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모든 깨어진 관계들이 충분하게 회복된 상태가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갈등과 분쟁이 없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갈등과 분쟁을 넘어서 끊어진 연결고리를 회복하고 함께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적극적 행동이 평화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이 발 딛고 사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것. 동시에 화해와 회복에 이르기 위한 모든 활동과 그 상태가 곧 평화입니다. 이런 평화를 방해하는 부당한 구조와 권력에 저항하는 것 또한 평화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한 그림은 예수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개신교 신앙이란 예수의 삶을 따라 살며 그 삶의 내용이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평화는 예수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가 이 땅 위에서 이뤄지도록 사는 것이 제가 신앙인으로 살아야할 삶의 태도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제 신앙이 요구하는 평화의 의무와 국가가 요구하는 병역의 의무는 충돌합니다. 왜냐하면 전쟁과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집단으로서 군대는 제가 생각하는 평화를 무참히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만들어진 무기를 소비하기 위한 군수산업의 이해로 일어납니다. 사회를 보호하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때론 한 정치공동체의 내부갈등을 외부로 회피하기 위해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선택일 뿐입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합니다. 일상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마주해야 합니다. 현대의 무기들은 비무장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사회에 혼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틈타 가장 약한 집단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모든 관계가 총체적으로 파괴된 상태, 평화에서 가장 멀어진 상태가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 또한 평화를 해칩니다. 군대는 목적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공간입니다. 군대는 전쟁 수행이라는 목표에 어긋나는 사람, 대한민국이 이상화 하는 남성성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겐 끊임없이 폭력을 가하고, 그들을 낙인을 찍고, 그들에게 조롱을 일삼습니다. 제가 경험한 군대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농담거리가 되는 곳, 상명하복의 문화를 익히며 권력에 굴종하는 것을 체득하는 시기,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가장 좁은 책임감을 배우고, 사람을 죽이는 사격술을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안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집권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종북좌파/빨갱이로 규정하는 것을 학습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살아내야 할 평화와 충돌합니다.
저는 평화적 신념과 병역 의무의 충돌을 경험하면서도 군대에 갔습니다. 신앙이 요구하는 평화의 의무를 포기했습니다. 전과자로 사는 것이 두려웠고, 제가 이해한 신앙의 길을 선택할 만큼의 용기가 없었습니다. 타협했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입대는 전쟁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했고, 전쟁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남성에게 전쟁을 반대할 기회가 있다면 군입대 전, 예비군훈련을 앞두고, 전쟁이 났을 때일 것입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저는 더 늦기 전에 제가 생각하는 평화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역의 의무라는 국가의 요구보다 제가 믿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떳떳하고 자유로운 신앙의 길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평화에서 멀어지는 길이 아니라 평화라는 길을 걷는 것이 제 양심의 요구였고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4년 우연히 신뢰하는 벗의 예비군 거부 선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온 그 분의 글을 보며 제게 요구되는 평화의 의무를 떠올리게 되었고, 벗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저 또한 앞서 이야기한 고민을 거쳐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비군 훈련 거부를 하고 있습니다.
예비군 거부를 하며 저는 3년 동안 총 80만원의 벌금을 냈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100만 원의 벌금을 구형한 건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 중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50만원이 약식기소 되어 정식재판을 청구하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검찰이 150만 원 구형한 건이 법원에서 심리 중에 있습니다. 곧 통지서가 우편 배달 될 것입니다. 22일엔 3건의 훈련에 대해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처벌 받은 훈련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부과되며 거부에 함에따라 반복처벌 받고 있습니다.
반복 처벌도 무겁지만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갈수록 일상 활동이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에 시간을 많이 써야하고 언제 실형이 선고될지 모르기 때문에 삶에 대해 안정된 계획을 하기 어렵습니다. 국가가 저에게 요구한 훈련 6시간을 거부하면 국가는 6시간 이상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대체복무가 마련되지 않더라도 예비적으로 해결 가능한 방법은 있습니다. 국가가 요구한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면 됩니다. 벌금과 실형이 아닌 사회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제가 평화의 의무를 행할 기회를 얻는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물론 반복처벌로 봉사 시간은 끝도 없을 테지만 전쟁과 군대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회견을 통해 개인적 신앙과 신념에 따라 예비군훈련거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평화의 의미가 단순히 군대를 거부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길 바랍니다. 양심의 자유를 위해 대체복무가 마련되고, 병역거부자들이 더 많아져 군 내부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전쟁과 군대의 의미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데까지 이르기를 희망합니다.
한국 사회엔 평화를 일구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분들, 국가 폭력에 의한 용산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애쓰시는 유가족분들, 불합리한 핵발전소 건설을 막고 송전탑 뽑아내기 위해 싸우는 밀양할머니, 할어버지들, 강정 해군기지에 저항하는 주민과 평화지킴이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문제를 알리는 반올림 분들, 그리고 매주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집회 및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 분들 등 권력의 부당한 행태와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저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이 평화를 위한 일임을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불복종, 직접행동 등 평화의 행동은 다채롭습니다. 저항으로서의 평화가 축소되거나 오해되지 않아야 합니다. 더 적극적이고 폭넓으며 다양한 행동이 가능한 평화 활동이 넘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수출되어 동티모르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쓰인 영국제 호크기라는 전투기를 때려 부순 영국의 앤지 젤터처럼 평화를 위한 행동의 반경은 더 넓어지고 저항하는 평화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권력에 맞서 그들의 행동 반경을 좁히는 데 저의 불복종 운동이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합니다. 평화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