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전쟁없는세상 피망팀)
※ 이 글은 게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Life is Strange>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나
오늘은 자기 고백적인 글을 써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는 게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는 사람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는데, 나는 그랬다. 많은 조건과 행운이 따라줘 가능했던 일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해서 그 밖에 큰 관심사가 없었고, 다니던 학교가 하고픈 공부에 몰두하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기에 학교 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앞으로도 계속 수학을 공부해서 수학자가 되고 싶었다. 당시 내게 수학은 학문이 아니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으로서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다.
그런 매진일로의 삶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있었고, 나는 한동안 공부를 쉬면서 사회과학과 사회운동처럼 낯선 것들과 이전에 보지 못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나, 졸업 이후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조금씩 틀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십수 년 전의 몽상적인 수학도가 지금의 모습이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이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게임매체 IGN에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맥스가 내가 지금껏 플레이해 본 비디오게임 캐릭터 중 가장 공감되었던 이유 – 그리고 자신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그녀의 여정이 나의 불안을 헤쳐나가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가」라는 글을 읽으면서였다.
“열 여덟 살의 맥스는 사진작가의 꿈을 따라, 5년간 떠나온 고향 아카디아 베이에 돌아온다. 맥스는 들뜬 마음으로 명문 블랙웰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이런 포부는 일상의 거대한 사회적 장벽에 가로막혀 금세 가라앉고 만다. (…) 그러나 맥스는 [재회한 옛 친구] 클로이와 함께 마주하게 되는 물리적·정신적 난관을 통해 점차 변화한다.”

맥스와 클로이
나 또한 글쓴이와 맥스처럼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살아오면서, 클로이처럼 가까운 이들의 영향으로 “자기회의와 불안의 안개를 뚫고 나아갈 용기”를 수없이 얻었다. 과거의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완전히 얼어붙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최소한 몇 개월이 지나야 가까스로 먼저 입을 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고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으며, 작은 생각 하나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도 한참의 고민이 필요했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다. 그때마다 나에게 생각을 물어봐 주고 행동을 부추겨 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여전히 이전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글쓴이와 같은 마음으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를 플레이했고, 여전히 인생게임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비록 실제 삶에서 나의 결정이 맥스처럼 강단 있거나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 당시 내 심정은 그랬다. 나는 더없이 행복했던 향수 어린 학창 시절의 추억에 머물며 거기에 매달릴 것인가, 눈앞의 자욱한 안개를 넘어설 것인가의 기로에 있었다. 내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것이 맥스였다.”
2. 삶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돈노드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발사에서 만든 이야기 중심의 그래픽 어드벤처 비디오게임이다. 후문에 따르면 많은 회사가 선뜻 게임의 판권 구입을 주저했고, “주인공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은 곳은 결국 이 게임을 배급한 스퀘어 에닉스가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주인공 맥스는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섹시한 몸매에 꽉 끼고 헐벗은 옷을 걸친 터프한 여전사’ 혹은 ‘악당에게 감금되어 용사의 구출을 기다리는 가녀린 공주’가 아니라, 외모도 성격도 크게 돋보이지 않는 수줍고 또래들 사이에 겉돌며 인디포크와 B급 영화를 좋아하는 괴짜 예술 지망생이다. 그들은 “[이런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게임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맥스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른 ‘남성’ 캐릭터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거나 여성 캐릭터와 ‘동성애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이성애자 남성] 플레이어들이 거북하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점이 퀴어 아웃사이더로서 나에게는 맥스의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보다 도움이 되었지만, 배급사들의 우려와 달리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수많은 게이머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상업적 성공과 수상의 영광—골든 조이스틱 올해의 연기상, 더 게임 어워드 임팩트 게임상, 영국 아카데미 게임 부문 스토리상, 게임즈 포 체인지 올해의 게임 및 최고 임팩트상, 스팀 어워드 “우는 게 아냐, 눈에 뭐가 들어갔어”상—을 한번에 거머쥐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당신이 그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은 맥스가 갑자기 갖게 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다. 맥스는 클로이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우연히 발견한 이 능력으로 남들을 도우려 하지만, 그때마다 의도치 않은 뒤틀린 결과를 불러오고 마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후 재앙에 휩싸인다. 마지막에 맥스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클로이를 살릴 것인가, 순리에 따라 클로이를 희생하여 잘못된 것을 모두 돌이킬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다. 게임은 답을 정해주지 않는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몫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인물의 행동을 관찰하는 대신에, 직접 캐릭터를 움직이고 말과 행동을 결정하며 자아를 투영한다. 칠판에 작은 낙서를 남기는 것부터 위험에 빠진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까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른 인물과의 관계와 뒤에 일어날 사건이 변한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범위 안에서 자신의 성격에 따라 캐릭터를 형성할 수 있고, 그러므로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자칫 동일시하기 어려울 수 있는 특이한 주인공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다양한 층의 게이머에게 인정받고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게임의 서사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삶의 보편적 특성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과거의 선택과 그 결과를 바꿀 수 있음에도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은, 각 선택이 당장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해도 궁극적인 결과는 알 수 없고 결국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실제 삶의 본질을 정확히 반영한다.
3. 평화
평화는 군대와 국가, 자본 같은 거대담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 일상적인 차별과 착취의 결과물이듯 평화 역시 일상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며,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일상과 사회 구조에서 제거하려면 평화는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자기 삶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평화의 출발점이다.
나에게 평화는 선택과 행복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내 삶에는 행복과 불행의 양극이 공존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이에 대한 후회는 없다. 만약 내가 계속 수학을 공부했더라도 그것이 나의 온전한 선택인 한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남의 시선에 구애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체하더라도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총부리를 겨누지 않아도 되고,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평화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의 상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타인의 방해나 불공정한 기회에 속박되지 않고 평등한 물리적·정신적 토대 위에서 자기만의 평화를 누릴 때, 비로소 세상의 평화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누군가의 탐욕이 다른 사람의 평화를 깨뜨릴 때, 다툼과 전쟁은 일어나고 폭력과 죽음은 확산된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내가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고, 세상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게임이 반드시 전쟁이나 역사, 이데올로기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과 학교, 직장에서 내리는 모든 크고 작은 선택에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이 폭력과 차별 없는 세상에 기여할지를 고민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평화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출시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