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간사)

 

 

2011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기억한다. 당시 홍대 인근 재개발로 인한 강제퇴거에 맞서 싸운 마지막 가게 ‘두리반’에선 작은 평화 콘서트가 열렸다. 초대 손님은 개척자들(Frontiers) 대표 송강호. 공연 중간의 짧은 토크에서 사회자는 송강호에게 물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겐 어떤 ‘평화적 상상력’이 필요할까요?”

평화적 상상력. 듣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찬란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마법 같은 단어. 난 그가 오랜 세월 분쟁 지역을 다니며 깨달았을 평화 운동의 궁극적 이치를 말해 줄 것 이라 생각하며 잔뜩 부풀어 있었다. 곧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오히려 그는 질문을 듣고 약간 정색한 듯 보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평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고통 받는 현장에서 맞이하는 장렬한 희생입니다.”(궁서체x100)

순간 0.1초 정도 시간이 멈추면서 무엇인가 관통했다. ‘이 사람은 정말 평화에 미쳤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에게 평화운동은 삶을 바치는 제례(祭禮)였고, 그 삶을 나누는 것이 다른 이들을 평화운동으로 초대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를 믿고 평화를 실천하는 신앙인이자 운동가로서 송강호와 박정경수가 쓴 편지 글이다.

송강호는 분쟁지역에서 평화교육과 긴급구호 활동을 하는 ‘개척자들’의 설립자로 르완다, 소말리아, 보스니아, 동티모르 등 여러 지역을 찾아다닌 현장 운동가다. 박정경수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 6개월 동안 수감된 이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미군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군사주의 반대 평화운동을 해온 활동가다. 다른 지역, 다른 출신의 두 활동가가 평화의 길을 걷다가 마주한 곳은 바로 해군기지를 짓고 있던 제주 강정 마을이었다.

아이티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송강호는 르완다, 소말리아, 보스니아, 동티모르 등 분쟁지역에서 평화 활동을 펼쳐온 평화활동가다.

아이티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송강호는 르완다, 소말리아, 보스니아, 동티모르 등 분쟁지역에서 평화 활동을 펼쳐온 평화활동가다. 사진출처: 개척자들

 

위험한 평화

교도소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던 박정경수와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에서 수감된 송강호. 두 사람의 공통점-‘감옥살이’는 우연일까.

“..선생님! 왜 이 나라는 평화를 바라는 이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걸까요. 그들을 모두 감옥에 넣어 버린다면 과연 이 나라는 평화로워 질까요? …(중략)… 매년 총을 들지 않겠다는,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할 수 없다는 수백 명의 청년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민들마저 범법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일까요…”

지난 10년간 강정마을에서 연행된 사람의 숫자만 약 700여명, 수감된 사람은 60여명에 달한다. 부과된 벌금은 3억 원이 넘었다. 끝이 아니다. 해군은 기지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손해책임을 묻겠다며 해군은 34억 원의 구상권을 청구했다.(다행히도 정부는 2017년 12월 12일 구상권을 철회했다.) 주민들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시작한 공사를 멈추라고, 강정 앞바다의 연산호들을 죽이지 말라고, 용천수가 샘솟던 구럼비 바위를 콘크리트로 덮지 말라고, 강정을 생명평화 마을로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만들자고 저항한 대가였다. 대추리에서, 강정에서, 소성리에서 대통령이 누구냐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평화’는 늘 불법이었다.

박정경수의 외침에서 지난 2월 개최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주제를 떠올린다. ‘행동하는 평화’(Peace in motion). 작은 촛불들이 모여 커다란 비둘기 형상을 만들고, 존 레논의 ‘Imagine’이 울려 퍼지는 순간, 그토록 숭고한 평화의 가치를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질감이 들었다. 억압이 존재하는 곳에서 때 묻지 않은 새하얀 비둘기의 모습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을까. 행동하는 평화가 그렇게 고울 수만 있을까.

감옥 출소 직후 박정경수(왼쪽). 박정경수는 병역거부로 수감된 뒤 전쟁없는세상,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활동해온 평화활동가다.

감옥 출소 직후 박정경수(왼쪽). 박정경수는 병역거부로 수감된 뒤 전쟁없는세상,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활동해온 평화활동가다.

 

평화의 길에서 이어지는 사람들

하지만 억압이 있는 곳에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땡볕 아래서 모래먼지를 뒤집어 쓰며 공사현장을 막아선 사람들, 온 몸에 쇠사슬을 감고 덤프트럭을 막아섰던 사람들. 평화는 새하얀 비둘기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평화의 다른 이름은 ‘저항’이라는 걸 알게 해준 사람들.

송강호의 말처럼 강정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올곧은 길을 오롯이 걸어하는”사람들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선물’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박정경수는 자신이 병역거부를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길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왠지 모르게 앞으로 남은 삶이 무척 외로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며 혼자 외로워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중략)… 차별의 두려움보다 어쩌면 몸서리치는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변에는 누가 있나 돌이켜 본다. 저 멀리 떨어진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의 희생자들을 지금도 기억하며 가슴 아파 하는 사람. 과거 학살의 역사를 ‘지금, 이곳’에서 증언하며 살아가는 사람. 가족에게 거부당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병역 거부를 결심한 사람.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이는 훈련을 할 수 없다며 향후 10년 간의 재판과 벌금을 무릅쓰고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 누군가에겐 터무니없는 이상주의자, 꾀가 없는 바보일지 모르나 나에겐 끊임없이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 사람들이 이 길 위에 있다. 그러면서 다시 묻는다. 나에겐 ‘그 사람’이 있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그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지.

 

경계를 넘어 넘실거리는 평화

3000일이 넘도록 저항했지만, 결국 제주해군기지는 완공되었다. 이게 끝은 아니다. 송강호는 ‘새로운 전환’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가 ‘멘탈갑’이거나, 자위적인 정신승리를 하는 게 아니다. 숱한 억압 속에서도 평화를 꿈꾸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며,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이 큰 싸움의 일부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이웃나라 일본과 미국의 군사주의에 의해 희생양이 되어 버린 오키나와 주민들의 싸움이요, 전운이 감돌고 있는 남중국해의 여러 섬이 닥친 운명적인 싸움이기도 합니다.”

기지 건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웃나라의 섬 주민들과 우리의 현장을 연결하는 연대적 자각. 해군기지를 제주도에서 몰아내는 것이 실은 전 지구적인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는 일이라는 확신. 우리의 승리가 이웃나라 섬 주민들에게도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이 싸움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지난 해 11월 제주 해군기지에 미 핵잠수함이 입항했다. 강정마을에서는 동북아시아에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전략무기를 당장 치우라며 피켓을 들었다. 해군기지가 완공 된 이후에도 강정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월 24일 열리는 토론회 포스터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월 24일 열리는 <핵잠수함 들어온 제즈, 우리는 무엇을 할것인가> 토론회 포스터

그래서 지금도 꿈을 꾼다. 그 언젠가 남과 북이 서로에게 들이댄 총구를 내려놓고. 대화하며 평화를 연습해 나가는 꿈. 대추리에서 강정에서 소성리에서 군사기지가 사라지고, 평화의 학교가 만들어 지는 꿈. 억압적인 군사문화, 불안으로 유지되는 국가안보라는 이데올로기가 역사 뒤로 사라지고, 평화가 상식이 되는 꿈. 성경이 말하는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꿈.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로부터 이어져온 이 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상상을 해본다.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 꿈들이 현실이 되는 상상도 해본다.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주는,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 난 평화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