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예비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은 예비병역부자 모임을 4회차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가운데 한 분인 시우님이 예비병역거부자 모임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전쟁없는세상에서 진행하는 공식적인 예비병역거부자 모임을 따로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전쟁없는세상을 찾아오거나 병역거부 상담을 신청하는 것은 늘 환영하니,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분들은 주저하지 말고 전쟁없는세상에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어김없이 병무청으로부터 입영통지서가 왔다.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해왔고, 운이 좋게도 병역거부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막상 (여러 번) 입영통지서를 받고 나서 겪는 무게감은 꽤 컸다. 이예다 씨의 사례를 접한 이후에 정치적 망명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후원회원으로서 다소 떨어진 채 단체 활동을 지켜보고 있던 차에 때마침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를 신청했다. 모임에는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충분히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참가자는 세 집단으로 나뉘어졌고, 이후에는 모든 참가자가 사무실에 빼곡하게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다양한 삶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고민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대화는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시절,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만났던 사람을 몇 년이 지난 후에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서 다시 볼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모임에서 흥미로웠던 장면 중에 하나는 자기소개였다.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 몸담고 있는 곳, 활동하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빠짐없이 등장하는 내용은 병역 수행에 대한 것이었다. 누구도 정하지는 않았지만,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이 언제 수감되어서 언제 출소했는지, 예비 병역거부자들은 앞으로 언제쯤 군 입대/수감생활이 예상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교회 모임에서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는지 이야기하거나, 퀴어 모임에서 언제 ‘이쪽’인지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재미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과 주변의 경험을 언급하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병역거부를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병역거부자들을 자주 목격했다.
모임에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수감까지의 구체적인 절차, 수감생활 전반에 대한 소개, 감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가능한 선택지, 병역거부/운동의 흐름, 소견서 ABCD, 수감 전에 준비하면 좋은 것들, 출소 이후의 삶의 경험 등 여러 주제를 다루었다. 이야기를 맡은 활동가들은 모두 꼼꼼하고 친절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예를 들면, 감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수감생활 중에 직접 부딪쳐본 경험이 있는 병역거부자가 자신의 사례를 차근차근 풀어냈다. 수감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준비거리, 예를 들어 건강검진을 받아두기(특히 치과치료)나 영치금 마련하기처럼 실제적인 측면, 가족과 대화해보기, 후원회 만들기, 친구들과의 여러 종류의 연결통로 마련하기와 같은 관계적인 측면, 혼자 있는 연습 해보기, 감옥에서 뭘 할지 고민해보기,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 기억하기 등 개인적인 측면까지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모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병역거부/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병역거부에 대해서 들었는데, 특히 병역기피와 병역거부를 나누는 구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종종 질이 나쁜 병역기피와 멋지고 훌륭한 병역거부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모임에서는 군대, 군사주의, 위계질서, 전쟁, 징병제 등과 비판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실천을 아울러서 병역거부의 역사에 담아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병역거부에서 ‘거부’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용기 있는 선택과 비겁한 결정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할 수 있었다. 이어서 소견서를 직접 적어보는 시간도 뜻 깊었다. 소견서를 쓰는 여러 방식에 대해 듣고 난 다음에 각자 소견서를 써보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글로 옮기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드문드문 생각나는 에피소드,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뒤죽박죽 떠오르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누구를 독자로 생각하고 써야하는지도 헷갈리고, 왠지 며칠 뒤에 법원에 소견서를 실제로 써서 제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실제로 모임 며칠 전에 법원에 소견서를 낸 참가자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소견서 발표를 들으면서 서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임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였다. (이야기를 운을 떼면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경험을 열심히 설명하던 중간에) ‘물론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말을 마무리하면서) ‘어디까지나 저의 경험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등 발언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야기의 조건을 붙이는 말들이 더해졌다.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된 계기를 설명할 때도, 수감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도, 출소 이후의 삶을 묘사할 때도, 이야기의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의 경험과 위치에 대해서는 모두 신중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병역거부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모인 만큼,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가지고 이야기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모임에서는 닮아 있지만 결코 같지는 않은 지점을 민감하게 담아내는 대화들이 많았다.
어떤 면에서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도, 병역거부가 전적으로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개입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병역거부를 살아내는 방식이 저마다 다채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의 모습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이해했다. 병역거부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병역거부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키워드 역시 다양하다. 수감생활의 경우에도, 어디까지가 보편적인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예외적인 상황이었는지를 구분하는 게 힘들고 무의미할 만큼, 병역거부자에게 감옥은 서로 다른 풍경으로 다가오고 출소 이후에도 각기 다른 흔적이 남겨진다. 병역거부를 실천하는 올바르고 유일한 길을 제안하기보다 각자가 병역거부를 번역해내는 치열한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일,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저항하며 때때로 서로 둘러앉아 마주보는 일, 좋은 동료가 되어 삶의 중요한 시점을 얼마간 같이 견디고 살아내는 일, 이런 점에서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배워가는 자리였다.
병역거부는 한두 가지 ‘결정적인’ 선택으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실천이라고 한다. 병역거부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가리킨다기보다 병역거부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혹은 모임에서 어떤 병역거부자가 표현한 것처럼, 병역거부라는 신념과 동거한다는 것에 가깝다. 모임을 통해서 이 지점이 병역거부와 관련한 제도적 논의나 찬반 논쟁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군대(혹은 군사주의, 전쟁, 지배구조, 폭력 등)와 ‘다른’ 관계를 맺기로 마음먹는 것, 다른 관계가 가능한지 탐색해보는 것, 다른 관계를 맺어야지만 숨통이 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실천이 가능하게 하는 다른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의미 있는 자리를 꾸린 활동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