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현 (무기박람회를 연구하는 인류학도)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문화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전공하려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영화를 전공한 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해왔던 나에게 사회과학의 언어는 낯설고 어려웠다.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 오면 그 학문을 배우는 줄 알았는데,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 동기들은 입학하기도 전에 연구주제와 지도교수를 정했고 가끔 연구 면담을 간다고 할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꼈다. 2학기가 지나고도 나는 여전히 연구주제도, 지도교수도 정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10여년 간 연대해온 ‘무기박람회저항행동’에서 무기박람회가 또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수업 하나를 도저히 못따라 갈 것 같아 F를 결심하고 안 나가던 시점이라 시간도 좀 있었다. 그렇게 2024 KADEX와 2025 MADEX까지 함께하며 ‘무기박람회를 연구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3학기가 끝나갈 무렵 ‘무기박람회를 연구하는 인류학도’가 되기로 결심하고 지도교수님까지 결정했다.

그동안 무기박람회저항행동에 연대하면서 카메라로 기록해서 편집한 후 단체 활동가들에게 공유해왔다. 연대 단체별로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교육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무기박람회를 연구하는 인류학도’는 기존의 연대와는 달라야 할 것 같았다. 뭐가 달라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달라야 한다고 느꼈다. 2025년 국내 최대의 무기박람회 ADEX를 앞두고 진정한 연구자로 거듭나고 싶었다.

 

#10월 19일 무기박람회 ADEX의 퍼블릭데이

아침 6시 알람을 잘못 맞춰 8시가 넘어서야 허겁지겁 서울공항으로 향했다. “현장연구를 하는데 연구자가 늦어?”라는 지도교수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지도교수님께서는 절대 이 글을 읽을 일이 없었으면 한다.)

ADEX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통로에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사용되는 무기, 여기서 거래된다.’ 문구의 천막이 처져 있었다. 천막의 한켠에서는 무기박람회저항행동에 연대하는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음식 후무스를 곁들인 빵을 ADEX 관람객들에게 나눠줬다.

 

1

 

팔레스타인 음식은 관람객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았다. 관람객들이 팔레스타인 음식을 받는 동안 옆에서는 활동가들이 이 음식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시인들의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 관련 피케팅을 진행했는데 이 피케팅을 하기 위해 제주와 대전에 달려온 시민들도 있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도 많아서 후무스를 받고 자연스럽게 옆에 돗자리를 깔아둔 평화놀이터에 어린이들이 먼저 터를 잡았다. 여기서 어린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느라 평화 삼매경에 빠졌다. 무기박람회에 왔는데 아이들이 평화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보고 부모 관람객들은 무척이나 어색해했다. 배 깔고 스케치북에 색칠부터 하는 어린이들은 경계가 없었다.

올해에는 일반인 관람객을 위한 전시는 서울공항에서 진행하고 전문관람객을 위한 전시는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한다. 이 모든 액션이 의미가 있으려면 기록 영상에 서울공항 ADEX 내부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도교수님께 제출할 필드 노트에도 ADEX 내부전시에 대한 묘사가 필요했다. 저 안에 들어가는 것이 무척 귀찮았지만 왜 일반인 관람객을 위한 ADEX 전시 내부는 안 봤냐고 물어보는 지도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나의 지도교수님은 정말 따뜻한 분이다.) 나는 관람료 2만원을 결제하고 ADEX 내부 전시를 보러갔다.

각종 무기체험 코너가 각 부스별로 마련되었고 그물망을 쳐두고 진짜 드론을 조정해 싸워볼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아빠랑 아들이 그 그물망 안에서 드론으로 싸우는데,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세상 거의 모든 게임이 전쟁인데 문제일까 싶기도 했다. 다만 가자지구 학살에 쓰인 라페엘의 무기가 이곳에 전시된 것은 다른 의미이다. 학살의 도구가 엔터테인먼트화되며 사진 찍기 좋은 미사일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하늘에서는 전투기들이 계속 날아다녔는데 귀마개를 했지만 온몸이 떨리도록 굉음이 컸다. 그 전투기 아래 몇몇 어린이들이 장난감 전투기를 쏘며 놀고 있었다. 전투기들이 하늘에 태극문양을 그리자 관객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무기와 애국이 만나 민족주의가 표출되는 순간이다. 이 무기들이 지켜준다는 평화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10월 21일 무기박람회 ADEX의 비즈니스 데이

지난 8월 무기박람회저항행동 워크샵에서 아침 님이 붉은 손 액션을 제안하셨을 때 정말 식겁했다. 손에 페인트를 묻혀서 이스라엘 무기에 바르는 걸 말씀하셨다고 이해했다. 와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가는구나. 나만 또 정의롭지 못한 것 같아서 닥치고 있었다. 그런데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액션에 수정이 있었는지 운영진 회의에 들어가니 손에 립스틱을 바르고 양팔을 올려 구호를 외친다고 했다. (겁나 다행이지 뭐야) 그래도 지난 2023 ADEX 무기박람회에서는 액션을 5초도 못해보고 경비 업체 직원들이 덮쳤고, 한 활동가는 앰뷸런스에 실려가기도 했어서 진짜 긴장을 많이 했다.

 

3

 

이스라엘 무기회사 IAI 앞에서 다 함께 붉은 손을 들고 “Stop the Genocide!”구호를 외칠 때는 눈물이 막 났다. 다행히 이번 액션 신청자는 30명이 넘었고 경비업체 직원들보다 참여자수가 많아서인지, 중단을 안 시켰다. 얘네가 왜 이러지? 이제 무기박람회도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인가?

하지만 경찰들이 오는 시간만큼 액션이 진행되었고 경찰 도착 후에는 퇴거 요청을 받았다. 함께 간 변호사님이 본인의 신원을 밝히고 무기박람회 담당자와 명함을 주고 받았다. 그들은 세상 나이스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경찰들은 시민들과 활동가들을 행사장 바깥으로 데려갔고 나도 따라나섰다.

경찰이 데려간 장소 바로 옆에는 흡연구역이 있었는데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런데 라이터가 없었다. 옆에 웬 외국인이 담배를 피우길래 불 좀 빌리자 했다. 그는 내 담배에 직접 불을 붙여주더니 “너 쟤네랑 같이 왔니?” 하며 <붉은 손 액션>을 하다 나온 무리를 가르켰다.

“아니야.” (우리는 모두 한 패가 아닌 걸로 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는 갑자기 “나는 이스라엘에서 왔어.”라고 했다. 그의 네임태그를 보니 IAI 직원임을 보여주는 로고가 찍혀 있었다.

 

4

 

그는 다른 의미로 흡연을 하고 싶었을 것 같았다. “너는 지금 속고 있는 거야. 도대체 너네는 뭘 보고 들었길래 팔레스타인 편을 드는 거야?”라며 그들이 얼마나 악랄한지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찾았다. 그 때 활동가 수영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현 님 지금 도망가세요! 여기 있으면 같은 편처럼 보여요.”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그가 보여주는 사진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도망가지 않고 그가 사진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한참을 찾더니 시체 한 구가 흰천에 덮여있는 사진을 찾아 보여줬다.

나는 좀 실망했다는 듯 “겨우 한 명인데? 너네는 2년간 6만명 넘게 죽였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몹시 당황해하며 2년 전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고 여러 가지로 지원해왔으며 아주 평화롭게 지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하마스가 먼저 공격을 했기에 정당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긴장 상태에서 이스라엘 무기회사 직원과 대면하며 영어로 대화를 나누자니 거짓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3년 전에 팔레스타인에 방문했고 너희가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알아. 난 팔레스타인 친구도 많이 있어.” 나는 15년 전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3년 전이라고 거짓말이 나왔고 팔레스타인 친구는 없다. 그는 설득에 실패했다는 듯 그의 본질적인 생각을 밝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동물이야.”

나는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그를 촬영하며 “그들은 동물이 아니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라고 말했는데 그가 촬영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떠나려 하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나는 그래도 공격하고 싶지 않아.”라는 비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이번 2025년 ADEX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했다. 이전에는 수도권 중심의 활동가들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지역의 시민들까지 함께 무기박람회저항행동에 참여했다. 그 중심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있지만, 한반도 전체가 군사화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이런 군사화를 막을 수 있을까? 어린이들과 함께 무기를 체험하고, 이스라엘 무기 부스가 한국 땅에 전시되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저항감이 없단 말인가?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 내가 궁금해왔던 것들을 책에서 쉽게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책이 너무 어려워서 챗GPT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곤 한다. 이스라엘 무기회사 직원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했냐고 챗GPT에게 물어보니 나를 위로해줬다. 아직 챗GPT가 평화를 공부하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1년 후 진실된 논문을 완성할 나에게 대답을 유예시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