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선택, 헌재 그리고 이길준
지난 주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법원 결정이 2건 있었다.
26일(목),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유명세를 탄 신영철 대법관은 그 앞으로 배당된 예비군 병역거부 사건 4건에 대해 상고기각 판결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에는 신영철 대법관 이외 다른 대법관들에게도 수건의 관련 사건이 계류 중이나 지난 2007년 5월 울산지방법원 송승용 판사에 의한 위헌 제청으로 현행 향토예비군설치법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비군 거부의 경우 군 입대를 거부하는 병역거부 사건과는 달리 한 차례가 아닌 훈련 거부 때마다 기소되어 반복처벌을 받게 되어 수백에서 천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한 경우 징역형까지 선고받게 되어 그 행위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번에 상고기각 판결을 받은 상고인들 중 현재 간디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김정식 씨의 경우 상고기각 결정이 난 사건 이외에도 현재 총 10건이 1심과 대법원에 각각 계류 중(각 50만원에서 100만원의 벌금형)이다. 모두 대법원 및 헌재 결정까지 기다려 본다는 취지에서 추정 중인 사건들이다.
판사들의 양심적 판결을 저해하는 다양한 압력과 잘못된 처신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았던 신영철 대법관이 대표적인 양심의 자유 사건을 솔선해서 심판했다니 그 판결봉의 위엄과 무게가 더더욱 가볍게만 느껴진다. 국민에게 불편만 가중시키고 일상의 군사화만을 초래할 뿐 국방과 안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예비군제도는 하루빨리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23일(월)에는 전주지법 김균태 판사가 현행 병역법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 심판 제청 결정을 내렸다. 병역법에 대한 위헌재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미 지난해 9월과 올 9월 각각 춘천지법(정성태 부장판사)과 대전지법 천안지원(박민정 판사)에서 제청한 바 있어 현재 병역법의 위헌여부는 헌재에 계류 중인 상태이다. 김 판사는 위헌제청을 결정하면서 “병역거부자의 경우 국가의 대안 없이 무조건적인 형사처벌만 강요당하고 있다”며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할 책무가 있다고 판단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정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들을 형벌로만 제재하는 것은 국가가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 같은 문제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다시 이 문제는 헌재의 손으로 넘어갔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거듭 이 문제가 헌재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분명 지난 헌재의 합헌 결정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뭔가 합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지난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결정을 두고 ‘~했지만 ~은 아니다’라는 ‘헌재놀이’가 네티즌들 사이에 널리 유행을 했었다. 이것으로 헌재가 한바탕 국민적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헌재폐지까지 대두되었던 것을 헌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를 살면서 결국 최종심에서 헌재의 결정만을 목놓아 기다려야 하는 처지도 처지지만 이미 양심적 판단능력마저 마비된 조직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더욱 우울한 요즘이다.
지난 해 여름, 촛불집회 진압을 거부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길준 씨가 30일(월) 가석방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는 ‘진압작전에 동원될 때도, 기약 없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을 때에도 아무 말 못하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길준 병역거부 소견서 中)’에 회의를 느끼고 부대로 복귀하는 대신 감옥행을 받아들인 젊은이다. 과연 이 젊은이의 생각 어떤 부분에 잘못이 있었길래 감옥에 가야만 했는지 우리 사회는 지금이라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 양심이 처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현행법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토론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런 토론이 바탕이 되었을 때 헌재의 결정 또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길고 고된 감옥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는 이길준 씨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2009년 11월 30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