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비폭력 트레이닝 트레이너)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이 매년 여름 개최하는 평화캠프가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평택평화센터에서 열립니다올해는 특히 직접행동/캠페인을 조직해본 경험이 있는 활동가(본인은 스스로를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를 대상으로 열립니다어떤 식으로든크든 작든 직접행동/캠페인을 조직해본 활동가들과 함께 다양한 게임워크숍소그룹 토론으로 사회운동과 사회운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평화캠프 시즌을 맞이하여 전쟁없는세상은 캠프에서 고민하고 논의할 주제에 대해 미리 기획연재를 준비했습니다기획연재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촛불대통령 시대의 사회운동
  • 사회운동의 여덟 단계(Movement Action Plan, MAP)
  • 사회운동의 198가지 방법
  • 삶과 혁명건설적 대안(Constructive Program)

사회변화가 꼭 사회운동을 전제해야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운동이 만개했을 때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많은 활동가분들을 2018 평화캠프에 초대합니다.

 

병역거부운동 18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순간

최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이 헌법에 불합치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8년을 이어온 병역거부운동이 대체복무 도입이라는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병역거부운동에 헌신해온 활동가들, 병역거부자들 누구도 제도 하나 바꾸는데 18년이 걸릴지 처음에는 짐작조차 못했다.

18년을 거쳐오면 커다란 위기가 몇차례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조직 내 민주주의 혹은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구조와 문화를 자랑하는 전쟁없는세상이었고, 가난해도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운도 따랐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활력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 대체복무제 도입 약속이 이명박 정부 들어 뒤집어졌다. 유엔 등 국제 기구 활용, 국회에서 입법 노력, 법정 투쟁 무엇도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병역거부자는 지속적으로 등장했지만,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도 더 이상 관심을 갖지를 않게 되었다.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는 7년 전보다도 후퇴한 결과로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더 이상 나은 상황을 가져오지도 못한 채 모두들 방향을 잃고 지쳐가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우리 운동의 성공을 가로막는가?

활동가들은 언제, 왜 지칠까? 무엇이 사회운동의 성공을 방해할까? 흔히들 생각하기에 비민주적인 위계적인 조직 문화와 조직 구조, 가난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걱정 등 여러 요인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로 많은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을 떠난다.

위의 요인들 못지 않게 활동가들을 지치게 하고, 사회운동의 성공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사회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이해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전략 부재나 잘못된 전략 수립 또한 활동가를 지치게 하고 사회운동의 성장과 성공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의외로 활동가들은 사회운동의 실패나 활동가들의 번아웃을 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전략 부재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2010년대 초,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이 겪었던 어려움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다.

당시 전쟁없는세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운동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이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진단할 수 있었고, 우리에게 맞는 전략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 이때 사용했던 툴이 바로 빌모이어가 정리한 ‘사회운동설계(Movement Action Plan, 이하 MAP)다. 이 글에서는 사회운동이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해하고 각 과정에 알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 MAP를 통해 설명할 것이다.

 

사회운동의 여덟 단계

빌 모이어는 성공한 사회운동을 분석하여 대체로 아래와 같은 여덟 단계를 거친다고 정리했다. 이러한 분석과 정리는 빌 모이어의 고유한 작업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마틴 루터 킹은 사회운동을 6단계로 정리했고 조지 레이키의 5단계로 정리했다. 이 글에서는 빌 모이어의 8단계를 살펴볼 건데, 중요한 건 8단계니 6단계니 하는 숫자가 아니라, 사회운동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사회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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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모이어의 8단계 간략 설명: 반군사주의 병역거부 캠페인의 대체복무 도입 운동을 예시로

1. 일상적인 활동
보편적 가치에 위배되는 핵심적인 사회문제가 존재하지만 권력자들은 그 문제가 지속되는 것을 바라고 사람들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2000년 이전, 여호와의증인이 병역거부를 지속하지만 아직 병역거부라는 개념조차 공론화되지 못한 상황이 1단계에 해당한다.

2. 기존 절차의 실패를 보여주기
기존의 공식적인 절차들-법원이나 행정부의 행정 부서, 국회의 입법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많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할 무렵, 민변 변호사들이 무료변론을 하고 활동가들이 이 문제에 천착해 파고들기 시작한 상황이 2단계에 해당한다.

3. 조건 성숙
문제가 드러나고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새로운 운동 및 네트워크가 요구된다.
한겨레21이 여호와의증인의 병역거부를 보도해서 한국에 알려진 뒤, 평화활동가들이 병역거부 문제를 다루는 연대체를 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2000년~2001년이 3단계에 해당한다.

4. 활동착수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극적인 비폭력 행동이 일어난다. 활동가들은 행동을 통해 현재 상황과 국가 정책이 보편적 가치에 위배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문제가 사회적인 의제로 인식된다.
불교신자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병역거부 연대회의가 결성되고, 오태양을 뒤이어 유호근 나동혁 등 다양한 병역거부자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병역거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정치 토론에서 대입 시험 문제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병역거부를 다루게 되었다. 2002년 이후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은 오래도록 4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5. 실패의 자각
목표가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단계다. 권력자들은 변하지 않았고, 시위 규모가 줄어들며 활동가들은 좌절하고 절망하며, 때로는 포기한다.
2011년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이 뭘 더해야 하지 몰라 힘들었던 시기가 이에 해당한다. 목표가 성취되지 않았고 우리는 앞으로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언론과 사회의 병역거부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다.

6. 다수의 마음 얻기
많은 사람들이 현재 상황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권력자들의 정책에 반대한다. 이 시기에는 일반 시민들과 기존 제도가 문제제기에 동참한다. 문제가 정치적 의제로 채택되고 사회는 대안을 구상한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세력도 등장한다.
2016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가 6단계에 해당된다. 사법부에서는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헌재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문제제기에 동참한다. 국회는 대체복무 법안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고, 안보 불안이나 군필자들의 박탈감을 선동하는 반대세력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7. 성공
새로운 법과 제도가 마련된 상황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자들은 기존 입장을 바꾸게 된다.
국회 논의를 거쳐 대체복무 입법이 실제로 이루어진 상황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8. 투쟁 지속하기
성공을 확장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하는 단계다.
병역거부 운동이 대체복무제 입법에 머물지 않고 군축과 군사안보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단계다.

이 8단계를 기계적으로 외우거나 교조적으로 이 단계만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은 이처럼 지난하고 기나긴 단계를 거쳐 성공에 이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 것이며, 현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찾는 것이다. 또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토론하며 상황 판단과 전략을 찾는 일은 운동 내부의 민주주의를 자극한다. 한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매몰되지 않고 구성원이 함께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운동의 목표와 전략을 구성원 모두가 숙지하게 되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

 

긴 호흡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빌 모이어는 힘들고 지친 활동가들을 보고 활동가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MAP를 개발했다고 한다. 확실히 MAP는 활동가들이 스스로 길을 찾고 전략을 찾고 자신의 역할과 의미를 찾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임파워링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임파워링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운동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전략적 사고를 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2011년 당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이 MAP 프로그램을 처음 했을 때, 이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회 운동의 긴호흡을 이해하고 현재 우리 상황을 분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전략을 찾는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란 게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한국 병역거부 운동이 몇 단계에 와 있는지를 찾아봤는데 활동가들마다 생각이 너무 달랐던 것이다. 누구는 우리가 2단계에 있다고 진단했고, 어떤 이는 6단계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꽤 오랜 세월을 함께 활동해온 활동가끼리도 현재 우리 상황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이렇게나 다르다는데 놀랐다. 현실 인식과 판단에서부터 이렇게 달랐으니 그동안 우리는 같이 활동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집단적으로 길을 잃고 뭘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던 게 당연하다.

2015년 평화캠프 당시 MAP를 연습해보는 캠프 참가자들

2015년 평화캠프 당시 MAP를 연습해보는 캠프 참가자들

우리는 우선 소그룹 토론으로 당시 한국 병역거부 운동의 단계에 대한 인식 차이를 좁혀갔다. 토론을 거듭하다보니 우리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었고, 어떤 것을 생략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우리가 세운 전략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사회 변화라는 것은 오랜 세월이 걸리고 무엇보다 긴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의 전략적 실패가 우리 운동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닳았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길을 잃은 활동가와 운동 단체들에게 권함

MAP는 모든 이에게 유익하지만 특히 꽤 오래 활동해왔는데 더 이상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지금 내가 가는 이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고, 그러다보니 힘들고 지치고 좌절감이 들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운동 그룹에 유용하다. 2011년 당시 전쟁없는세상이 대체복무 입법에 대해 길을 잃고 지쳐가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MAP를 하면 저절로 길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길은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고, MAP는 길 찾는데 도움을 주는 툴일 뿐이다.

마치 간증글처럼 되어버렸는데, 확실히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MAP를 통해서 우리가 가야할 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전략, 그 안에서 활동가들 각자의 역할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긴 호흡으로 우리 운동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다시 길을 잃게 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경험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MAP 덕분에 전쟁없는세상은 단체의 주요 활동으로 비폭력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트레이닝 툴을 개발하고, 여러 활동가들과 단체들이 불러주는 곳마다 찾아가 트레이닝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평택평화센터에서 열리는 평화캠프-활동가를 위한 비폭력트레이닝에서도 MAP는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평화캠프에서는 사회운동에 긴호흡이 필요한 이유를 함께 찾아보며, 운동에서 왜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판단과 결정이 필요한지를 몸에 익히는 워크숍이 진행된다. 길을 잃고 지친 활동가들이 평화캠프에 많이 와서 MAP를 체험해보기를, 그이들이 각자의 그룹으로 돌아가 활동가들이 함께 MAP를 활용해서 잃어버린 길과 전략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