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화(출판노동자)
백세희 작가가 서른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지금까지 읽지 않았다. 모두 아는 걸 나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마음.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아는 건 이런 정보들뿐이다. 나와 같은 학교의 같은 과를 나왔지만 마주친 적은 없는 8년 후배라는 것, 소설을 써왔지만 결국은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것. 그 전까지는 나와 마찬가지로 어느 출판사에 재직했다는 것.
나는 6년 전쯤 그 출판사에서 사장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요즘 출판 시장 트렌드에 대해 말하다 보니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야기도 나왔다. 내가 그 작가와 동문임을 언급하자 사장은 ‘뇌피셜’을 시작했다. 후배가 잘되니까 샘이 나지 않냐, 따로 연락해본 적은 없냐, 그 천재성을 배울 생각은 안 했냐, 등등. 한 시간 가까이 말 그대로 ‘압박’ 면접을 당한 나는 탈진하듯이 나왔고, 몸을 돌리는 순간 울고 말았는데, 역시나 합격 통보는 오지 않았다. 그 후로 재취업에 성공하기까지 더 심한 우울에 빠져들었고 사이사이 백세희 작가를 떠올렸다. 그 사장 말은 심술궂었지만 날카로웠다. 나는 ‘샘’이 났던 게 맞다. 그리고 서른다섯의 나이에 면접에서 ‘1만 시간의 법칙 모르냐, 10년 동안 뭐 했냐’는 모욕이나 당하고 있는 내 처지가 비참했다.
그리고 백세희 작가가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며칠 전 접했다. 작가가 지난 6월에 첫 소설책을 출간했음을 알았고, 읽었다. 제목은 <바르셀로나의 유서>, 책의 주인공 이름은 ‘샘’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유서>(위즈덤하우스, 2025) 책 표지
“이름은 이샘. 엄마는 샘처럼 맑고 투명하게 자라라고 했지만, 샘만 잔뜩 내는 인간으로 커버렸다. 그리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어른.”
세상을 떠난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라는 제목의 오토픽션을 굳이 읽는 것은 일종의 악취미일까? 그런 게 걱정되기도 했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을 시샘하고 남몰래 내 세계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그건 요즘도 내가 밥 먹듯 하고 있는 나쁜 짓이다). 그리고 백세희 작가의 명복을 빌고 싶었다. 내가 택한 방법은 그가 남긴 소설을 읽는 일.
<바르셀로나의 유서>의 화자 ‘이샘’은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이샘은 <죽고 싶지만 족발은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로 전 세계 30개국에 수출되는 100만 부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여전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닌 상태다.
“난 결국 나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유서를 썼어.”
사실 이 소설 자체는 그렇게 입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분량만 따지면 단편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짧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마지막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언급했던 소위 ‘외모정병’과 그로 인한 우울로 일축해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 같기도 하다. 고도비만인 게 뭐 그렇게까지 절망할 일인가. 마치 ‘우울증이 별거냐’라고 말하던 그 말투로.
자꾸 있지도 않은 가상의 어떤 사람들을 방패로 써서 민망하다. 사실은 내 속의 어떤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로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난 예쁘지 않음’에 매여 있다고?
하지만 내 속의 또 다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알지. 평생을 고도비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일인지. 그건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거기에 충분히 설득된 적절한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평생 고도비만으로 살다가 설상가상 현재는 인생 최고 체중까지 찍은 나에게도 이 책은 너무 익숙해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이 아니라 추모글을 쓰고 싶었다. 납작할 수 없는 현실이 늘 납작한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이 견디기 힘들다는 것에 대해서. 소설 속 샘이는, 아마도 백세희 작가 본인도 “칭찬은 절대 믿지 않고 지적은 종교처럼 믿고 산 사람”이어서 가닿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말해본다.
“…언젠가 누군가가 읽는다면 내가 얼마나 나를 아끼는지, 얼마나 싫어했는지, 또 얼마나 좋아하고 싶어 했는지를 알아줬으면 해.”
당신이 끝까지 스스로를 좋아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기억하겠다고. 그 고통과 노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삶을 기억할 것이라고. 당신의 용기로 인해서, 당신의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고, 마침내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믿기 어렵겠지만, 세상엔 우울증이라는 병이 실제로 있기에 ‘죽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은’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인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우리의 몸이 당신의 말처럼 “돌고 꺾이고 가끔 빛을 받으면서 결국 살아 있”다고. 내 안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환한 빛이 가득”하다는 걸 믿고 우리는 좀 더 가보겠다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어디쯤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그리지 못한 말이 있다. 그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너는 잘 견뎌낼 거야. 반드시 괜찮아질 거야.”
_ 2025년 5월 백세희,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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