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병역거부 반대 논리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황이고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병역거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얼핏 보기에는 썩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역사를 살펴본다면 이 이야기는 사실관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전쟁에 가까울수록 병역거부는 훨씬 더 대중적인 행동이 됩니다. 전쟁 때는 딱히 평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혹은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평화시기일수록 병역거부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로 평화주의자들이 병역거부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쟁에 가까울수록 군대에 가서 내가 죽거나 혹은 타인을 죽여야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거나 혹은 내가 남을 죽이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건 꼭 평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극히 인간 본성에 가까운 행동이죠.

물론 전쟁이 한창일 때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전쟁을 막기 위한 반전 운동의 일환으로 병역거부를 선택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무하마드 알리를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이 베트남 전쟁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병역거부를 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창한 정치적 목적이 없는 채로 병역거부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지극히 인간 본성에 입각한 행동으로 말이에요. 죽기 싫어서, 남을 죽일 수 없어서 병역거부를 합니다.

 

이 병역거부자들은 국가의 정책을 바꾸겠다는 적극적인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기자회견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징집영장을 피해 산 속에 숨거나 군대를 탈영하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제 말기, 혹은 한국 전쟁 당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이자 작가인 서경식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선생님 아버지께서도 1940년대에 일본 본토에서 조선인에 대한 징집을 피해 집을 떠나 어딘가에 숨어서 지냈다고 합니다. 징병관이 찾아오면 일본말을 못하는척 하면서 돌려보내거나, 집에서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어디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발뺌을 했다고 합니다. 서경식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만 이런 게 아니라 당시 재일조선인들 가운데 이런 식으로 징병을 회피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은 탓에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를 묘사한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이런 캐릭터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 잘 알려진 영화에 등장하는 병역거부자와 유명 작가의 소년소설에 등장하는 병역거부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동막골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웰컴 투 동막골>은 십 년 전인 2005년에 개봉해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던 당시 초대박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두메 산골에 위치한 동막골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만나서 서로 적대하다가 결국 평화로운 마을 주민들에게 동화 되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죠.

이 영화에서 신하균이 연기한 표현철 중위는 사실 병역거부자입니다. 표현철 중위는 전쟁 중에 피난민이 가득한 한강철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당시 한강에는 다리가 한강철교 하나밖에 없었으니, 그 다리 하나만 끊으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인민군의 진격 속도를 현저하게 낮출 수 있었습니다. 국군으로서는 전략적 판단을 한 셈이죠. 하지만 전쟁에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수뇌부들은 머리 속으로 전쟁을 구상하지만, 일선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은 모든 상황이 실제 상황입니다. 다리를 끊는 일이 국군 수뇌부에게는 인민군을 막는 전략이었겠지만, 폭파 버튼을 눌러야 하는 표현철 중위에게는 다리 위에 수무한 피난민들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표현철 중위는 심한 갈등을 겪으며 미쳐 날뛰다시피 합니다. 영화의 대사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표현철 중위: 이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상황이 아닙니다

무전기 너머의 상관: 무슨 소리야 이 새끼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표현철: 다리 위에 피난민이 꽉 찼어요

상관: 잔소리 말고 빨리 끊어

표현철: 안 된다니까! 안 된다니까! 야 이 개새끼야 여기있는 사람들 다 죽일 거야? 난 못 해!

상관: 명령이다. 총살 시켜버리기 전에 빨리 끊어!

표현철: 저 사람들. 저 많은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표현철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다리를 폭파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반발하는 표현철(신하균 분)

 

만약 우리가 표현철 중위였다면, 우리는 과연 다리를 폭파할 수 있었을까요? 다리 위에 피난민들을 내 손으로 죽인다는 걸 인식하고도, 명령이고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만 하니까 폭파 버튼을 주저 없이 누를 수 있을까요?

표현철 중위는 결국 탈영을 합니다. 아마 여기저기 숨어 다니다가 동막골로 접어들었겠죠. 표현철 중위처럼,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는 아니지만 특정 전쟁이나 특정 명령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를 선택적 병역거부자라고 부릅니다.

 


 

초가집

<초가집이 있던 마을> 표지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쓴 소년소설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는 늘 전쟁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권정생 선생님 본인이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이라는 20세기 중반 커다란 전쟁을 관통해왔고, 전쟁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은 경북 어느 시골 마을이 배경입니다. 특별할 거 없는 그런 시골마을이 전쟁을 맞아 마을 사람들이 피난 갔다 돌아오고, 전쟁이 끝난 아수라장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 복식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복식이네는 전쟁이 터졌을 때 피난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여러 가지 이유로 피난을 떠나지 않거나, 혹은 떠나려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밀고 올라오면서 인민군이 후퇴하게 됩니다. 그때 복식이 아버지도 인민군을 따라가게 됩니다.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다가는 인민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화를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식이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복식이는 인민군 따라갔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온 동네 사람에게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월이 흘러 복식이는 성인이 되어서 군대에 가야할 나이가 됩니다. 헌데 복식이 아버지는 인민군이고, 복식이가 군대에 가면 복식이는 자기 아버지를 쏴 죽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복식이는 이런 상황을 괴로워 하며 밤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립니다.

 

하느님, 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며칠 있으면 저는 총을 메고 전장으로 나갑니다.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나라와 나라의 싸움도 아닙니다. 민족과 민족의 싸움도 아닙니다. 같은 민족이, 한 핏줄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우는 전쟁입니다. 그것도 아버지와 자식이 맞서서 죽여야 하는 전쟁인 것입니다.

저도 그런 싸움터에 가야 합니다. 아버지를 죽이러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네 부모를 공경하란 말씀은 집 안에서만 공경하란 말씀입니까? 아니면 시장에서나 전장에서나 부모라면 어디서나 공경하란 말씀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하셨지만,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무방한 것인지요?

하느님,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제게 갈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결국 복식이는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습니다. 우리가 만약 복식이었다면, 전쟁터에서 만난 적군이 내 아버지이거나, 내 친구이거나, 형이거나 동생이라면. 정말 상상하기 싫지만 한 번 상상해봅시다. 그런 상황에서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괴로움에 시달리다 군인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찾아 보지 않을까요? 그리고 스스로 찾은 방법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복식이가 살던 한국전쟁 당시에는 병역거부라는 말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권정생 선생님이 1985년에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쓸 때 병역거부라는 말 자체를 모른 채로 소설을 썼겠지만, 복식이의 행동은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병역거부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과 <초가집이 있던 마을> 두 작품만 봤는데요, 사실 전쟁을 다룬 많은 창작물에서 병역거부자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할 겁니다. 이런 분들의 행동에 대해 무슨 병역거부냐, 병역기피 혹은 군도바리 아니냐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병역거부라는 게 무슨 대단한 정치적 신념이 있는 행동 만을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 적극적인 거부자들도 병역거부자들이지만, 소극적인 거부자들도 병역거부자입니다. 그리고 소극적인 거부자들이 전쟁에 대한 정치적인 저항이나 군사주의 약화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들을 병역거부자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변에 누군가가 병역거부를 고민하지만 평화주의 신념이 대단한 사람들만 병역거부를 하는 거 같아서 망설이고 있다면 표현철 중위나 복식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화주의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이들만 병역거부를 하는 게 아니라고, 병역거부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 본성에 아주 가까운 행동이라고요.

주변에 누군가 병역거부자를 아주 많이 미워한다면 표현철 중위나 복식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가 병역거부자인 줄 모르고 봤던 사람들, 그들의 행동이 거슬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가 병역거부에 대해 갖고 있는 불쾌한 감정 또한 오해와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