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맹(병역거부자,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지난 5월 말, 독일 병역거부 운동 단체 ‘커넥션Connection e.V.’이 조직한 강연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동아시아 선교회EMS’의 펀딩을 받아 커넥션의 루디Rudi 활동가가 “분단국가에서의 병역거부 운동 그리고 반군사주의antimilitarismus und kriegsdienstverweigerung in einem geteilten land”란 제목으로 강연을 조직했고, 거기에 저는 병역거부 당사자이자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을 소개하는 사람으로 다녀온 것이지요.

첫 강연 장소였던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하루에 한 도시씩 돌아 커넥션 사무실이 있는 프랑크프루트 인근 오펜바흐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방식과 강연 내용은 2년 전 방문(2년 전 방문하고 나서 쓴 글 보기) 때와 비슷했습니다. 제가 발표자로 초대된 곳들은 대체로 두 종류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분쟁 지역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어떤 평화적 실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종교 단체이거나 독일에서 병역거부 운동을 했던 단체들이었습니다. 기차역에서 저를 기다리고 맞이해준 이들은 전부 다 병역거부자였다는 점도 2년 전과 다르지 않았네요.

 

평화주의 신념을 판별하는 질문의 함정

강연 일정 중반에 커넥션과 네덜란드 현지 평화단체들이 지원하고 있는 한국인 병역거부자를 나이미겐Nijmegen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지난 학창시절로 족하고, 남을 쏴죽이는 연습을 해야 하는 집단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택한 이 시간들이 마치 “국가에 대드는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법’ 체류의 길을 택하지 않는 한 한국으로 강제 추방이 될 것을 상상하며 한국의 감옥은 어떤지를 저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난민 신청 과정에서 꾸려진 ‘서포트팀’을 통해 ‘전쟁없는세상’이란 단체가 서울에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고 했고, 무엇보다 ‘병역거부’란 단어가 있는지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그의 말이 흥미로웠습니다.

입영일을 앞두고 출국을 하여 작년 10월 암스테르담에서 망명 신청을 한 그는 네덜란드 이민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에 군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짜 신념’으로 난민 지위를 얻으려는 건 아닌지 판별하겠다는 것이죠. 사실 이 질문은 어떻게 답을 하더라도 질문을 던진 자가 만든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는데요. 총을 들지 않겠다고 하면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지 않는 ‘무임승차자’가 되고, 싸우겠다고 하면 망명의 근거인 평화주의 신념이 허위라는 답이 나올테니까요.

네덜란드에 통틀어 3명 있다는 한국어 통역 공무원과 국선변호인 그리고 현지 활동가들로 구성된 ‘서포트팀’의 지원을 받아 임한 재판에서 이 한국 청년은 “군대가 아닌 외교를 통한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한 나라만 먼저 총을 내릴 수 없기에 딜레마가 있다”는 요지로 답을 했습니다. 자기 신념을 포장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이상주의자로 보이고 싶진 않아서 솔직하게 답하려 했다는 그의 의도는 오히려 “평화주의 신념의 진정성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판결로 이어져버렸습니다.

 

“평화주의자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평화주의자가 아닌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전날 강연이 있었던 함부르크에서 기차를 세 번 갈아타고 6시간이 걸려 나이미겐에 도착한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망명 신청이 기각됐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이태원에서 일할 때 알게 된 네덜란드 친구가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 난민캠프에서 역으로 마중 나온 그의 표정은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고민과 상념들로 밝지가 않았습니다.

저녁엔 ‘서포트팀’의 바트를 만났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지원하고 있는 이 한국 청년이 자신의 평화주의 신념을 입증해내야만 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바트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59년생은 징집 영장을 받지 않았지만, 60년 1월 6일에 태어난 자신은 입영통지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폭력을 쓰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는 바트는 84년에 병역거부를 신청했고, 이때 병역거부 이유서 제출을 요구받은 것에 격분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군대에 가는 이들은 입대 이유를 적어내야 하는 절차를 겪지 않는데, 군대를 안 가겠다는 자신은 합당한 이유를 적어내라는 부당함에 너무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바트 아저씨는 망명 신청을 기각한 네덜란드 당국의 논리를 되돌려 “그가 평화주의자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평화주의자가 아닌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독일 퀼른에서 진행한 강연에 참석 중인 날맹. 강연은 퀼른의 한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열렸는데 목사와 신자들 모두 평화운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다.

독일 퀼른에서 진행한 강연에 참석 중인 날맹. 강연은 퀼른의 한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열렸는데 목사와 신자들 모두 평화운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다.

 

군사화에 함께 저항한다는 것

1980년대 중반 완전거부(total objection)를 선언했던 독일의 활동가 안드레아스는 대체복무제도가 반군사주의자들을 체제 내로 흡수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석을 한 바 있습니다(안드레아스의 글 보러 가기). 독일 사회에서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병역거부자들은 신청 과정에서 “여동생이 강간당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식의 질문을 받았고 ‘겁쟁이’라는 낙인이 뒤따르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군의 현대화’라는 흐름 속에 군 병력이 축소되고 대체복무자의 숫자가 징집 군인 숫자와 비슷해지는 상황에 이릅니다. 안드레아스는 이 과정 속에 ‘병역거부’가 애초 치열하게 제기했던 군대와 전쟁, 국가에 대한 정치적 담론들이 독일 사회에서 사라진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와중에 등장한 프레임이 “인권에 기반을 둔 병역거부 vs. 반군사주의 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입니다. 병역거부 사유서를 ‘복붙’해도 되고, 굳이 대체복무를 하지 않고도 군 면제를 받기 쉽지만 자기 커리어와 관련된 분야에서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이도 많아진 상황을 안드레아스는 ‘탈정치화된 병역거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90년 걸프 전쟁 당시 15만명이 병역을 거부하고 독일군 파병을 막아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99년 나토군의 유고슬라비아 폭격 당시에는 비판 여론이 잠잠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상,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군복무냐 대체복무냐’의 선택권 담론(‘인권에 기반을 둔 병역거부’)은 군사화에 저항하는 운동의 논리가 되기는 어렵다는 요지의 주장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망명을 신청한 한국 청년이 심사 과정에서 맞닥뜨린 질문, 즉 ‘군대의 필요성’에 어떻게 답을 하든 함정에 빠지는 상황에 답할 수 있으려면 ‘개인의 선택권’과 ‘반군사주의’ 담론 모두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주장의 순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국가가 병역거부자들을 관용해온 방식(“사상의 다름은 존중받아야 한다”)의 논리가 아니라 군사주의를 문제 삼는 보다 급진적인 논리를 먼저 중요하게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관계와 토대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군대의 존재는 사회의 군사화, 즉 위계질서에 따른 명령과 복종,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라는 분할 속에 ‘말’이 아닌 ‘무력’에 의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재생산하는 것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점을 지적해야겠지요. 군사화를 촉진하는 가치의 총합인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이 네덜란드에 대한 애국심이나 나토 군대에 복무하는 것 또한 거부하는 선택을 낳겠지만, 이러한 사상을 가진 개인의 권리까지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 민주주의에 더 가까운 사회일 것입니다.

덧붙여, 자신의 신념을 설명할 언어가 지금 당장은 없더라도 그 상태 또한 군대를 거부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당한 신념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짚고자 합니다. 이 부분이 가능하려면 결국은 군대를 거부하는 것이 상식인 사회를 만드는 노력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 가는 것이 보편인 사회에서 군인들이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 것처럼, 언젠간 병역거부란 단어를 몰라도 누구나 병역거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선 이제 더 이상 병역거부란 단어를 굳이 병역기피나 탈영병과 구분할 필요가 사라질 것입니다. ‘커넥션’이 자신들이 지원하고 연대하는 존재를 ‘병역거부자와 탈영병deserters’이라고 병기한 문제의식과 맞닿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년 전 독일 방문 때와 달리 이젠 ‘인권대통령’이 집권하게 된 한국에서 대체복무 도입을 넘어 군사화에 저항하는 운동의 논리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커졌습니다. 일차적으로는 탈영병이든 전쟁 저항자이든 병역기피자이든 군대에 협조하지 않는 이들의 행위를 재의미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요. 더 나아가 병역거부 운동이 입영 통지서를 받은 일부 남성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마치 터키 여성주의자들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던 것처럼, 이 사회의 군사화된 가치들을 드러내고 맞서는 과정인 동시에 차별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연대를 가능케하는 운동의 언어를 함께 고민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