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철(서강대학교)

 

 

제목으로 뽑은 세 단어의 공통점은 ‘para’라는 접두어이다. 그리스어 어원에는 버금(부, 副)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가끔 결함, 가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자격증이 없으나 전문직에 버금가는 기술을 가지고 전문가들의 옆에 서 돕는 사람을 일컬어 paraprofessional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제목의 두 단어는 2002년에 발간된 책의 제목에서 따왔다. ‘평행과 역설’(Parallels and Paradoxes)은 사이드(E. Said)와 바렌보임(D. Barenboim)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1978년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을 발표하고 단숨에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세기의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와 시카코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1981년 이후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알려진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사이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바렌보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태인이다. 출신지와 성장배경이 다른 학문과 음악 분야 당대 최고의 장인 둘이 만나 깊은 우정과 치열한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 음악과 정치에 대한 경이로운 통찰을 남겼다. 후에 두 사람은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설해 음악으로 정치적인 분쟁을 치유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평행(Parallels)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미’ 장애를 가진 장애인과 ‘장차’ 장애를 가질 비장애인. 이 둘의 함께 공존하고 있으나 평행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극단적인 힘의 비대칭성이 두드러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특별히 하루를 정해 장애인의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비대칭적인 약자로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이라고 부르고 기억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이번 4월 20일은 매우 특별한 장애인의 날이다. 강릉에서 열린 세계 파라아이스하키 대회 마지막 날 한국대표팀이 노르웨이를 꺾고 뜻깊은 동메달을 획득한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스슬레지하키라고도 불리는 이 종목은 하반신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양손에 스틱을 쥐고 얼음을 지치면서 경기를 한다. 나란히 평행으로 고정된 두 개의 날 위에 앉아 차가운 얼음 위에 뜨거운 몸을 던진다.

세 번째 결승골을 넣은 한국팀 14번 정승환은 아이스링크의 메시라고 불린다. 그는 5살 때 한 쪽 다리를 잃고 섬마을에서 자랐다. 너무 어릴 적에 다리를 잃어 꿈속에서도 다리가 없다고 아쉬워한다. 성장해서 다리를 잃은 친구들은 가끔 꿈에서라도 두 다리로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섬 친구들은 그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의족을 보여준 적은 없다. 열아홉 살 때 처음 슬레지하키를 타던 날 라커룸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의족을 보여줄 용기가 안나 썰매에 의족을 싣고 탔다고 한다. 그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빠른 파라아이스하키 공격수다. 경기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가 같다. 그의 몸짓은 늘 아름답고, 때때로 고귀하다.

 

역설(Paradoxes)

이번 대회 결승에서 캐나다에게 졌지만 미국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한국은 예선 리그에서 미국에 5:0으로 졌다. 깔끔하게 정석대로 공격하는 캐다나 팀과 달리 미국 팀의 특징은 빠른 스피드와 거칠고 변칙적인 공격스타일이다. 미국 팀 선수들의 스피드가 빠른 이유는 ‘양절단’ 선수가 많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절단된 선수들은 몸이 가볍고 허리를 써 회전하기 때문에 스피드와 기술이 뛰어나다. 미국 팀은 자기 팀 한 선수가 반칙으로 2분간 퇴장 당하고 한 명이 없는 상황에서 버텨야 하는 파워플레이가 되면 남아있는 네 명 모두를 양절단 선수로 교체한다. 한국 팀은 지난 경기 파워플레이 상황에서 네 명의 양절단 선수들에게 오히려 한 골을 허용했다. 골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장비담당 스탭 최영철은 ‘아 양절단!’하면서 탄식했다. 미국 팀에 유독 양절단이 많은 이유를 물어보니 미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수자원이 풍부(?)하다고 부러워한다. 아픈 역설이다.

한국 팀의 최고 맏형은 디펜스를 보는 68번 한민수다. 70년 개띠인데 나도 빠른 71년생이니 친구먹자고 했다가 까였다. 개와 돼지는 엄연히 다르다면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눙친다. 결국 서로 존대하기로 정리했다. 늘 활짝 웃은 표정으로 넓은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원래 역도를 했다) 농담을 던지는 그는 가끔 환상통으로 괴로워한다.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다리지만 분명히 아프고 대책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두 딸의 아버지인 그는 딸의 운동회에 가서 응원을 하다가 부모와 함께 달리는 순서가 있어서 슬쩍 자리를 떴다. ‘같이 뛰고 싶죠’라고 말하곤 애꿎은 나무를 걷어찬다. 한 손에 목발을 쥐고 몸을 날리는 멋진 돌려차기다. 그의 몸짓은 단단하고 날렵하다.

 

패럴림픽(Paralympics)

올림픽과 따로 진행되던 패럴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올림픽과 같은 곳에서 개최되기 시작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패럴림픽 개막식이 열린다. 알다시피 올림픽은 메가스포츠이벤트이다. 거대한 뻥튀기라는 의미의 ‘메가’와 일시적으로 반짝하고 사라지는 ‘이벤트’ 사이에서 스포츠가 질식된 형국이다. 인류의 공영과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은 자본과 정치놀음에 유린되고 있다. 오히려 올림픽 정신은 패럴림픽을 통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이탈리아와 예선전이 있던 날 오전 아시아인권포럼에 참석에 메가스포츠이벤트와 인권에 대한 토론을 했다. 평창, 도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올림픽 개회국 릴레이가 인권전문가들에게도 흥미롭게 비춰진 모양이다. 그 날 발표를 한 밍키 워덴(Minky Worden)은 메가스포츠이벤트를 통해 자행되는 인권유린을 고발했다. 실제로 올림픽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대형 경기장 건설과 토목공사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임금체불은 부지기수다. 현재의 올림픽은 냉정하게 말하면 IOC와 국가주의를 신봉하는 유력 정치가들의 돈잔치(돈지랄이라고 쓰려다 참았다)에 불과하다.

서두에서 살펴 본 접두어 ‘para’에는 ‘~을 넘어’라는 뜻도 있다. 평행과 역설을 넘어 패럴림픽이 질식된 올림픽을 되살리는 새로운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