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곧(다큐멘터리 감독)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팀에서는 책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전쟁 무기 산업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팀 책읽기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되니 참여하시려는 분들이나 관심 있는 분들은 전쟁없는세상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내가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저는 거부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전쟁없는세상’에서 겨우내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 분석>을 함께 읽었다. 책의 초입을 막 읽었던 날에, 망원역으로 걸어가며 함께 책을 읽은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답이 채 내려지지 않은 채로 지하철에 타기 위해 헤어졌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정신병리학자인 노다 마사아키는 이 책에서 중일 전쟁에서 학살 및 전쟁 범죄에 가담한 10여 명의 일본 군인들을 다루고 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전쟁에 가담하게 되었고, 학살과 같은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름에도 그것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었는지, 이후에 어떻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책 속에서는 그들이 마주한, 살육 기계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 의례가 등장한다. 신입 병사에게 포로를 직접 칼로 찔러 죽이라는 지시가 내려진다거나, 수술 교육의 일환으로 중국인 포로가 산 채로 실험대에 올려진다. 어떤 이는 큰 저항감 없이 지시를 따르고, 다른 이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실행에 옮긴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쟁 중에 내려진 명령이니 내 책임이 아니라며 살육에 가담했다고 한다.

<전쟁과 인간>표지. 안타깝게도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책 속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본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학살과 같은 잔혹한 지시가 내려질 때에, 나는 단호한 의지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는 까닭은, 학교나 직장, 군대에서 정도는 다르지만 권위에 복종해서 사소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를 실행에 옮겨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질문 자체를 바꾸라고 말한다. “복종을 거부하고,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서 강인한 의지가 필요할까”라고 묻는 질문은 강인한 의지의 유무에 우리의 사고를 가두어버린다. 강인한 의지가 없으면 평화를 추구할 수 없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의지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여전히 군국주의적이라는 지적이다. 심리학자로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도리어 “부드러운 감정”을 갖는 일이다. “부드러운 감정”이란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다른 사람들과 풍부하게 감정을 교류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렇기에 전쟁과 같은 극단의 상황에서도 고통을 당하는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있고, 학살과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때 기꺼이 상처 입는 마음이기도 하다.
저자는 일본에서 국가가 사람들의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이 경직되고, 군대라는 시스템에서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할 “부드러운 감정”이 마비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 속의 노병들은 학살을 저질렀음에도 심각한 정신적인 상처를 받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저자는 전쟁 시기 정신 장애를 치료한 육군 병원의 기록을 살펴보는데, 학살에 의한 죄의식이 있다고 기술된 것이 전체 8000건 중에서 단 2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1차 대전에 참여한 미군 10명 중 1명이 정신적 외상을 호소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67%가 악몽에 시달리는 것에 비해서 현저하게 적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드러운 감정”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해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벌이라고 말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6년간의 교육과 참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당시의 여러 정세가 반영된 일이겠지만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대부분의 연합국에서 일본군을 처형하거나 단순히 징역을 지운 것과 달리, 중국 정부는 일본 군인들에게 자신이 전쟁동안 저지른 일을 숙고하게 하고, 죽인 사람들이 스스로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여, 스스로 죄를 고백하게 하였다. 시켜서 한 일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정하던 일본 군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신이 저지른 피해의 고통에 공감하고, 스스로 용서를 구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회복된 “부드러운 감정”은 강력한 것이라, 일본에 돌아간 이들은 남은 반생동안 자신의 죄를 갚고, 전쟁을 반대하는 실천들을 이어나간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표현철 중위는 피난민이 가득찬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반발하다 탈영한다. 과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부당한 명령이 주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다양한 전쟁과 학살의 이야기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만약 내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그러나 나의 선택에 골몰한 나머지, 내 앞에 서 있을 상대방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의 총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숨결, 나를 바라보는 눈빛, 긴장감에 떨고 있을 피부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의 죽음 앞에 가족·사랑하는 이·친구들이 겪게 될 슬픔을 떠올린다면, 부당한 지시를 수행하는 일 역시 어려운 것이다. 그 일을 쉬운 일로 생각하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 일이 늘 어려운 것이어야만, 거부의 가능성이 점점 커질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질문을 상상한다. “만약 내가”가 아니라 “만약 우리가”라면 어떨까? 상대방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감정을 가진 사람이 모인다면, 거부의 가능성들은 곱해지고 곱해질 것이다. 연약한 사람으로서 함께 전쟁을 반대하는 실천에 기꺼이 공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