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아(작가)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팀에서는 책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전쟁 무기 산업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팀 책읽기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되니 참여하시려는 분들이나 관심 있는 분들은 전쟁없는세상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틀 전부터 18살 정도의 중국 처녀를 잡아다 놓았다. 나 자신을 위한 위안 상대로 삼았던 것인데,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처치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죽이는 건 재미없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그대로 실행했다. 나는 그 처녀를 발가벗겨…… 병사들은 오랜만에 배급된 고기를 반가워하며, 가지고 있던 기름으로 튀기기도 하고…….”
차마 글로도 다 옮기기가 힘들어 말줄임표를 이용하였다. 이 기록은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중화민국과 일본제국 사이의 전쟁)에 참전한 일본 군인의 것이다. 이 괴물도 과연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가의 『전쟁과 인간』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일본 군인들의 과거 기록과 현재 노인이 된 그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을 통해 일본의 전후 심리를 분석, 앞으로 일본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전쟁이 끝난 후 ‘탄바이’ 즉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면 일본으로 다시 되돌려주는 일을 함으로서 일본 군인의 죄상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상관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군인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한 군인은 탄바이를 통해 스스로 이런 결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실행자에게는 실행자로서의 책임이 있고, 명령자에게는 명령자로서의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먼저 실행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그러고 나서 가능하다면 명령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지식채널e,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의 한 장면.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발표했다.
‘나는 안 그럴 것이다’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음 실험을 눈여겨보자.
스위치를 누르며 전기충격을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나누어 진행한 스탠리 밀그램 실험(1961년). 연구자들은 여러 개의 단계가 있는데 전기 쇼크를 끝까지 누르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실험자들 대부분은 실험을 계속 진행했고, 최대치까지 스위치를 누른 사람들은 무려 62.5%나 되었다. 남들보다 일찍 실험을 중단한 단 두 사람만 “이 실험은 미쳤다”고 말했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자 다들 “실험을 시킨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밀그램은 “어떤 목적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회 조직에서 사람은 손쉽게 ‘대리 상태’로 되며, 자기 자신을 타인의 요구를 수행하는 도구로 간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10년 뒤 이 실험에서 좀 더 발달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도 있는데 추후 이라크 포로수용소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다시금 회자되었다.

영화 <내가 정말 미소짓고 있었을까> 포스터. 전없는세상 무기감시팀 쭈야의 추천으로 본 다큐. 숨을 거둔 팔레스타인 포로 옆에서 장난을 쳤던 여군이 스스로에 묻는다.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를 ‘권위를 분산시키면서도 개개의 권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손쉽게 복종하게끔 심리를 조장하고 있다. 더구나 분산된 것으로 보이는 권위는 실제로는 강고하게 구조화되어 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스템화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 국가의 동향을 비판해 나가는 자세
권력이 분립되어 서로 감시하는 관계가 시스템화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시민으로서 정치성을 충분히 발휘해야하며 비판의 자유(언론의 자유)는 기본적 조건이다. - 군대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밀그램의 연구는 병역의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양심에 기초하여 병역을 거부할 것, 또는 대체복무를 지지했다. 그는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어떤 종류의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좀 회의적인데 위기에 처한 국가는 병역거부자가 많아지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사람들은 권위의 선한 의사를 맹신하는 쪽으로 기울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인간이 되는 것
세속적 권위에 대해서 그것을 넘어서는 권위를 갖는 것이다. 신과 대화하며 사는 인간은 강하다. 그러나 신앙을 지녔다고 해서 모두 반항자일 수는 없다. 신앙자의 내면에서 ‘신께 기도하는 자기’와 ‘상황에 따라 사는 자신’이 대립 및 갈등하는 긴장이 요구된다. - 자신이 놓인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개인으로 자라는 것
명령받은 일이더라도 자신이 그것을 스스로 책임 아래 실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를 잊지 않는 자아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 결과에서 우리는 4가지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개인의 저항력은 약하다’고 전하는 밀그램의 실험 결과와 달리 사회적으로는 1번을, 개인으로서는 4번을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믿을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한다.
전쟁을 겪지도 않은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전쟁에 직접 관계하지 않은 세대도 책에 나오는 전쟁에 참가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의 진짜 슬픔, 전쟁에서 저지른 죄를 의식하고 사는 의미를 들어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도 경직된 역사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식과 마찬가지로, 아니 지식 이상으로, 감정을 소중히 키우고 풍요롭게 가꾸어야 한다. 노병의 슬퍼하는 마음에 공감함으로써 전후 세대도 감정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태극기 집회 참가 어르신들을 보며 ‘왜 이렇게까지 할까?’ 그리고 SNS에서 그들을 조롱하는 우리들을 보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전쟁을 겪은 우리 외할머니, 이웃집 어르신들 그리고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1970~1980년대를 보낸 부모세대와도 현 시국과 과거에 대해 대화가 잘되지 않는 불편한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닥쳐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국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지도, 그들의 얘기도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못난 대통령을 지지한 그들을 향한 ‘원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하다”
한창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나는 잠시 한국에 없었다. 오랜만에 통화가 된 엄마의 첫마디는 “미안하다”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촛불집회 사진을 SNS에 올려놓으면 바로 전화를 하여 딸을 검열(?)해주던 경상도 엄마였다. 정말 한국이 많이 변하기는 하는가보다 싶었다. 엄마는 그동안 딸 얘기를 잘 듣지도 않고, TV에 나오는 보도만 믿었던 자신을 자책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거 봐 엄마, 내 말이 맞았지?”하며 괜히 우쭐해졌다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엄마였다면 미안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소통을 진작 했다면 엄마가 사과해야 할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박정희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박근혜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로 부터 자유로울까. 그런 나에게 저자는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의 글을 인용하여 지적한다.
유대인 아내와 가까스로 살아남아 패전을 맞이한 야스퍼스는 죄를 자각하지 않는 독일인을 향하여 1946년 『죄책론』을 저술하였다. 그는 죄의 개념을 4가지로 구분해 독일인을 추궁하고 있다.
- 형법상의 죄, 국제군사재판소 규정이 결론지은 ‘전쟁범죄’ 등을 위반한 행위.
- 정치상의 죄, 정치에 무관심했거나 정치를 나치에게 넘겨준 점.
- 도덕상의 죄, 나치 정권을 지지하고, 관여한 행위. 다만 심판자는 자기 양심이며 타자는 그 사람과의 정신적 교류를 통해 책임을 물을 뿐이다.
- 형이상의 죄, 범죄가 저질러질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 앞에서 죄가 추궁될 것.
그는 “도덕상의 죄와 형이상의 죄란, 오직 개인만이 이것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의 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들의 죄는 끝나는 일이 없다”고 맺고 있다.
일본인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산다는 것은 이와 같이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었겠냐며 ‘우리들은 죄를 추궁하고, 그에 대해 현재의 시점에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지금 이 책의 저자가 고민하는 지점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크게는 내가 살아가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저항, 작게는 내가 일하는 일터, 가정에서조차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개인이 되는 것이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는데 분명 후보자들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가족들과 정치든 뭐든 피하지 말고, 우선 잘 듣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