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최근 모 은행에서 군인 복지포인트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내 친구의 일화로 글을 시작해 보자. “이런 거 만드는 분이 별로 없어서…”라던 창구 직원분은, ‘육군 중위’라는 계급이 적힌 친구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순간 심드렁한 표정을 싹 걷어내고 “와아,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그런 장교이신 거죠?”라고 눈을 빛내며 일사천리에 작업을 진행해주셨다고 한다. 원래 지급되는 사은품인 신라면 5개들이 묶음 대신에 여행용 샤워용품 세트를 건네며 덧붙였다는 멘트도 일품이다: “멀리 나가실 때 쓰세요!”

단지 웃고 넘기자니 어쩐지 뒤꼭지가 찜찜해지는 이 일화는 최근 KBS2에서 절찬리에 방영된 16부작 미니시리즈 <태양의 후예>가 만들어낸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방부 홍보를 위해 2013년에 기획되어 현재까지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진짜 사나이>조차 필적하기 힘들 정도로 군대와 군인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상승시켜놓은 것이다. “멀리 나가실 때”라는 표현에서 엿보이듯, 이러한 효과는 단지 ‘군바리’를 ‘멋진 장교’로 바꾸어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국군의 해외 파병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구축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림1

[▲KBS <태양의 후예>]

2011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출발한 <태양의 후예>는, TV 로맨스물의 독보적인 1인자로 꼽히는 김은숙 작가와의 협업을 거쳐 특전사 군인과 의사 사이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가부장적 구도나 군국주의 미화 등에 대한 비판은 이미 이 드라마의 방영 초반에 국내 언론에서 몇 번 다루어진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군(의 파병)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베트남에서 방영된다는 것은 베트남전쟁의 역사에 대한 오욕이라는 한 베트남 기자의 일갈이 SNS에서 9만 회 이상 공유되기도 하는 등, <태양의 후예>에 대한 비판은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권역의 차원에서 드넓게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일부의 목소리일 뿐, <태양의 후예>는 현재 27개국에 수출되면서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광범위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여기에는 앞서 언급된 베트남 역시 포함되어 있다).

 

* * *

 

<태양의 후예>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군국주의적 색채에 대한 것이었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중동 국가를 배경으로 멋진 액션 연출을 통해 한국군의 활약상을 그려낸 것은 물론, 소위 낙후지역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의료진의 구호 활동과 태양광 발전이라는 개발산업 진출이 이와 병치되면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부국강병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파병 기간 당시 각종 뉴스영화 및 선전영화들을 통해 남한의 국민 대중에게 홍보되었던 한국군의 이미지와 상당히 겹치는 것으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잔혹함이나 파병이라는 정치적 행위에 깔려 있는 제국주의적 야욕 및 오리엔탈리즘의 위험성을 로맨스 드라마의 당의정으로 감싸며 희석시킨다. 개발지상주의적 독재정권기를 미화하였다는 이유로 큰 논쟁거리가 되었던 영화 <국제시장>(2014)의 국기 하강식 장면을 정확히 연상시키는 장면에 오면 이 드라마에 씌워진 군국주의 미화의 혐의는 한층 더 짙어진다.

 

[▲유시진 중위(송중기)가 의사 강모연(송혜교)을 돌려세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키고 있다. KBS ]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의사 강모연(송혜교)을 돌려세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키고 있다. KBS <태양의 후예>]

<태양의 후예> 제작진들은 이러한 비판을 다소 억울하게 받아들일 듯하다. 이 드라마는 무턱대고 국가주의나 군사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파간다로 치부되기에는 상당한 사회비판적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무엇보다도 세월호 이후의 국가를 향해, ‘국민에게 있어 국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노골적으로 던지는 텍스트이다. 지진 현장의 조난자들을 구조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드라마 중반의 두 회차나 되는 분량을 성실히 할애하는 동안(6화~7화), <태양의 후예>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이상적인 역할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2016년 한국의 시청자들이라면 해당 에피소드를 보면서 세월호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현실의 상황도 저렇게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라고 말이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지닌 군국주의의 혐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된다. 문화연구자 오혜진은 해당 에피소드를 두고 세월호 사건을 비극적 레토릭으로 소비하면서 주인공들의 영웅적 활약을 부각시키는 재현이라 비판한 바 있다(한겨레 칼럼). “약자의 죽음은 은폐되고, 강자의 독식은 합리화되며(…중략…)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세상에. 영웅이 필요하다”라는, <태양의 후예>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획의도는 이러한 비판의 근거를 더욱 강화해준다. 무능하고 ‘악한’ 시스템을 대신하여 국민을 지켜내는 영웅을 향한 소망 자체의 위험성도 문제이지만, 그 영웅이 다름 아닌 군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쉽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지점이 아니다.

 

[▲‘국민’을 구조하는 데에 미적지근하게 임하는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윤길준 소령(강신일)의 모습. KBS ]

[▲‘국민’을 구조하는 데에 미적지근하게 임하는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윤길준 중장(강신일)의 모습. KBS <태양의 후예>]

“당신들에게 국가 안보는 밀실에서 하는 정치고 카메라 앞에서 떠드는 외교인지는 몰라도, 내 부하들에겐 청춘 다 바쳐 지키는 조국이고 목숨 다 바쳐 수행하는 임무고 명령이야. 작전 간에 사망하거나 포로가 되었을 때 이름도 명예도 찾아주지 않는 조국의 부름에 영광되게 응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이 곧 국가안보라는 믿음 때문이고. 지금부터 모든 책임은 사령관인 내가 질 테니까, 당신은 섬세하게 넥타이 골라 매고, 기자들 모아다가 우아하게 정치해!”

 

국민을 지켜내는 영웅으로서의 군인상은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다시 한 번 공고하게 제시된다. 위에 인용된 대사는 우르크의 테러리스트 집단에 납치된 여자 주인공인 강모연을 구출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 때문에 미적대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윤길준 중장이 던지는 호통이다(<태양의 후예> 12화). 국가가 국민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며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지켜내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론을 펼쳐내는 이 문장들은 <태양의 후예>의 대표적인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히면서 현실과 조응하고 있다.

문제는 이 대사가 특전사령관의 입을 빌어 나온다는 점이다. 국민의 위에 군림하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영웅의 등장을 바라는 대중심리를 동시에 자극하는 3성 장군의 ‘속 시원한’ 일갈은, 5.16 군사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칭하는 세력이 다시금 득세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위험천만한 맥락에 놓인다. 주연배우 송중기와 공식적인 회동을 추진할 만큼 <태양의 후예>를 좋아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 드라마가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확립하는 데에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찬사한 바 있다(연합뉴스 기사). 박정희의 딸인 대통령은 위의 장면을 볼 때 아마도 ‘구국의 영웅’으로서의 아버지를 회상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윤길준 중장이 총괄하는 것으로 설정된 특전사령부는 과거 박정희가 5.16 쿠데타의 경험을 살려 여러 공수여단을 묶어 창설한 기관으로서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는 데에 투입된 바 있는 정치적 군사조직이기도 하다(김영택, ?5월 18일 광주?, p.213). 물론 이러한 드라마 외적인 사실로부터 <태양의 후예>의 제작진이 과거의 군부독재를 미화하려 했다고 추론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며, 실제로 그런 의도가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에 대하여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자리에 특전사령부를 놓는 설정은 군사주의의 혐의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군사화란 위계질서와 복종, 무력 사용에 대한 신념 등 군사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군사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효율적이라 생각하며 군사적 태도를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의 규정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군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이 드라마의 전개 방식에 깊이 스며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아무렇지 않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현상과 박정희 당시 특전사령부가 조직되고 이용된 역사적 사실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과연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태양의 후예>가 군국주의적 세력을 향해 발휘하는 호소력은 일국의 경계를 넘어서서 발휘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태양의 후예>가 남한의 국가 정신과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징병제 광고(an excellent advertisement for conscription)”라고 찬탄하면서 중국에서도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14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태국 총리가 된 프라윳 찬 오차 육군참모총장 역시 애국심과 희생정신, 명령에 대한 복종 및 시민의 의무를 그려낸 이 드라마를 태국 국민들에게 적극 권장하였다(BBC 기사(영문)). <태양의 후예>는 또한, 지금까지의 한류 드라마들과 달리 기획 단계에서부터 중국과의 동시 방영을 계획하고 사전제작되었으며, 중국 당국의 검열 기준을 고려하여 일부 장면을 중국 버전으로 따로 촬영하기도 한 드라마이다. 이상의 상황들은 한류 대중문화 콘텐츠와 동아시아의 정치적 우경화라는 조건이 앞으로 더욱 긴밀하게 조응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 * *

 

[▲우르크의 지진 소식을 듣고 구호 활동을 위해 한국에서 돌아온 의사 강모연과 유시진 중위가 재회하는 장면. KBS ]

[▲우르크의 지진 소식을 듣고 구호 활동을 위해 한국에서 돌아온 의사 강모연과 유시진 대위가 재회하는 장면. KBS <태양의 후예>]

한류 드라마에 익숙한 중국의 여성 시청자들은 <태양의 후예>가 재벌 2·3세 남성과 가난한 여성 사이의 사랑을 그린 여타의 한국 드라마들과 달리 자신의 직업을 프로페셔널하게 수행해내는 두 성인들 간의 연애를 다루는 작품이었다고 평한다. 실제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독립적인 여성이 사회적·경제적으로 대등한 관계의 남성과 연결되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태양의 후예>는 나름의 진일보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 꺼풀만 벗겨보면 금세 날아가는 허울 좋은 평등이다. “미인과 노인과 아이는 보호하는 것이 내 원칙입니다.” 유시진 대위가 매력을 어필하는 장면에서 곧잘 등장하는 이 대사는 보호하는 군인-남성과 보호받는 민간인-여성이라는 가부장적 군사주의의 기본적인 구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여러 중요한 에피소드들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 <태양의 후예>가 군사주의와 이성애 로맨스를 버무리며 만들어낸 더욱 심각한 효과는 따로 있다. 군국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방으로 나가 직접 전투에 몸을 던지던 남성과 후방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며 이를 보조함으로써 국민의 일원이 되는 여성의 협력, 즉 일제 말기 ‘총력전 시기’에 만들어진 ‘총후부인’의 이미지가 21세기의 한류 콘텐츠에서 다시금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는 죽음을 만드는 군인과 생명을 지키는 의사라는 직업이 겉보기에는 상반된 것 같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명예롭게 그려내고 있다. 장교 임관 선서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는 마지막 화 후반부의 연출은 <태양의 후예>가 지닌 이와 같은 세계관을 다시 한 번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조국의 영예로운 군인과 양심적인 의사가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정의로움의 세계가 좁은 국경을 넘어 자랑스럽게 뻗어나간다는 환상을 말이다. 지금의 ‘잘못된 현실’을 고쳐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순전한 기획의도가 펼쳐내는 환상은 밀리터리 로맨스의 틀을 통하여 이렇게나 제국주의적인 결과물을 빚어낸다.

 

[▲의 주요 인물들. 왼쪽부터 유시진 중위, 의사 강모연, 서대영 상사, 군의관 윤명주 중위. 사진출처: 제작사 NEW 홈페이지]

[▲<태양의 후예>의 주요 인물들. 왼쪽부터 유시진 대위, 의사 강모연, 서대영 상사, 군의관 윤명주 중위. 사진출처: <태양의 후예> 제작사 NEW 홈페이지]

<태양의 후예>에서 이루어진 군사 분야와 의료 분야의 협력은 군대, 전쟁 및 파병의 실상을 가린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지만 각 영역이 젠더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한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으로 각각 대표되는 전투 분야와 의료·간호 분야는 이 드라마 속에서 남성적인 활동과 여성적인 활동으로 나뉘어 재현된다. <태양의 후예>에 군복을 입고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여성 인물은 단 한 명밖에 없으며, 그 유일한 여군인 윤명주 중위 역시 군의관으로서 의료진 막사에서 일하는 인물이다. 남성들이 전방에서 목숨을 내놓고 임무를 수행할 때 남겨진 여성들은 서로 협력하여 일종의 돌봄노동을 하면서 남성들의 과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보좌한다. 툭하면 갑작스러운 비밀 임무를 맡아 자리를 뜨는 남자친구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의 무사귀환을 바라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고 성실하게 직분을 다하여 복무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태양의 후예>의 여성들이 수행하는 전문성이 놓인 젠더화된 군사주의의 맥락이다.

 

[▲재해 현장에서 구호 활동에 방해가 되는 하이힐의 굽을 내리쳐 빼고 고쳐 신는 강모연의 모습. KBS ]

[▲재해 현장에서 구호 활동에 방해가 되는 하이힐의 굽을 내리쳐 빼고 고쳐 신는 강모연의 모습. KBS <태양의 후예>]

<태양의 후예>는 또한, 후방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여성들과 그렇지 못한 여성들을 위계화하여 보여준다. 주인공 강모연은 타의에 의해 억지로 참여하게 된 우르크 의료봉사단 경험을 통하여 돈과 성공을 지향하던 의사에서 진정한 의료인으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귀국 비행기를 마다하고 지진 현장에 자원하여 남는 에피소드에서 강모연은 한 가지 상징적인 제스처를 보여준다.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 무너진 건물 골조에 뒷굽을 깡깡 내려쳐 고쳐 신고는 재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다소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이는 ‘된장녀’가 ‘개념녀’로 거듭나는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드라마의 초반에 불량배들을 보며 “저 놈들 싹 다 군대 보내서 정신 차리게 해야지”라고 별 생각 없이 말하던 강모연은 우르크 파병부대와 함께 전장에서 위험천만한 의료봉사를 하고 돌아옴으로써 ‘명예 예비군’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들을 향해 그냥 예방주사나 몇 방 놔 주고 온 주제에 되게 생색내고 다닌다고 ‘개념 없는’ 발언을 하는 여자 동료에게 일침을 놓는 강모연의 모습은 흡사 군인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김치녀’를 훈계하는 ‘명예남성’의 모습이 아닌가. 일제 말기 당시 ‘총후부인’으로 활동하던 여성 인사들이 ‘후방’의 원조자인 동시에 ‘우매한’ 조선 여성 대중을 계몽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는 점을 논의한 권명아 교수의 연구를 이 지점에서 인용해 볼 수 있을 듯하다(「식민지 경험과 여성의 정체성」, p.84). 밀리터리 로맨스 드라마로서의 <태양의 후예>는 이처럼 총후부인 서사와 여러 국면에서 겹쳐지는 문제작이다.

 

* * *

 

“어르신과 나를 격리시킨 경찰의 엄격한 질서유지는 폭력을 수호하는 질서였습니다. 이건 분명 국가가 국민에게 행하는 폭력이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국민을 지키지 않고 탄압하는 국가의 공권력에 가담할 수 없다.’”

 

<태양의 후예>가 절찬리에 종영한 직후인 2016년 4월 19일, 부산 알바노조 활동가인 김진만은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의 싸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밀양 송전탑에 맞서던 밀양 주민들을 제압하던 것은 다름 아닌 공권력의 폭력이었다고. <태양의 후예>가 그려낸 세계에서 군대는 평화를 수호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정의로운 조직이었지만, 현실의 군대와 공권력은 국민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르고 후자에 속하는 약자들을 폭력적으로 솎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가 젠더화된 방식으로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손쉽고 게으른 결론일지 모른다. <태양의 후예>는 어쨌든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는 드라마로서, 구성원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시스템의 이상적인 작동 방식을 나름대로 모색해 본 사례이다. 이는 가령 세월호 사건과 같은 문제가 소위 ‘진보 진영’만의 화두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권력과 생명 사이의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들이 생각보다 더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양의 후예>는 또한, 군사주의의 강화와 확산이 남성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거나 남성적인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여성향의 로맨스로서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이다. 젠더정치연구소 이진옥 대표의 말처럼 <태양의 후예>는 “기존의 젠더 역할을 고수하지만 동시에 변화된 젠더 질서를 반영”하고 “젠더 규범의 변화에 대한 여성 시청자의 욕망을 투영”한 작품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여세연 칼럼). 혁명과 저항도 ‘상품’이 되어 팔릴 수 있는 것처럼, 성역할 변화를 향한 여성들의 열망과 군사주의적 문화 콘텐츠가 결부될 수 있다는 사례를 <태양의 후예>는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군국주의를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으로 이분화된 구도로만 이해할 수 없으며, 군사주의가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태양의 후예>는 한층 더 문제적인 드라마이다. 앞서 중국과의 합작 문제를 언급했듯, <태양의 후예>는 한류 산업이라는 맥락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단계를 열어젖힌 사례이다. <태양의 후예>는 어쩌면, 한류 밀리터리 로맨스라는 형식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군사주의의 새로운 양상을 예고하는 사태였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