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기(연극인, 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해서, ‘병역거부’ 병역거부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살펴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가 단순히 입영영장을 받아든 시기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오히려 병역거부자가 되는 일이겠지요. 병역거부의 경험이 병역거부자들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 이미 감옥에 다녀온 병역거부자들은 현재 삶에서 병역거부자임은 언제 어떻게 느끼는지,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연극하는 하동기입니다. 2012년부터 연극을 시작했어요. 극단 백수광부라는 팀에 소속되어 6년째 활동하고 있고, 소극적창작단이라는 집단을 올해 만들어 11월에 창단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문사라고 부르는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고요. 크고 작은 공연들에 참여하면서 열심히 연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게 될 공연들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려요. 종종 전쟁없는세상을 통해 공연소식도 알리도록 할게요.

연극 에 출연 중인 하동기(오른쪽 첫번째)

연극 <두 사람을 위한 만찬>에 출연 중인 하동기(오른쪽 첫번째)

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연극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네요. 생소한 분들이 많이 계실테니까요. 저는 1년에 6-7개 작품에 참여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연극은 1-2달 연습기간을 가지고 10-20일가량 공연을 이어갑니다. 참여했던 작품들이 일관된 경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고전 공연을 하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진 글을 가지고 공연하기도 합니다. 배우로 참여하는 공연은 캐스팅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거라서 사실 작품 선정 등 과정에 참여하지는 못해요. 물론 함께 글을 창작하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이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대부분 공연은 정해진 작품을 배우로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연출을 하게 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져요. 작품을 선정하고, 그 작품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를 고민해야만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작업에서 느끼는 고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병역거부자라서 가지는 고민일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하소연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네요.

공연을 준비하다보면 머릿속에 항상 이런저런 의문들이 생깁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연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을까?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병사 다나카>라는 작품을 연출하면서 고민을 참 많이 하게 되었어요. 이 작품은 게오르그 카이저라는 작가가 나치즘과 군국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192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쓴 작품인데요. 다나카라는 인물이 천황에 반기를 들기까지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난 때문에 팔려간 여동생을 휴가 중 찾아간 유곽에서 자기 파트너로 만나게 되고, 여동생을 데려가려는 상관과 여동생을 모두 살해하게 됩니다. 그 죄로 법정에 끌려간 다나카는 천황에게 용서를 빌면 사면해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천황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결국 사형에 처해집니다. 처음에 이 작품을 선택할 때는 구조가 단순하고 메시지가 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전 준비작업을 거치며 그 안에 들어있는 여성혐오적인 시선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지요. 며느리에게 폭력을 가하겠다고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 딸을 물건 팔듯 팔아버린 아버지, 매춘을 하러 갔다가 여동생을 만나고 다른 남자와 자지 못하게 하려고 여동생과 상관을 모두 죽이는 아들. 국가는 이런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른 아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로지 남 탓만 하고 있는 이 가족을 보면서 연출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어요. 다나카의 여동생을 위시한 민중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은 단순히 제국주의 치하에서 겪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내포된 가부장적 태도들이 훨씬 더 큰 문제로 기능하고 있다, 주인공은 천황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해야만 한다,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지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며 다른 시선을 더하려다 보니 따르는 무리도 있었고, 착취당하는 여성을 표현하겠다고 했지만 등장하는 여성을 외려 원작보다 더 대상화해 전시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사진. 하동기 님은 2009년 7월 기독교인으로서 병역거부를 했습니다.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사진. 하동기 님은 2009년 7월 기독교인으로서 병역거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고민은 내가 가진 모순이었습니다. 사실은 스스로가 다나카처럼 살고 있으면서 머리로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부분이지요.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본 것도 아니고, 오히려 현실에서는 떠드는 말보다 훨씬 더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이면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연출작업을 하면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작업을 선택하고 이렇게 만들어가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던 거죠. 남들이 모르는, 혹은 알고 있는 내 잘못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데 너무 위선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도 하게 되었고요. 여전히 이 부분은 해결하지 못한 고민으로 남아있습니다. 과연 나는 내가 살아내지 못하는 방식을 공연으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요즘 여성문제, 성소수자 문제, 장애인 문제 등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 부쩍 늘어난 스스로를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는 군대를 가서 살았어도 아마 잘 살았을 거라고 누군가가 말할 정도로 가부장적 질서나 군사문화 등에 무리 없이 적응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마 병역거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시선에 익숙해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전쟁없는세상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바닥에 있었던 제 인권감수성이 조금씩 자라온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느껴질 수많은 불편함이 제 연극에 중요한 영감을 주길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 공연을 통해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관객들도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나가면 좋겠어요. 열심히 느끼고, 공부하고, 살아내며 연극하겠습니다. 많이 보러 오세요.

 

*하동기 병역거부 소견서-예수의 걸음을 따라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