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마땅히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 군대 훈련소 기간 중 개인정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위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이 있었고 나는 2008년 촛불시위에 참여하였다고 적었다. 소대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소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링크된 동영상을 보여주며 촛불시위가 어떻게 선동이 되었나 설명했다. 좌파로 여겨지는 인물이 연단에서 연설을 하는 종류였는데 그 사람의 이력이 소개되며 그 사람이 빨갱이 혹은 간첩이라는 식의 영상이었다. 그런 사람이 연설을 하니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선동을 당한것이거나 빨갱이라는 영상이었다. 일개 훈련병에 불과한 내가, 사용하는 언어조차 -다나까로- 구속 되어있는 내가 거기에 반문을 하거나 내 생각을 말할 수는 없었다. 소대장은 시위에 나가지 말라고 하였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군대라는 곳에 대해 강렬한 거부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징집되어 명령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지닌 사상까지도 안보관, 이라는 미명하에 통제하려 드는 곳. 훈련소 곳곳에는 초등학생 시절 썼던 것 같은 빨간 글씨의 표어들이 군데군데 적혀있었다. 북한은 적이며 증오해야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더이상은 훈련소에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라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알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누가 나에게 북한에 대한 증오를 강요하는가? 누군가 현실에서 내 상식과 비추어 맞지 않은 소리를 하면 나는 거기에 대해 반문하거나 혹은 대화를 피한다. 그런데 내가 소대장과의 면담에서 내 생각을 말한들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시스템은 상명하복을 요구하지 상명하문이 아니다. 위에서 시키면 나는 묻지 말고 따라야 한다.
증오를 부추기는 이유는 증오가 있어야 상대를 ‘적’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군은 자위대가 아니다. 휴전 상태이며 언제든지 전시 체제로 돌입할 수가 있다. 따라서 군대에 갈 사람은 내 손에 총이 들려 있고 눈 앞에 적이 있다면 쏴 죽일 수 있는지,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
고등학생때 나는 기악부의 단원이었다. 남고 기악부는 규율이 철저한 곳이다. 선생 옆에는 각목이 늘 있었고, 무언가를 잘못하면 학생을 엎드려 뻗쳐, 시킨후 팼다. 고삼이 되어 나는 악장이 되었는데 규율과 위계질서 소속감 같은 것을 싫어하여 기악부의 규율은 느슨해졌다. 문제는 어느날, 단원들이 어떤 잘못을 해서 선생이 애들을 불러 팰 때 일어났다. 단원들은 줄지어 엎드려 뻗쳐있었다. 나는 선생 옆에서 권위의 대행자로 서있었는데 갑자기 선생이 나에게 각목을 넘겼다. 때리라는 거였다. 나는 당황해서 한손에도 안들어오는 각목을 들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엎드린 학생의 귀에 대고 아픈 척 하라고 귀띔을 줬다. 내 때리는 시늉은 선생의 마음에 차지 않았고 선생은 각목을 도로 뺏어 자기가 때렸다. 그런데 나는 그 상황에서 각목을 내팽개친다거나 단원을 대신해서 맞겠다거나 할 정도의 용기가 없었다. 나는 굴복해 때려야했고, 그게 십년이 지난 지금도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총을 쏠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과거의 내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 각목을 휘둘렀다. 각목은 힘조절이 가능하지만, 총알은 그럴 수 없다. 나는 그런 선택의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다. 그런 상황에서 비폭력이라는 내 신념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국가기관에 의해 개인이 도구화하는 것과 상명하복의 체계, 폭력에의 강요를 나는 거부한다.
군대는 없어지거나 그게 힘들다면 최소로 평화 유지를 위해서만 존재하기를 바란다. 군대에 징집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생겨서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도 명예로운 길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이상이 내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김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