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4년차, 나는 오늘부로 병역을 거부한다.
이 마음을 행동에 옮기고, 소리내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시간을 거슬러 청소년기로 돌아가 봅니다.
청소년기 – 폭력
폭력. 폭력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국어사전)] 물리적인 힘에 더하여 정신적인 힘까지도 포함하여 폭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폭력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 전 까지는요. 제가 반대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폭력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행할 수 있는, 행해도 괜찮은, 당연한, 일상적인> 폭력입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행하는, 행할 수밖에 없는> 폭력을 저는 지지합니다.
저의 청소년기는 폭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의 매’ 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물리적인 폭력들과 ‘다 널 위해서 그래.’ 라는 이유들로 행해진 정신적인 폭력들. 그것을 행사한 주체는 학교, 선생님, 부모님, 언론, 주위 사람들과 방송매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둘러싼 세상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그 폭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것이 제가 속한 사회의 <당연한, 일상적인> 미담과도 같다고 여겨지는 문화였기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행할 수 있는, 행해도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저보다 강자였지요.
타인으로부터 내게 전해진 그 폭력은, 나로부터의 폭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내가 나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친구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 내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으로.
이렇게 저의 청소년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적인, 쉬운> 폭력의 일상이었습니다.
입대
2010년 8월 31일, 102보충대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뭔지 모를 불안함과 두려움, 답답함이 있었지만 저에게 ‘군대’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 이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삶의 코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21살의 저는 상상할 수 없도록, 질문할 수 없도록, 당연히 따르도록 길러져온 이 사회와 교육의 산물이었습니다.
군생활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라는 곳에 위치한 육군 27보병사단 78연대 연대본부중대 탄약계원으로 자대배치를 받아 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정말 많이 내렸습니다. 진짜 정말 많이 내려서 쌓여갔습니다. 그 눈만큼이나, 많은 명령이 내려졌고, 지켜야할 규칙들이 일방적인 누군가의 명령으로 쌓여갔습니다. 쌓여가던 것들은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의혹과 상처들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그 쌓이는 것에 사람은, 자랑스러운 국군장병은 결코 없었습니다. 예를 듭니다. 한 친구가 복무 중 자살을 했습니다. 빨리 그 일을 묻으려는 노력 외에 이 친구는 왜 그랬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병사가 자살을 하면 기무사에서 조사를 나옵니다. 기무사의 조사를 받기 전에 부대에서 자체조사를 먼저 하는데, 저는 부대가 그 일을 자살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렇게 만들어낸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병사 한명 한명은 부대에게, 군대에게, 국가에게, 힘 있는 저 분들에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군납비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저 소문만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먹을 밥이 부족하고 씻을 물이 부족했던 기초 군사 훈련 기간에 느꼈고, 자대에 와서 625때 사용하던 수통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며 느꼈습니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덮이고 쌓이고 덮이고 쌓였습니다. 그 중에는, 역시나 폭력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역시나, 그 폭력은 폭력을 낳았습니다. 계급에 의해, 그래도 되니까. 그래야 하니까. 일을 위해. 그래도 되니까. 그래야 하니까. 당나라 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나보다 계급이 낮은 쟤를 욕해도 되니까. 욕해야 하니까. 때려도 되니까. 때려야 하니까.
저에게 군대는 많은 것들을 쌓고, 덮고, 숨겨놓는 곳 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결코 존엄한 인간은-저를 포함하여, 없었습니다.
전역 – 만남
지난했던 군복무를 마치고 2012년 6월 9일, 전역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전역 후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질문할 줄 아는 사람들, 거부할 줄 아는 사람들,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제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내가 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저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엇인지 모를 제가 되어가고 있겠지요. 그 과정 중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길 원한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도 자유롭고, 행복하면 좋겠다고. 그러면 내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예비군 훈련 – 고민
작년까지 3번의 동원훈련을 마쳤습니다. 훈련 기간과 훈련을 받지 않는 일상에서 고민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경험한 군대라는 조직, 내가 생각하는 군대라는 조직은 한 인간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없게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 그 밖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너,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를 나눕니다. 적을 만듭니다. 무엇을 위해서? 저는 그것이 소수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욕망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욕망을 위해 전쟁이 일어나고,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과 고통, 빈곤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또한, 그들의 욕망을 위해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인양 포장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애인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라는 이유를 만들어 내고 강요합니다. 마치 <다 널 위해서 그래.> 라고 이야기했던 그 때의 사람들처럼. <가족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애인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그러나 실은 <권력과 자본의 욕망을 위해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질문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인식조차 하기 힘들고, 나를 억압하는 구조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같은 처지에 있는 서로를 나누고, 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조직, 안보, 국가라는 이름 아래에 자신이 묻혀버리고 타인을 묻어버립니다. 본인이 본인으로서 살 수 없고 다른 이가 그렇게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합니다. 자유를, 행복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조직이 변하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저의 일상에서 내가 나를 만날 때, 내가 타인을 만날 때, 저들의 논리와 감성으로 살지 않는 것이겠지요. 국가주의, 민족주의, 군사주의, 전체주의, 신자유주의, 힘의 논리를 거부하는 것. 그것을 나의 일상에서 녹여내는 것. 많이 부족합니다만 그렇게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제가 직접적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저에게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다는 것은, 한국군이라는 조직에 대한 투쟁이자 자본과 힘의 논리에 대한 투쟁이며, 사회 깊숙이 스며든 군사·계급·나이·성별로 사람을 규정짓고 만나는 문화에 대한 투쟁이고, 내 안에도 내재되어 있는 약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에 저항하기 위한 나의 투쟁입니다. 제가 투쟁하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자유와 행복이며, 타인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행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내가 저 집단의 일부가 되었을 때에,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비군 훈련 거부를 고민하며 여러 자료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쟁 없는 세상에서 나온 병역거부 가이드북이 큰 도움과 고민을 던져주었습니다. 현역 양심적 병역거부와는 다른, 예비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저는 절망했습니다. 거부에 대한 실형과 벌금은 그대로 적용되면서, 해당 훈련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월되는 상황.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은 나의 삶이 휘둘려도 괜찮을까? 그러면,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저는 예비군 훈련을 가면, 예비군 훈련을 가서 불행하고,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으면, 가지 않아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곳을 영원히 떠날 수는 없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 – 선택
계속되는 고민 끝에, 저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이 함께 고민해 주었고, 많은 도움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저에게 다른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긴 시간을 답 안 나오는 싸움에 메여있을 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너무 고맙지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겠지요. 동시에 저는 이런 친구들이 내 주위에 그리고 이 사회에 있다면, 예비군 훈련 거부를 나는 할 수 있고, 더욱이 해야 한다는 용기와 신념이 생겼습니다. 또한,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 너가 너로서 존재하는 것.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것.
이제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가 스스로일 수 있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예비군 4년차, 나는 오늘부로 병역을 거부합니다.
2016년 5월 17일 예비군 병역거부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