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동혁(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은 활동회원 세미나에서 다른 나라들의 병역 제도를 공부했습니다. 그 내용을 계간지에 담기도 했었는데요, 당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새롭게 보강하면서 블로그에 다른 나라의 병역제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첫 번째로 여행자의 나라, 불교의 나라 태국의 병역제도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자유가 없는 자유의 땅
태국의 국호는 태국어로 쁘라텟타이(ประเทศไทย)라고 하는데 ‘자유의 땅’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자유의 땅에서 총 19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2년 일어난 무혈 쿠데타가 그 시작이었다.
19세기 후반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국가는 모두 서구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다. 왕국은 무너졌고 식민지 모국에 의해 대략적으로 현재 지도와 비슷한 영토분할이 이루어졌다. 인도에서 미얀마로 향하던 영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던 프랑스는 태국에서 만났고 극한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협상에 따라 중립지대가 형성되었다. 이 사이에서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국가를 유지했다. 왕국은 유지되었다.
1932년 신흥관료와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났다. 국왕과 군부는 타협했다. 무늬만 입헌군주제였을 뿐 사실상 왕가와 군부가 권력을 분점하는 반(半)봉건적 독재국가가 지속되었다. 왕국은 다신 유지되었다. 그 뒤로 군장성이 수상을 하고 국왕이 이를 승인하고, 또 다른 장성이 쿠데타로 권력을 뺏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민주주의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민주주의 토대가 되어야 할 세력은 너무 취약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이슬람/민족주의/공산주의 등 다양한 이념의 등장과 퇴조,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향한 열망과 베트남 혁명, 냉전시대 개막과 ‘비동맹’제 3세력의 등장, 군부독재/권위주의 정권 등장과 민주화 등 20세기 내내 동남아시아는 급격한 역사적 변화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태국은 꾸준했다. 왕가와 군부가 결탁해서 형식뿐인 입헌군주제를 20세기 내내 유지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힘의 균형을 이용했던 외교 전략도 꾸준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종전을 앞두고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면서 전후 승전국이 되었다. 덕분에 국제 연맹에 가입하고 승전국의 혜택도 누렸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점령자 일본편에 섰다. 종전 후에는 미국의 반공기지 역할을 자임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대만, 한국이 냉전시대 수행했던 역할과 겹친다. 미국의 원조, 지속적인 경제성장, 왕가나 군부와 결탁한 관료제의 부패, 권위주의적인 군부 독재,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거듭되는 민주주의의 도전, 하지만 여전한 혼란
1958년 야전사령관 싸릿 타나랏이 정권을 잡으면서 반서구 경향의 토착적인 정치 전통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구호 ‘태국식 민주주의’가 울려퍼졌다. 1973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으나 1976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국왕을 모함하는 배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다. 외부세력(베트남) 개입했다. 민주화 운동을 짓밟는 화법도 한국과 비슷했다.
태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무장투쟁과 민주애국통일전선 결성 등 저항이 거세지자 유화정책이 도입되었고 제한적으로 정당정치를 허용했다. 1987년 민주화 시위로 거치며 총리를 교체했으나 부패문제로 무너지고 1991년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1992년 4월 다시 친군부 정권이 수립되었다. 국왕의 승인이 이어졌다. 1992년 민주화 시위로 다시 총리를 교체하고 헌법 개정 운동에 착수하여 96년 11월 의회에서 헌법기초위원회 구성안을 통과시켰다.
새 헌법이 통과되고 민주주의가 확장되었으나 1997년 경제위기 파장 속에 민주당이 무너지고 태국사랑당을 만든 재벌총수이자 경찰출신(태국에서는 경찰이 군에 소속되어 있다) 탁신이 총리에 올랐다. 인구의 50% 차지하는 농촌은 물론 저소득층의 절대적 지지 속에 제 1당이 된 태국사랑당은 이후 주요 총선 때마다 승리를 거듭했다. 2005년 총선에서는 500석 가운데 377석을 얻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06년에 다시 군부쿠데타가 일어났다. 탁신 해외순방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탁신은 여러 가지 죄명으로 유죄선고를 받고 해외도피를 선택했다. 친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이 뒤를 이었다.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총리에 올랐다. 그리고 2014년 다시 19번째 군부쿠데타가 일어났다. 헌재는 잉락을 해임시켰고 군부정권은 잉락의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태국 내에서는 친탁신파(레드셔츠)와 반탁신파(옐로셔츠, 왕당파)의 대립이 커지면서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2014년 쿠테타 당시 치앙마이 창 푸악(Chang Phueak) 게이트 앞의 태국 군대. 출처: 위키피디아
2006, 2014년에 벌어진 쿠데타는 투표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몰아냈다. 두 번 모두 친탁신파가 밀려났다. 국왕+군부와 친탁신파간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친탁신파와 대립하며 왕당파를 지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에서 이길 가망이 보이지 않는 민주당은 선거 없는 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자 행세를 하고 있는 친탁신파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인지도 의심스럽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앞세운 친탁신파 역시도 온갖 부정부패와 연결되어 있다. 70년 동안 재위하고 있는 푸미폰(87) 국왕은 쿠데타를 번번이 승인해 주는 대가로 왕실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 때에 따라 민주화 운동의 결과를 승인하기도 하고 총리를 탓하며 권좌에서 밀어내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권력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임시헌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옥죄고 있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선거를 부정하는 반민주세력(야당)과 부패세력(친탁신파) 간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태국 민주주의의 운명은 오랫동안 군주와 장군들의 손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부는 정권을 민정에 이양하기에 앞서, 새로운 헌법을 마련해 오는 8월 국민투표에 부친다. 하지만 개헌안에는 군부가 상원을 구성해 국민이 선출한 하원을 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쁘라윳 총리의 집권연장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왕실이 기득권과 경제적 특권을 지키기 위해 군부와 결탁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6년 6월 5일자 경향신문)
도전받지 않는 절대 폭력, 군대
태국군은 전쟁이나 폭동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 독자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군은 계엄령 아래서 치안, 질서 유지를 위해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영장 없이 최대 7일 동안 범법 용의자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다.또 언론을 검열, 통제하고 우편, 통신을 중단시키거나 조사할 수 있으며, 모든 건물과 장소를 압수 수색은 물론 점령할 수 있다.
계엄령 선포 지역에 군법재판소를 열어 범죄 용의자들을 군법에 따라 판결하고, 군대를 도울 수 있도록 민간인들을 동원할 수 있다. 자동차 등 민간인 재산과 병참 물자를 군 작전 지원용으로 징발할 수 있으며, 민간인은 군의 활동 때문에 생긴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군은 국민에게 집회, 출판, 방송, 수송, 통신, 여행 등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어떤 행동도 금지할 수 있다. 통금령을 내리고 어떤 건물이나 장소도 군의 필요에 따라 파괴, 제거, 조정할 수 있다. 군 계엄령은 정부가 중단할 수 없으며 왕실 포고령에 의해서만 중지할 수 있다.
사실상 태국 군대는 도전받지 않는 절대 폭력 그 자체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쿠데타 이후 2년간 국민의 정치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최근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제적인 비난이 거세지자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등 일시적인 유화책을 펴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 개헌안은 부결될 가능성도 높지만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군부의 실질적 통치는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육군참모총장 출신 프라윳 총리는 8월 군부가 만든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군인 없이는 태국은 어떤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은 군인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 최초로 병역거부자 등장
태국의 경우 군대 규모는 30만 명 정도고 이 중 육군이 20만 명을 차지한다. 만 18세 이상이 되면 의무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징병제이긴 하지만 군 규모에 비해 징병인구가 넘치기 때문에 제비뽑기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징병을 실시한다. 먼저 자원병을 받는데 자원 입대할 경우 복무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고졸의 경우 복무기간이 2년인데 자원하면 1년으로 줄고, 대졸의 경우 복무기간은 1년인데 자원하면 역시 절반인 6개월로 줄어든다. 또 자원을 하면 육해공군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 신체검사는 4개 등급으로 나눠지고 4급을 받으면 면제된다. 출가스님이나 성기 수술을 마친 트렌스젠더도 면제 대상이다.
슬프게도 생각보다 군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아 자원입대로 절반 이상의 병력이 채워진다고 한다. 일단 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군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한데다 사회전반에 뿌리내린 분위기나 교육의 영향도 무시 못할 것이다. 다만 이슬람 세력과 교전이 잦은 남부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원 비율이 낮다. 자원으로 채우지 못한 병력은 제비뽑기로 뽑는데 검은색을 뽑으면 면제, 붉은색을 뽑으면 징집된다.(2PM 닉쿤도 이렇게 면제됐다.) 그런데 징집을 상징하는 이 붉은색 제비를 양도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사병의 월급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겠지만 여러 이유로 태국 군대를 채우는 건 다수의 저소득 계층 청년들이다. 상대적으로 군대를 회피하려는 정서가 이전보다는 강하지만 여전히 군이 갖는 사회적 위상은 절대적이다.
마지막으로 ‘러 더(ร.ด)’라는 군사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교육은 매주 1번씩 4~5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3년 동안 이 교육을 이수하면 징집에서 면제된다. 그런데 ‘러 더’는 군사훈련뿐 아니라 역사·무기에 대한 이론 학습은 물론 국가, 종교(불교), 국왕에 대한 사랑이라는 ‘정신교육’까지 병행하도록 돼 있다. (한겨레 21 1095호 참고) 결과적으로 군면제를 미끼로 시민들을 길들이고 체제를 합리화하는 교육을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태국 최초의 병역거부자가 교육운동을 하는 고등학생인 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시암 해방을 위한 교육운동’(Education for Liberation of Siam)을 이끈 고등학생 운동가 네티윗 초티팟파이산. 그는 병역을 거부한 대가로 최고 징역 3년형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한겨레21에서 기사로 자세하게 다루었으니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태국 최초의 병역거부자 네티윗 초티팟파이산. ⓒ 이유경
이 글을 쓰면서 처음 들러 본 네티윗 홈페이지 초기화면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걸려 있었다. 한국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병역거부를 했던 사람이 떠올라서 순간 가벼운 웃음이 터지고는 바로 슬퍼졌다. 태국 최초의 병역거부자라는 무거운 느낌에 걸맞지 않게 홈페이지가 너무나 조촐해서, 그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이토록 소박한 자유가 너무나 가혹하게 다뤄지고 있어서 나는 슬퍼졌다.
한국인에게 너무 익숙한 관광지 태국. 나 역시도 두 번이나 태국여행을 다녀왔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태국은 전혀 다른 의미로 와 닿는다. 태국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을 평화주의자들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작은 목소리가 가 닿을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고 다양한 종류의 병역거부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2002년 한국, 그리고 최초의 병역거부자가 등장한 2014년 태국. 이 시공간의 간격을 넘어 작은 연대의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네티윗 홈페이지 주소에 포함된 단어 powerlessboy. 힘없는 소년이여 힘을 내세요. 우리 또한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당신의 평화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8번째 생일에 나는 선언합니다.
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입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요구하는 징병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군부는 지금뿐만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태국 사회를 지배해왔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힘은 매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태국 군대는 장난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태국 군대가 군사력을 증가시키고 시민들을 세뇌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TV에 출연해서 군부를 비판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학자들을 비난하고 학생횔동가들을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주의를 촉진시키고 군대를 존경하는 내용으로 교과서를 통제했습니다. 군부가 태국을 군사화 된 국가로 만들기를 바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시도를 해왔고 여전히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가 극복하고 통제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타조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기를 바라나요?
이 상황을 바꾸기를 바란다면 함께 합시다! 지금은 변화를 위한 시간입니다.
이런 상황에 맞서 저항하고, 태국을 씨얌을 더 민주적이고 인권이 보장되는 곳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태국의 젊은이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들이 병역거부를 하는 것을 지원해야 합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징병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징병제를 폐지하거나 모병제로 바뀐 나라가 이미 세계적으로 많습니다. 그 나라들은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징병제는 폭력을 키우고 사람들이 비판적인 사고 없이 지도자를 따르게 만듭니다. 징병제는 폭력의 상징이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반(反)민주적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더 러’의 군사교육 프로그램을 3년 동안 받으면 군대를 안 갈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물밑으로 돈을 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왜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를 거부할 권리를 우리가 가질 수 없단 말입니까? 평화를 지지하고, 전쟁을 싫어하고, 비폭력 행동을 통해 사회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저희들이 왜 병역을 거부할 수 없단 말입니까? 우리는 모두 세계의 시민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전쟁을 하는 것보다 비폭력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16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18살이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는 불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이렇게 폭력으로 가득차고 인권을 위반하는 나라에서 저는 감히 불교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저는 제 뜻을 선언하고 싶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나라에서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재합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겠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되겠습니다.
태국 군대뿐만 아니라 폭력적인 그 어떤 군대에서도 군인이 되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네티윗 초티팟파이산, 태국의 학생이면서 보통의 세계시민
추신: 만약 관심이 있다면, 당신이 병역거부자가 되는 것으로 태국의 징병제를 중단시키도록 당신을 납득시키고 싶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번역: 탐 레이니스미스(Tom Rainey-Smith,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용석(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