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팔레스타인평화연대)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은 국기로 상징되는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가 징계를 받은 이용석 교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비판을 담을 글을 소식지에 실었습니다. 또한 여러 인권평화단체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펼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최근 미국 풋볼 경기에서 흑인 선수 한 명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국민의례를 거부했습니다. 콜린 캐퍼닉의 국민의례 거부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과 스포츠 스타들이 저항행동의 사례를 소개하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오승은 님께서 써주셨습니다.

 

나는 평소 미국 인종 문제에 관심이 많다. 나 자신의 체험은 물론 대학원에서 쓴 논문이나 지금 하고 있는 활동과도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인지 미국 흑인 사회의 과거와 현재는 내가 새로운 감각을 구하는 특별한 출처가 되어 왔다. 그곳에서 나는 인종차별의 현실을 냉철히 목도하는 동시에 미국 사회운동의 저력을 벅차게 확인하기도 한다. 지난 8월 25일, 한 흑인 미식축구 선수의 사진이 미국 언론에 도배됐을 때도 나는 같은 경험이 반복되리란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콜린 캐퍼닉. 미식축구리그(NFL) 경기장에서 국민의례를 거부한 채 홀로 벤치에 앉아 화제가 된 주인공이다. 경기 후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캐퍼닉은 기립 거부 이유로 흑인에 대한 경찰의 만행을 똑똑히 지목했다. “거리에 시신이 넘쳐나는데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휴가를 떠납니다.” “저는 흑인과 유색인을 탄압하는 국가의 깃발에 자부심을 표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례를 거부한 채 혼자 자리에 앉아 있는 콜린 캐퍼닉

국민의례를 거부한 채 혼자 자리에 앉아 있는 콜린 캐퍼닉

경찰에 대한 반감은 미국 흑인들 사이에 뿌리 깊은 정서지만 2014년 이 해묵은 문제는 미국의 흑백갈등을 새 국면에 올려놓았다. 마이크 브라운이란 이름의 비무장 흑인 소년이 경관의 총탄에 사망하고 이에 분노한 흑인 시위대가 군무기로 무장한 경찰에 진압된 것이 촉발제가 됐다. 이후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또 도마에 오르면서 미국 사회는 흑인 연예인부터 흑인 대통령까지 이 사태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스포츠 선수들이 경찰의 인종차별을 문제 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로 공개적으로 국민의례를 거부한 것은 캐퍼닉이 처음이다.

 

캐퍼닉의 국민의례 거부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

그 행동이 미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캐퍼닉에게 쏟아진 엄청난 비난과 야유가 그대로 보여 준다. 리그 웹사이트엔 징계 요구가 빗발쳤고 경찰 노조는 경기장 경호를 거부하겠다고 협박했다. 한 익명의 리그 고위직은 캐퍼닉의 죄질을 임신한 여성 살해 공모죄로 수감된 전직 선수에 견주기까지 했다. 언론은 유명 인사가 내뱉는 험담마다 족족 기사화를 하며 안 좋은 여론을 부추겼다.

그런데 이 지탄들을 잘 들여다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바로 경찰이 아닌 군대 이야기로 점철이 됐다는 것이다. 관중석에는 시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군인들에게 감사하기는 하느냐는 팻말이 등장했고, 어떤 리그 동료 선수는 성조기 앞에서 기립을 할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라면서도 자신은 군대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는다고 선을 그었다. 방송에서 캐퍼닉을 질타한 잘 알려진 이라크전 상이군인은 스스로를 표현의 자유를 방어한 장본인으로 소개했다. 정작 캐퍼닉이 호소한 경찰 문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캐퍼닉을 옹호한단 사람들도 경찰 언급을 비껴가긴 마찬가지였다. 지배적인 옹호 입장은 헌법에 표현의 자유가 명시됐으니 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이 강조는 우리의 미국은 캐퍼닉처럼 조국에 등을 돌리는 자에게도 그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부심으로 귀결된다. 그 결정적 목소리가 헌법학자 출신이자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에게서 나온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다만 오바마는 최근 미국의 경찰 군사화(국방부의 무기∙장비∙훈련을 제공받음) 추세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연방정부 수장이고, 캐퍼닉 역시 경찰의 흑인 대우 실태와 그 개선이 정부의 소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오바마가 헌법을 운운하며 캐퍼닉의 시위를 긍정한 사실은 아이러니를 넘어 시위의 정치 메시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국가 권력이 흑인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현실이야말로 시급한 헌법 위반 상황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결국 캐퍼닉을 옹호하면서도 그의 구체적인 호소보다 추상적인 헌법적 권리를 부각하려는 지금의 여론 양상은 그저 군대에 반기를 든다는 혐의를 피하려는 방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살펴본 대로 미국에서 캐퍼닉의 시위는 큰 소란을 불러왔을지언정 군대라는 장애물에 막혀 제대로 된 해석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미식축구리그가 9.11 테러와 아프간∙이라크 전쟁 이후로 국방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직접 군대 선전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실정까지를 고려하면 상황은 더 캄캄하다.

 

캐퍼닉의 든든한 연대세력들

이 어둠 속에서 캐퍼닉의 기립 거부를 진정 빛나게 하는 힘은 역시나 사회운동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도 퇴역군인들이 앞장을 섰다. ‘평화를 위하는 퇴역군인들(Veterans For Peace)’이란 단체가 캐퍼닉을 방어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필두로, 퇴역군인의 입장에서 캐퍼닉을 지지하는 SNS 해시태그 캠페인, 공개서한, 언론 기고, 경기장 선전 활동에 임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했다. 같은 리그의 시애틀 구단이 기립 거부에 동참하려는 소속 선수들의 계획을 무산시킨 뒤 경찰과의 ‘대화’를 해결책으로 제안하고 나섰을 때는 진보 성향의 스포츠 칼럼가 데이브 자이린이 그간 경찰이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은 흑인 운동 단체들을 호명하며 ‘대화’라는 미명 아래 저항의 고삐가 늦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캐퍼닉의 팀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반인종주의 의료 운동을 해 온 활동가 및 종사자들이 거리로 나와 캐퍼닉을 지지하는 행렬을 만들었다. 이렇게 운동의 가치를 실천해 온 미국인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캐퍼닉을 위해 기립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캐퍼닉의 국민의례 거부에 동참하는 동료 선수들

캐퍼닉의 국민의례 거부에 동참하는 동료 선수들

스포츠계에서 확산된 연대 행동도 일일이 기릴 만하다. 캐퍼닉의 팀 동료인 에릭 레이드를 포함해 지금까지 미식축구리그에서만 브랜든 마샬, 마커스 피터스, 제레미 레인, 마텔루스 베넷, 데빈 맥코티, 엘리 해롤드, 앙투안 베데아, 로버트 퀸, 케니 브릿, 아리안 포스터, 케니 스틸스, 젤라니 젠킨스, 마이클 토마스가 캐퍼닉의 국민의례 거부에 동참했다. 이 중엔 주먹을 허공에 치켜드는 것으로 거부 표현을 대신한 경우도 있다. 여자축구리그의 스타인 메건 라피노와 다양한 유소년∙대학 팀 선수들이 대거 시위에 동참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처럼 경기장에서 전국에 전파되는 무언의 시위는 역설적이게도 정의를 향한 단호한 목소리를 수반한다. 또한 그 목소리는 타협과 변명 없는 연대의 행동을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가령 캐퍼닉의 시위에 동료 선수가 보일 수 있는 태도는 같이 행동하느냐 마느냐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실제로 기립 거부에 동참한 선수들 가운데 자신의 행동에 구구절절 토를 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캐퍼닉부터가 주변의 시끌벅적함 속에서도 한 번의 기자회견 뒤로는 입을 다문 채 오직 기립 거부 행동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말보다 행동’이라는 금언이 특히 스포츠계에 제격이며 이 점이 스포츠 선수의 시위를 더 호소력 있고 파급력 있게 만든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스포츠 스타들의 저항운동

그러나 정치적 행동을 마음껏 선보이기에 프로 스포츠 선수는 징계, 계약 해지, 선발∙차출 불이익, 관객 야유 등의 보복에 취약한 일자리라는 것이 문제다. 캐퍼닉 같은 흑인 남성 선수에게는 흑인 청소년의 성공 모델이란 굴레까지 씌워지니 이들이 기존 규범을 거스르는 데는 부담감이 더 크다. 동시에 이러한 특수성은 미국 진보 역사에 스포츠 스타가 기여할 수 있는 독보적인 발판으로 반전되기도 했다. 인종차별에 항거하는 의미로 1968년 올림픽 팀 차출을 거부한 미국프로농구의 전설 카림 압둘 자바가 그랬고, 1968년 올림픽 시상대에서 성조기에 경례하길 거부하고 한 손 주먹을 치켜드는 ‘블랙파워’ 경례로 대신한 육상 선수 존 카를로스와 토미 스미스가 그랬으며, 1996년 미국프로농구 무대에서 흑인 무슬림으로서 국민의례를 거부한 마흐무드 압둘 라우프가 그랬다. 물론 가장 큰 본보기로는 베트남 전쟁 와중인 1967년 병역을 거부한 헤비급 챔피언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꼽을 수 있다. 모두 흑인이기도 하지만 스포츠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미국에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경우다. 이 선수들은 탄압과 보복을 감수하면서도 더 나은 애국, 정의, 평화의 의미를 만드는 데 자신의 명성과 여생 전부를 걸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로 올림픽 메달 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낀 두 손을 치켜들었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들은 이 행동으로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미국육상연맹에서 제명당한다.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로 올림픽 메달 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낀 두 손을 치켜들었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들은 이 행동으로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미국육상연맹에서 제명당한다.

이처럼 미국 스포츠계에는 국가에 불복종하는 행동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저항 운동을 벼락처럼 목격하게 하고 또 매력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든 전통이 있다. 캐퍼닉이 왜 하필 국민의례 거부를 했고 그에게 동조하는 일부 선수는 왜 주먹을 치켜들었는지, 왜 압둘 자바와 카를로스가 즉시 발언 요청을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캐퍼닉과 그의 동료 선수들이 의식적이든 아니든 선배 거부자들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포브스>지의 “콜린 캐퍼닉은 무하마드 알리가 아니다”라는 기사 제목은 캐퍼닉이 알리의 길에 똑같이 들어섰다는 누군가들의 불안한 직감을 새삼 확인시켜 줄 뿐이다.

 

캐퍼닉의 직접행동과 사회운동의 만남이라는 즐거운 기대

끝으로 캐퍼닉의 시위가 동시대 운동과도 점차 공명할 것이란 기대를 언급해야겠다. 1967년의 무하마드 알리도 당대 운동과 단단히 결속돼 있었다. 병역을 거부하며 알리가 걸어 들어간 폭풍 속에는 데이비드 해리스, 슬로앤 코핀, 배리건 형제 같은 ‘과격파’ 반전 활동가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알리의 옆에는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라는 거물급 흑인 지도자들과 “미국을 타도하라”고 선동한 젊은 흑인 활동가 스토클리 카마이클이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알리의 뒤에는 같은 해 징병통지에 불응한 952명의 청년들과 점점 높아가는 반전 물결이 버티고 있었다.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를 쓴 마이크 마커시는 알리의 병역 거부가 “시대적 환경의 압력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2016년 콜린 캐퍼닉의 거부 행동은 분명하게도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현재진행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다시 그 운동의 새로운 역량으로 흡수될 것으로 기대된다.

리그에서 왜 당신만 이러한 시위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물론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에 대해 캐퍼닉은 논쟁에 휘말리거나 직업을 잃을 수 있는 현실적 위험을 전제했다. 그리고 이어서 대답했다. “저는 그런 일들을 감당할 준비가 됐습니다.” 캐퍼닉의 이 결심이 다른 행동들과 결속하면서 인종차별 사회를 향한 수많은 분노와 저항 중 하나로 안착하고 또 후대에 기념된다면 참 좋겠다. 일단 그의 유니폼 판매량이 폭증했다는 소식만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