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14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한 병역법 일부 개정안에는 병무청장이 병역을 기피한 사람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시행령을 완성하였고 오는 7월 1일부터 개정된 병역법이 적용된다.

병무청이 마련한 시행령에 따라 병역기피자 명단이 공개심의위원회로 넘어가면 심의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개별통지 후 6개월 지난 시점에서 신상을 공개한다. 이 일정대로 진행이 된다면 내년 초에 최초 신상공개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신상공개는 성명ㆍ연령ㆍ주소ㆍ기피일자ㆍ기피요지 및 병역법 위반 조항 등 6개 항목으로 이루어진다.

 

2. 병무청이 마련한 시행령에 따르면 신상공개의 기대효과는 “병역의무 기피 예방 및 성실한 병역이행 풍토 확산”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병무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역기피자는 2014년 기준 951명이고 해외 불법체류로 미귀국한 사람은 2014년 기준 162명 정도다. 먼저 병역기피자를 살펴보면 이 안에 징병검사나 사회복무를 거부한 사람까지 포함된 것을 감안한다 쳐도 2014년 기준 현역병 입영자 274,292명 대비 0.3%정도에 불과한 숫자다. 또 국외출국한 병역의무자 중에 미귀국한 사람의 비율역시 0.06%에 불과하다.

 

3. 이 정도면 사실상 거의 완벽한 수준의 징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여성징병제를 도입해 화제가 된 노르웨이의 경우 현역입영 비율은 전체 1/6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병역거부권은 1922년부터 인정했고 1965년에는 ‘개인적 신념 사유에 의한 병역면제법’을 만들어 폭넓게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를 실시했다. 징병제의 표준처럼 묘사되는 이스라엘은 어떤가? 2007년 이스라엘 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의 병역면제율은 26%에 이르며 여성은 43%에 달한다. 물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도 인정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은 전세계 징병제 국가 중 가장 완벽한 수준으로 징병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다. 군은 스스로도 이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도 병무청이 내세우는 신상공개의 이유는 “병역의무 기피 예방 및 성실한 병역이행 풍토 확산”이다. 이미 최고 수준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한국 시민들에게 반복해서 병역이행 풍토 확산을 주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한국의 징병제와 군대는 민주주의 시대에 마지막까지 남겨진 치외법권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총기사고, 방산비리, 가혹행위와 폭행,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세계 최다 수감 등 온갖 불명예에도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기밀주의와 군사안보주의를 앞세워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반복되는 총기, 구타, 살인 사건 등 낙후한 징병제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문제들을 떠올려보자.

많은 이들이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낙후한 군대 현실 때문이다. 한국 군대에서는 아무런 전투 없이도 매년 수백 명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미군이 벌인 대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미군숫자보다도 평균적으로 높은 수치다. 신상공개는 이런 현실에 대한 개선의 요구를 무시하고 매번 병역기피만이 문제인 양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관성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사회지도층의 자제나 재벌가 아들들이 공개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권력을 이용해서 이미 합법적으로 기피한 사람들은 애초에 공개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상공개가 갖는 문제점이 또 있다. 인권침해와 이중처벌 논란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병역거부자가 포함되느냐의 문제도 논란거리다. 왜냐하면 이들은 스스로 거부의 이유를 밝히고 감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 체류하는 미귀국자 가운데는 병역거부를 이유로 난민을 신청해서 이미 받아들여졌거나 대기 상태인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병역거부자를 난민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행위가 부당하며 한국에서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임을 의미한다. 이미 한국은 계속되는 유엔 권고마저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또 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기 원하는 성소수자들을 국가가 강제로 아웃팅시키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신상공개 조항에는 기피요지 역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신상공개 방안은 병역을 신념에 따라 거부했거나 소재파악이 되지 않아서 입영 소집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게 되는데, 전자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하고 후자는 경찰이 할 일이지 병무청이 할 일이 아니다

 

5. 우리는 지금까지 나열한 여러 가지 이유로 신상공개에 반대한다. 전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병역관련 신상공개를 추진하면서까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군당국의 안일함과 선정적인 소재로 인기를 얻어 보고자 하는 정치영합주의가 빚어낸 촌극이라고 생각한다. 군사주의를 앞세워 구성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모든 불합리를 합리화하는 퇴행적 요구를 멈추어야 한다.

 

 

2015년 7월 1일

군인권센터,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쟁없는세상, 청년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