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전쟁없는세상 피망팀)

 

 

갈등이나 대화법, 비폭력 트레이닝을 다니면서 처음 의뢰가 들어올 때 참가자에 대한 것들을 알아보면서 꼭 확인해보는 것이 있다. 참가자들 사이의 위계와 서열이 있는지 여부다. 왜냐하면 위계적인 구조의 위아래 사람들이 있는 경우나 심각한 서열이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유롭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나 의견들을 꺼내는데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워크샵의 분위기를 심각하게 재미없게 그리고 비생산적으로 만든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양한 조직과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중에는 어김없이 꼰대가 있었고 그 꼰대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외로움과 억울함 속에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들은 감사와 인정이 충족되지 않은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들의 고단함을 또다른 일을 벌여 극복하려고 하는 비극을 실현하고 있었다.

꼰대를 심각하게 증오하던 이들 역시 꼰대처럼 말하고 꼰대를 닮아갔다. 권력도 없는 나는, 권력이 없기때문에 그래도 꼰대가 되는 것에는 안전하다고 여기며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활동을 시작할 때 함께 어울리던 이들이 어느새 우리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꼰대들의 직급같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 나이가 예전 꼰대처럼 굴던 이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학교를 졸업한 후로 심각한 위계구조를 가진 조직을 많이 경험하진 않았던 터라 여전히 나는 어리고 젊은 편인 활동가라고 여겼는데,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 심각하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꼰대 소리를 듣기 싫은 사람들, 이미 들어서 뜨끔한 사람들, 혹은 꼰대를 돕고(?) 싶은 이들을 위해 미천한 다짐 겸 조언을 시작한다.

 

1. 내 눈에만 보이는 이유는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내 눈엔 보이는 일거리들과 문제점들이 다른 구성원들(나보다 활동 연차가 적거나 어린 활동가들)은 보지 못하냐고? 그건 내가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공유하면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른 이들 눈에도 보이게 될 것이다. 내가 가진 정보와 지식과 경험은 내가 잘나서 얻은 것들이 아니다.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얻은 것을 자신만의 것이라고 여기지 말자. 단, 경험을 나눌 때는 그것이 과거(!)의 경험임을 인지한다. 세상은 변하니까. 특히 ‘내가 해봐서 아는데~’류의 명박스러움을 피하자. 오래된 맛집도 재료와 날씨와 손맛에 따라 맛이 변하는데 하물며 다양한 것들을 아울러야하는 사회운동에서 오죽할까. 지식과 정보는 통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를 공유하면 된다.

나에게만

나에게만 보이는 게 있다는 건,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다. 내가 가진 정보와 자원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만 알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꼰대가 되기 쉽다는 위험신호임을 감지하고, 나만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들과 바로 나눠야 한다.

 

2.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이 있다. 한손에 핸드폰을 든 채로 핸드폰이 있던 자리에 핸드폰이 없다고 허둥지둥 찾는 것처럼 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지배한다. 나의 습관에 갇혀 무지를 뽐내지 말자. 또 내가 모르는 분야와 낯선 분야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아는 척 나서지 말고 자신이 완벽하지 않고 모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숨기지 말고 협조를 구하고 부탁을 하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괜히 자신의 실수를 모르는 척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말자.

 

3. 나에게 당연했던 것들이 남들에게 당연하지 않다.

나는 야근을 해도 괜찮았고 저임금도 이해했다. 나에게는 조직의 일이 자아실현이었지만 다른 세대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삶을 한 곳에 올인하는 것은 나에게만 옳았을지 모른다. 나에게는 후원자를 모으는 것은 인맥을 활용하면 되니 쉬워보이지만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나 이제야 인맥을 쌓고 있는 중인 다른 세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4. 바늘과 바늘꽂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주고 싶은 마음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려는 것이 상대에게 필요한 것일지라도 주는 방식에 따라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전해주냐에 따라서 바늘이 필요한 사람에게 바늘을 주다가 바늘로 찌를 수 있다는 말이다. 바늘은 바늘집에, 칼은 칼집에 꽂아 전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 아프게 포장하는 법을 모른다면 일단 솔직하게 물어본다. “내가 이걸 알려 주면 서로 편할 것 같은데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5. 사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꼰대스러운 일 중의 하나다.

경험을 공유하거나 전달하려할 때는 공유시스템을 만들어 이용하자. 사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나름 잘해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원하고 있는지조차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적인 관계망에서는 늘 소외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사적으로 전달하며 자신에게 감사할 것을 강요하지도 말고 상대를 낮추어보지도 말자. 자신의 경험은 개인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자원이기도 하다. 조직적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자.

사적

경험을 공유하거나 전달할 때에는 반드시 공적인 시스템을 통하자.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야 개인의 경험이 조직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조직의 경험을 개인의 자원으로 생각하는 건 꼰대가 하는 짓이다.

 

6. 내가 외로운 이유는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줘도 되는데 왜 뒷담을 하려 할까? 그건 내 앞에서 이야기하게 될 때 오게 될 불이익(비난이나 다른 복수 등)이 귀찮거나 두려워서이다. 내 욕을 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자. 누군가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지만”이나 “그렇지만” 대신 “그리고”, “덧붙여서” 등을 습관적으로 넣어보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7. 나는 희생을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이다.

왜 나를 몰라주는 걸까? 나의 성과를 무시하는 걸까? 나의 노고를 모른척 하는 걸까? 그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길 원해서, 나의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일해왔는가를.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나 자신과 나의 꿈과 나의 이상을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 그래왔다고? 그런 지옥을 후배들에게 경험하게 하지는 말고 내 선에서 끝내자. 감사와 인정을 외부에서 얻으려 할수록 유치해지고 비극이 만들어진다. 나중에 이불킥 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상을 주자. 자신의 선택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었다는 충만함을 시간을 내어 느껴보자. 당신은 민주주의와 평화와 인권과 평등과 정의가 없는 곳에서 그것들을 상상하고 실험하고 실천하고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노력을 해왔다. 그 노력이 익숙해진만큼 그 가치들을 실현하면서 그리고 즐기면서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