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군인권센터는 3월 28일 광화문 광장에서 “인권 침해하는 병역기피 신상공개 중단하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기자회견 순서
- 지금까지 상황 요약 설명.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당사자 발언. 홍정훈, 박상욱 (병역거부자)
- 발언 1. 박승호(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
- 발언 2. 김형남(군인권센터 간사)
- 기자회견문 낭독
- 퍼포먼스. 병역기피자 낙인찍기는 인권규약 위반
사회자로 나선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는 신상공개 제도의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12월 20일 병무청이 공개한 병역기피자 237명 가운데 160명 이상이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인 바, 이 제도가 처음 논의될 당시 중심이었던 고위층 자제나 유명인들은 전혀 걸러지지 않았고, 실형을 각오하고 군입대를 거부하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봤자 병역의무 이행 풍토 조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병무청은 올해에도 병역기피 신상공개 대상자를 선정해서 당사자들에게 소명서를 제출하라는 우편을 발송했습니다. 병역거부자 홍정훈, 박상욱 님도 소명서 제출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홍정훈 님과 박상욱 님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명서 제출 통지서를 받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박상욱 님이 준비해와 낭독한 발언문입니다.
저는 작년 12월 26일 훈련소에 입소하지 않고 병무청에 병역거부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얼마 후 병무청으로부터 병역기피자 신상정보 공개 통보를 받아야 했습니다. 기피가 무엇입니까? 게으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을 고의로 회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병무청으로부터 ‘기피자’로 명명되는 순간, 민간인 학살로 얼룩지고 가짜 안보로 전쟁위기를 생산, 조장하는 한국 군대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떠올랐습니다. 제주 4.3, 보도연맹 학살, 광주 5.18, 베트남. 이라크 파병, 대추리 진압. 제주 강정, 성주 사드. 누가 누구에게 기피를 말하는 것입니까?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경직된 병영국가를 형성하고, 자국민을 학살하고, 침략 전쟁에 파병되고, 방산 비리와 의문사로 얼룩진 군대야 말로 진짜 ‘기피’로 가득한 곳이 아닙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강정과 성주에서 평화로운 일상이 거짓 안보 논리로 파괴된 사람들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긴 고민 끝에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도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병무청으로부터 ‘병역기피자 신상정보 공개’ 통보를 받고나서,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반세기 넘게 기피와 부조리로 가득한 군대로부터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기피자’라 불린다면, 그것만큼 평화를 향한 길을 걷고 있다는 반증이 또 있을까요?
오늘 광장에 서니 지난 1월 이 자리에서 만난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님이 떠오릅니다. 그분은 33년 전 군에서 의문사한 아들의 흑백 사진이 인쇄된 피켓을 들고 팜플렛을 나눠주고 계셨습니다. 팜플렛에는 허영춘 일병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진상 규명하에 드러난 국방부의 은폐과정, 그리고 최근까지 진행되었던 재판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33년 동안 투쟁을 이어가게 한 이 나라의 국방부가 지키고자 하는 건 무엇입니까? 전쟁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까? 전쟁 브로커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입니까? 지금도 너무 늦었지만 정말 돌이킬 수 없기 전에 국가폭력의 과오를 반성하고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겹겹이 퍼진 기피의 얼룩을 털어내는 날, 그때 평화를 향한 걸음이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병역기피자’로 명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박승호 간사님이 신상공개 제도가 병역거부자들과 신상공개 대상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를 이야기하며, 병역거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가 유엔에서 병역거부권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게 했다며 꼬집어 이야기했습니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간사님은 국방부와 병무청이 한국군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문제의 근원은 내버려둔 채 입영 대상자들의 신상 공개를 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든다며 비판했습니다.
기자회견문 낭독이 끝난 뒤에는 병역거부자들이 병무청의 신상공개가 모욕을 주는 낙인찍기이며, 이는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하는 것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인권 침해하는 병역기피자 신상 공개 중단하라
1974년 홍성군 광천읍의 어느 시골 집 담 기둥에는 붉은 색 페인트로 ‘기피자의 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당시 읍 병역계 공무원이 쓴 글자로, 그 집에는 당시 병역기피자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1974년 7월 15일 기사에서 이 사건을 소설 <주홍글씨>에 빗대어 소개했다. “법의 집행자가 불법적으로 법을 집행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아무리 법의 제재라 해도 법은 법에 정해진 것 이하도 이상도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일이 문제가 되자 병역계 공무원은 결국 문제의 글자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유신시대에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 45년이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했다. 병무청이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병역기피자 신상공개’가 그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담벼락에 공개했던 것을 인터넷 홈페이지로 옮겼고, 당시에는 한 공무원의 일탈행동이었다면 지금은 병역법 개정을 통해 국가 기관인 병무청이 이를 시행한다는 점이다.
병무청은 작년 12월 20일 병역기피자 237명의 이름, 나이, 주소, 기피일자, 기피요지를 병무청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올해 2월에는 병역기피 신상공개 대상자를 900여명 선정해서 소명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서를 발송했다. 이 가운데 역시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포함되었다. 병역의무 기피를 예방하고 성실한 병역이행 풍토 확산시킨다는 게 병무청이 밝힌 신상공개 제도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결과를 보자면 신상공개 제도는 병역의무 기피 예방과 병역 이행 풍토 확산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월에 신상 정보가 공개된 237명 가운데 최소 160명 이상이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제도가 목적하는 바가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이 제도가 대상으로 삼는 대다수는 병역거부자다. 일종의 모욕주기를 통해서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겠다는 취지의 이 제도는 애초에 감옥에 갈지언정 양심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이들에게 아무런 효과를 가지지 못하며 이들의 또 다른 인권을 침해할 뿐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한국이 당사국으로 있는 유엔 자유권규약에 의해 보호되는 양심의 자유에서 파생되는 권리이며,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지 않고 징역형을 부과하는 것은 규약 위반임을 반복해서 지적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상공개 제도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가중시킬 뿐이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4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대체복무를 인정하라는 기존의 권고에 더해 이들의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오늘, 2017년 병역기피자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되어 소명서 제출을 요구 받은 병역거부자 홍정훈, 박상욱 그리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병무청은 병역기피자 신상공개를 즉시 중단하라.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인권침해 소지만 가득한 제도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병역 기피를 예방하는 것이 병역기피 예방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한국 정부에게 시급한 과제는 또 다른 인권침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국제사회의 지적에 귀 기울여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여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국제인권법상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2017년 3월 28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2017 3월 28일 인권 침해하는 병역기피자 신상공개 중단하라 기자회견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