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 (전쟁없는세상 피망팀)

이란 이슬람 혁명을 배경으로 한 게임 <1979년 혁명: 검은 금요일 1979 Revolution: Black Friday>이 올 4월 출시됐다. <어쌔신 크리드 Assassin’s Creed> 시리즈처럼 미국 독립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 등의 역사적 사실들을 게임에 녹여낸 사례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이처럼 플레이어가 직접 혁명의 현장을 누비는 것이 주가 된 게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청년 사진작가 레자 시라지가 1980년 호메이니 치하의 이란에서 난데없이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레자가 심문관 아사돌라 라제바디(1981년부터 1985년까지 에빈 교도소장을 지낸 실존 인물로 일명 ‘에빈의 도살자’)의 고문을 받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줄거리가 펼쳐진다.

pic1_black_friday1978년 9월 8일 ‘검은 금요일’

‘검은 금요일’은 1978년 9월 8일 금요 예배를 마친 뒤 팔라비 왕조에 항거해 테헤란 잘레흐 광장에 모인 시위대에 군대가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이란 혁명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란 민중은 계속된 시위 끝에 1979년 1월 팔라비 왕조의 샤를 몰아내고 2500년 동안 이어진 군주정을 무너뜨린다. 혁명의 영적 지도자였던 호메이니는 샤가 퇴위하자 15년 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이란으로 돌아온다. 호메이니는 새로운 이란이 성직자들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이는 세속적이고 중도적인 도시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고, 덕분에 혁명은 순조롭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란 사회에 들어선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근본주의 이슬람 율법이었다. 호메이니가 혁명이 끝난 뒤 권력을 좇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하에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종신 최고지도자가 되면서 이란에는 군주정에 이은 신정 독재체제가 수립된다.

1981년 6월 ‘응징률(키사스)’의 제정을 기점으로 4년 간 이어진 대대적인 숙청 기간 중에 이슬람 공화국의 혁명 재판소에서 처형된 반대파의 숫자는 헉명 전 팔라비 왕조 집권하에 16년 동안 희생된 3천여 명의 두 배가 넘는 8천여 명에 달했다. 게다가 그중에는 쿠르드족과 페다인(민병대), 투데(이란 공산당), 국민전선(민족주의 정당), 그리고 호메이니와 대립 관계에 있었던 종교 지도자 샤리아트마다리의 지지자들과 같은 지난날의 ‘혁명 동지’가 샤 왕당파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pic2_choice‘돌을 던진다’ 혹은 ‘던지지 않는다’

게임은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던 1978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주인공 레자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처음에 레자는 혁명의 현장에서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점점 더 그 열기에 빠져들게 된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줄거리를 따라가며 때때로 정답이 없는 도덕적 모호함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떤 말과 행동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후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나 대사, 상황이 변화한다.

예컨대 가두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느냐 던지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자유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는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가 ‘게임 오버’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첫 번째 플레이에서 심문관의 취조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가 모진 구타 끝에 죽었다. 솔직히 거기서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때 얻은 교훈으로 두 번째에는 잘 ‘협조’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밖에는 시위 진압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장애물에 걸리거나, 머리를 잘못 내밀어 총에 맞는 경우가 있었다.

게임의 일부 장면은 비폭력 트레이닝의 교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폭력 이론의 중요한 문제들을 잘 다루고 있다. “저 군인들도 우리와 같은 체제의 피해자야.”라던지 “우리가 무력으로 저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바로 그게 저들이 원하는 바야.” 같은 대사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플레이 시간이 고작 2시간 남짓하기 때문에 전체 플레이 영상을 영화 보듯이 봐도 좋겠지만, 그럴 경우 게임이라는 매체의 묘미인 선택과 상호작용을 살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덤으로 게임 중 특정 상황들을 레자의 카메라로 찍으면, 그에 관한 부가적인 기록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란 혁명뿐 아니라 이란의 전통 및 현대 문화, 종교, 왕족, 군대, 비밀경찰(SAVAK) 등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한 지식이 담겨 있다. 제작진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역사가들과 혁명 당시의 활동가, 목격자, 피해자, 투옥자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사진 및 음성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pic3_photo게임 중 찍은 사진(왼쪽)과 실제 기록(오른쪽)

<1979년 혁명: 검은 금요일>은 출시 이후 평론가와 일반 게이머들 모두에게 서사, 인물, 연기, 고증 등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로는 적은 유희 요소와 다소 빈약한 분량, 스토리상 분기의 부족, 획일화된 전개 등에 대한 지적이 있다. 선택지의 부족이 게임으로서 결점인 것은 맞다. 하지만 ‘무엇을 택하든 궁극적인 결과가 같다면 그 선택은 무의미하다’는 논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두 여행자가 다른 길을 걸어 동일한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둘이 같은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과정)이지 단지 엔딩(결과)만이 아니다.

게임의 형식이 아닌 내용적 측면에 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의 한 유저는 “[이 게임에] 나타난 역사 해석은 대단히 친 투데적”으로 “샤 왕당파와 현재의 시아파를 동시에 비난하는 한편 투데는 비록 순진할망정 악의 없는 성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은 “우와아 혁명 만세”를 외치며, “’저런, 이란이 이슬람 공화국이 되다니 참 안 됐군.’이라는 개발자의 편견을 강화하는 효과”만 가져오리라는 것이다. 팔라비 왕조와 호메이니에 대한 관점이 어떻든지 간에 이런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게임의 취지는 이미 충분히 달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란 당국은 호메이니 시대의 이란 인권 상황을 비판적으로 그린 <1979년 혁명: 검은 금요일>을 금지하고, 게임을 배급하는 모든 웹사이트의 자국 내 접속을 차단했다. 그것이 “청소년과 젊은 성인들의 국가관에 독이 되는” ‘친미 프로파간다’라는 이유에서다.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한 이란계 캐나다인 나비드 콘사리는 이 때문에 이란에 재입국하기가 두렵다고 밝혔으며, 일부 개발자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만약 권력자들이 게임을 두려워 한다면, 그것은 바로 게임이 그들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1979년 혁명: 검은 금요일> 공식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