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7년 9월에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작년 말 연구용역 결과 중 극히 일부인 여론조사를 이유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무기한 보류한 상태입니다. 그로 인해 병역거부 수감자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현재 45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계속 감옥에 가고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국민적 공감대 핑계를 대며 대책을 마련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009년 7월 7일 입영영장을 받은 하동기씨는 입대하는 대신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하동기씨는 예수의 삶을 따르고자 고민하는 기독교 신자이고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헐벗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다가가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라는 의미인데, 상대방을 적으로 상정하고 그들의 목숨을 뺏는 방법과 효과적으로 그들을 타격하는 법을 가르치는 군대는 예수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부하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감옥에 가야하더라도 예수를 따라 평화와 사랑의 걸음을 묵묵히 걷겠다고 합니다.
[병역거부 소견서] 예수의 걸음을 따라
선언
어떠한 전쟁도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진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혹은 평화를 얻기 위한 전쟁을 주장하지만 어떠한 전쟁도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없으며, 어떠한 전쟁도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합니다.
만남
2005년에 인권위원회에서 국방부와 국회에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라고 권고했을 때, 가장 크게 반발한 단체 중 하나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개신교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이 단체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만난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원하셨는데, 이 단체는 적을 상정하고 그들을 찌르고 쏘는 훈련을 통해 이웃 사랑이 아닌 이웃 파괴를 자행하는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의 신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이 이야기가 예수의 삶을 따르노라고 목이 터져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주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현실
그때부터 시작된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은 2006년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서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던 평택에 갔을 때 제게도 현실화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현실 속에 놓인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찾았던 평택의 땅에서 만난 것은 국가의 권력이라는 것, 그리고 군사력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군인들과 경찰들의 눈빛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나를 분노의 눈길로 쳐다보던 몇몇 경찰들이 꼭 내 친구인 것 같았고, 내 선후배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내뿜는 분노의 기운은 결코 그들의 성품에서 기인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는 이름, 혹은 권력이라는 이름은 그들을 강제로 자신들의 세력에 편입시켜 그들로 하여금 폭력을 행사하게 하고 그 폭력이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의 청년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그들의 뒤에 선 간부급의 사람은 “X소대, 너희 동료가 맞고 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건가!” 라며 폭력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에게 맞선 사람들은 총칼도 들고 있지 않은, 그저 여기에 사는 주민들이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주민들을 쫓아내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도 이들을 때려잡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흥분한 전경들은 돌을 던져 창문을 깼고, 그 돌은 제 머리 바로 위에 날아와 벽을 때렸습니다. 누군가는 방패에 맞아서, 누군가는 돌에 맞아서, 누군가는 곤봉에 맞아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내 친구와 같은, 내 선후배와 같은 전경들도 흥분한 시위대의 폭력에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작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폭력의 사용을 강제하는 국가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백
교회라는 공간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저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더욱 열심히 출석했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으며,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 수 있기를 항상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신학’을 공부하는 곳에 입학을 했고, 신학을 배우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만난 예수님께서 제게 항상 하셨던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저 곁에 다가가 사랑한다고 속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헐벗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다가가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라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누구도 이러한 아픔과 고통에 내몰리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어나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더욱 이 말씀이 와 닿았던 것은 내게 말씀하신 ‘이웃’이라는 존재가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원수’라고 불리는 존재들까지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군대에서는 그 사랑을 말하기보다는 분쟁과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적으로 상정하고 그들의 목숨을 뺏는 방법과 효과적으로 그들을 타격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제가 신앙하는 예수님은 제가 그런 자리에 가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국가와 권력의 폭력에 휩쓸려 죽음의 자리에 이를지언정 묵묵히 자신의 길을, 평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믿음
인생의 한 걸음이라도 예수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서, 내게 보여주셨던 평화와 사랑의 걸음을 걷는 것이야말로 저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그 걸음에 언제나 예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