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망치’)
촛불이 타오르면서 ‘비폭력’이라는 말이 함께 떠올랐다.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간 사람에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같이 ‘내려와’라고 외쳤고, 경찰 버스에 꽃 스티커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집회를 마치고 그 스티커들을 하나하나 다 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론은 집회 후에도 쓰레기 하나 남아있지 않은 광장의 모습을 ‘성숙한 시민의식’이라 평가했다. ‘비폭력 시위대 수가 전체 인구의 3.5%를 넘으면 정권이 바뀐다’는 한 미국 교수의 13년 전 연구가 재조명 받았고, 법원은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집회를 ‘허용’해주면서 집회 참여자들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을 그 근거로 들었다.
무엇이 비폭력인가에 대한 논쟁이 오갔다. 과연 경찰은 ‘제복 입은 시민’인지,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 직접행동을 하려던 사람에게 외쳐진 ‘내려와’가 비폭력이 맞는지, 어린이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시민에게 집회는 얼마나 안전한 공간인지, 집회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건 맞지만 현실적으로 법원의 판결이 중요한 건 맞는 게 아닌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백남기 농민은 ‘평범한 시민’이 아니었는지, 집회를 조직하고 관리할 ‘전문 시위꾼’들의 공로는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지.
비폭력?
망치(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의 트레이닝에서는 비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정의를 내리면 그 의미를 좁힐 뿐이다. 비폭력은 어떤 이에게는 사회 변화를 위한 전략적인 행동이론, 어떤 이에겐 지속가능한 유일한 저항 방식, 어떤 이에겐 그 자체로 삶의 철학이다.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폭력을 끝내기 위한 모든 행동과 태도가 비폭력이기에,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에 따라 비폭력이라는 말이 가장 크게 울리는 지점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도 괜찮다.

알바노조와 진행한 비폭력 트레이닝 – 비폭력과 젠더
알바노조 조합원들과의 트레이닝에서도 비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바로 ‘우리 안의 스펙트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세로축과 가로축을 ‘비폭력-비폭력 아님’과 ‘효과적-비효과적’으로 정해 바닥에 그리고, 다음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가장 일치하는 곳에 가서 선 다음 왜 그곳에 섰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 촛불집회에서 차벽 위로 올라간 사람에게 다같이 “내려와”라고 외치기
- 벌금폭탄을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이 참여할 수 없는 후원주점을 열기
-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소수의 활동가들의 결정으로 결의한 고공농성
모두가 다른 곳에 가서 섰다. 같은 곳에 섰어도 이유는 달랐다. (1)번 상황의 경우 차벽 위로 올라간 사람의 행동이 비폭력이 아니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에게 다수가 ‘내려와’라고 외치는 게 폭력이라고 말하는 입장도 있었다. (2)번 상황의 경우 청소년을 배제하고서라도 후원주점을 하면 벌금을 해결할 수 있으니 효과적인 결정이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특정 조합원(회원)을 배제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조합원 조직(조합원은 조합비를 낸다)에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입장도 있었다. (3)번의 경우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 상황이고 ‘소수의 활동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안의 스펙트럼’에 참여하는 알바노조 조합원들. 각 상황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자리를 움직이기도 했다.
사회운동에서는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부족한 활동가, 활동비, 시간, 감정을 어떤 활동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은 A라는 활동을 ‘한다’와 ‘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로 나타나지만, 그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스펙트럼’ 프로그램을 하면서 본 것처럼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두 다른 입장,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힘의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힘의 충돌은 조직 외부 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힘?
비폭력 트레이닝에서는 ‘힘(혹은 권력)’에 대해 다룬다. ‘힘(혹은 권력)’은 나쁜 말은 아니다. 사회 운동의 투쟁 대상을 ‘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힘과 우리의 힘이 다른 종류의 것일뿐 우리에게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들이 돈이야 많지만 200만 촛불집회를 만들 순 없다(관제데모는 그래서 문제다!). 그들의 힘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힘’(파워-오버, power-over)이라면 우리에게는 ‘연대의 힘'(파워-위드, power-with)도 있고, ‘내부로부터의 힘'(파워-위드인, power-within)도 있다. 우리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인식하고, 그 힘을 잘 다루는 것이 사회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회 운동이 가지고 있는 힘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나온다. 활동가, 후원, 연대, 참여, 투쟁.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동 조합도 마찬가지다. 단결하지 않으면 자본을 이길 수 없고, 단결은 공동체를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알바노조는 페미니스트 대오 속에서 함께 행진했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같은 구호를 함께 외쳤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여성주의,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도 한다. 집회에서 자유발언을 하다가 조합원이 소수자 혐오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노조 차원에서 바로 사과하고 조합원들에게 이에 대해 설명한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조직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신뢰와 존중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우리는 공동체라고 부른다.
젠더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권력이다. 젠더는 우리가 세상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보고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이분법은 남성성 아니면 여성성을 능동 대 수동, 이성 대 감정, 강함 대 약함, 통제 대 무질서로 연관짓는다. 가부장제는 남성성과 관련된 범주를 여성성과 관련된 것보다 중요하며, 똑같은 논리로 남성 젠더가 부여된 이들의 삶이 여성 젠더가 부여된 이들의 삶보다 더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 같은 논리에 따라 힘과 자원이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어떤 종류의 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누가 그 일을 맡는지, 사람들이 누구의 경험과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신뢰하는지, 그리고 누가 가족, 공동체, 사회의 리더 역할을 맡는지 살펴보면 불평등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캐티스 라스카, ‘젠더와 비폭력’) 알바노조 조합원들과도 (1) 젠더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젠더는 권력 및 정의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2) 젠더 관점이 우리 활동(조직, 의사결정 과정, 역할분배, 캠페인 등)에 왜 중요할까? 두 가지 질문으로 소그룹 토론을 진행했다.

‘젠더’에 대한 소그룹 토론 중인 알바노조 조합원들
젠더 뿐 아니라 나이, 국적, 장애, 학력, 지역, 경제적 상황 등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은 많다. ‘권력꽃(power flower) 그리기’ 프로그램은 내가 포함된 조직(혹은 사회)의 권력구조를 파악하기 좋은 프로그램이다. 알바노조와 함께한 트레이닝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해보았다.
- 먼저 다같이 우리 조직에서 어떤 것들이 권력이 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바노조에서는 나이(많을 수록), 말솜씨(잘할 수록), 대학 진학 여부(진학한 사람), 학생운동 경력(경력이 있는 사람), 경제적/시간적 여유 유무(여유 있는 사람), 성별(남성), 흡연 여부(흡연자), 음주 여부(음주자) 등이 권력이 된다고 한다.
- 다음으로는 이것들이 왜 권력이 되는지 토론했다. 성별의 경우 (1) 남성의 활동에는 이유 없는 신뢰가 보내지는 반면 여성에게는 더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 (2) 여성은 집에 빨리 가야한다는 분위기로 인해 밤까지 이어지는 활동(뒷풀이, 노숙 농성 등)에서 배제 되는 경우가 있어 남성이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 다음으로는 자신의 권력꽃 그림에 자신이 그 권력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색칠하고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서로의 권력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꽃이 많이 칠해진 사람도 있고 조금 칠해진 사람도 있었다.
- 마지막으로는 어떻게 하면 권력이 적은 사람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갖게 할 수 있을지, 권력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같이 모여 토론을 진행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 활동경력, 직책, 학력을 말하지 않기, 효율이나 성과를 기준으로 활동을 평가하는 분위기를 없애기,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된 활동을 좀 더 많이 나누기 위해 노력하기, 여성을 위한 지지 프로그램, 자기성찰 프로그램 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조직 내 권력구조를 파악하기 좋은 ‘권력꽃 그리기’ 조직 내 권력 구조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정체성이 얼마나 권력과 가까운지를 살펴볼 수도 있다.
“나중에”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참가자가 ‘권력꽃’ 그림을 가리키며 “알바노조의 활동은 저 꽃이 가작 적게 칠해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실 촛불집회에서 정말로 비폭력의 가치가 빛났던 순간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광장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던 순간들이었다. 여성, 장애인, 질병을 가진 사람 등을 비하하는 표현을 하지 말자고 약속하고 모두가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순간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모두를 위한 적폐 청산을 외치던 순간들, 한 번도 말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주었던 순간들.
폭력으로는 폭력을 끝낼 수 없다. 정권이 교체된다고 적폐가 청산되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은 또 ‘나중에’로 남겨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는 행동과 과정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오늘부터, 내가 활동하는 곳에서부터 우리가 원하는 다른 세상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적 결벽’을 강요하거나 변화의 뒷덜미를 잡는게 아니다. 그것이 폭력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이스브레이킹 게임 하나도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순한 사람들. 알바노조를 응원한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권리에 연대하는 알바노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