔히 활동가의 ‘열정’ 혹은 ‘헌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진짜 조건들은 헌신의 범주에서 쉽게 탈락하곤 한다. 내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공동양육자의 전적인 돌봄 분업이 있기 때문이고, 그 노동 이 이성애 기반의 차별적인 결혼제도가 제공하는 육아 및 출산 혜택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출산 후 떨어진 체력으로 아기를 돌보며, 텔레그램 단톡방에 쌓인 논의들을 따라잡는 일은 고되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활동을 놓지 않는 이유는 단지 아기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래 속했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는 (심지어는 활동사회에서도) 돌봄을 맡는 일이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걸 마치 본능처럼 학습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봄을 책임지는 일이 활동에 온전히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 되는 현실 속에서, 긴장은 가정 안팎에서 끊임없이 팽팽하게 유지된다.
유니콘 아빠라는 말이 불편했던 이유는 아빠들이 육아를 잘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유로 칭찬받는 현실 때문이었다. 사실 남성의 돌봄노동이 턱없이 희귀한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가 더없이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유니콘이 되어야만 유지되는 일상이라면, 그 일상은 올바르지 않다. 내가 유니콘 아빠를 거부하는 이유다. 돌봄을 누군가의 특별한 능력이나 희생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과 돌봄을 꾸리면서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꾸는 것.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지탱하는 것. 유니콘 아빠 백 명을 양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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