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아(레드북스 책방지기, 숲속과자점 대표 겸 노동자)
2018년 8월 30일. 저는 여기 평화살롱 레드북스에서 병역거부를 선언합니다.
여성인 나에게 조국은 없다. -버지니아 울프
남성들은 아직도 병역거부 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남성 병역거부자의 부인이나 여동생, 누나, 어머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견해를 예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설사 여성에게 그런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성의 가까운 친구 중에 남성 병역거부자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의 병역거부 운동 참여에 대한 이와 같은 이유들은, 여성을 필연적으로 남성에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페르다 울체시
지독하게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고 벌써 9월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작년에는 네팔이라도 자녀왔지만, 올해엔 한국에서 에어컨 없이 살며 버티느라 고생을 좀 한 것 같아요.
이 여름의 끝자락에 저는 병역거부 선언을 하려고 해요.
왜 뜬금없이 병역거부 선언이냐고요?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 책을 보다보니, 병역거부 선언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용석에게 했더니, 그럼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행사를 준비해 보자고 하더군요.
제가 병역거부 선언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20대 초반, 저는 박노자 선생님이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군대에 다녀온 남자는 안만나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큰 결심이었던 것 같아요. 거대한 군대, 병영국가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심으로 연애상대로 군대에 복무한 사람은 선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이후로 군대 다녀온 사람과 연애를 한 적이 없어요. 공익근무요원이었던 사람과, 병역거부자, 여자를 만나왔죠.
어쨌든 한 병역거부자를 만나면서 함께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을 했고, 연애를 한 기간보다 길게 활동을 했으니 올해로 8~9년 째가 되네요. 요즘은 책방일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하고 있지만요. 제가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것이 긴 시간 함께한 전없세 활동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 했어요. 전없세 활동을 하는 동안 “~의 애인”으로만 비춰지는 거에 대한 긴장감을 줄곳 가지고 있었어요. 이젠 정말 “~의 애인 숲이아”가 아니라 홀로 선 숲이아로 병역거부 선언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하겠어요? 마침 「병역거부」책도 나온 이 때.
책에서 터키 여성 병역거부 사례나 LGBT 병역거부 선언과 관련된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터키에서 여성 병역거부 선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정리된 글로 보니 확실히 배경과 상황에 대해 더 잘 알수 있겠더라고요. 터키도 한국과 같이 “남성”이 군 복무를 수행하는데 여성과 성소수자가 병역거부선언을 하는 사례가 있었고, 그게 터키 병역거부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는 군복무 대상인 여성이 페미니즘 가치를 이유로 군대를 거부한 사례도 있고요.
한국에서도 더 전에 여성병역거부 선언이 나왔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왜 아직 안나왔을까요?

병역거부 선언문을 낭독하는 숲이아와, 숲이아의 병역거부 선언에 귀기울이고 있는 행사 참가자들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에서 병역거부와 관련한 중요한 판결이 나왔어요.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현 병역법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가 없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용석이 헌재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고 나서 페이스북에 쓴 글을 봤어요. 기자가 병역거부 운동과 관련된 인터뷰 대상을 찾을 때 병역거부팀을 오랫동안 맡아온 여옥을 추천하면 꼭 병역거부자를 찾는다는 내용을 올렸거든요. 여성은 병역거부 운동의 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발언권이 축소당하기도 해요. 가부장제는 남성언어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죠. 여옥에게 전화를 해서 인터뷰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할 대상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기자도 있다고 해요. 그 기자 사례는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방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부장제에서 비남성에게 언어는 없죠.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평화 운동이라고 하는 곳에서도 이런 작동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 이에요. 무슨 기자회견이든, 강연이든 발언자 자리는 모조리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돼요. 아니면 구색맞추기로 한 명을 끼워 넣던지요. 부끄러운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평화스럽지도, 정의롭지도 않아 보입니다. 평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행사를 하려면 성평등에 대한 고려와 젠더관점으로 성비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필수인 것 같아요. 「병역거부」 책에서 앞부분에 신시아 코번이 쓴 글에서 젠더관점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어요. (책을 아직 안보신 분들은 꼭 사서 신시아 코번이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 읽어보세요. )
사실 저는 ‘만약 내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2가 아니라 1이었다면 입영통지서가 날아왔을 때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여러 번 던져봤어요. 제가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서 주민번호 1번을 부여받았다면 병역거부를 택하고 감옥에 가는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을 거에요. 저의 병역거부 선언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뭇 진지하게 병역거부 선언을 하려는 저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한국에서 흔히들 하는 말이 있죠.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지”
군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남성으로 추앙받잖아요. 한국에서 군대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비틀린 남성성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상명하복이라는 위계적 체제에 순응하도록 훈련을 하고 위계질서에 정상성을 부여하지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남성은 비정상으로 취급 받고요. 또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인 사람만 징병대상자로 삼는다는 점에서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 시스템으로 작동을 해요. 애초에 주민등록번호를 1과 2로 나누어 간성이나 다양한 성별정체성 스펙트럼 위에 있는 사람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주민증록체제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죠. 성별이분법적 주민등록 시스템에 기반해서 군대가 돌아가지만 한편으로 성별이분법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봐요. 가부장-군사주의-국가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하나가 성별이분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 네팔에 갔을 때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려고 신청서를 쓸 때 성별표기란에 “Third”라고 제3의성이 적혀 있어서 놀란 적이 있어요. 몇몇 나라는 법적으로 제3의성을 인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한국 사회는 군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쉽게 제3의 성을 인정해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병역거부를 선언하다
작년 이후로 오픈리 퀴어로 살기로 결심하고 커밍아웃을 했어요. 저는 몇년 동안 벽장퀴어로, 퀘스처너리로 살아왔습니다. 고민을 하면서 남성이고 싶지도, 여성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벽장을 나온 이후 더 적극적으로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탐구해 가는 중이에요. 지난 1년 사이 변해왔고, 제가 어떤 존재이든 저 자신을 사랑하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포착해 가고 있어요.
저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 스스로를 정체화 하고 있어요. 너무 쉽게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에 갇히기도 하지만, 이분법을 벗어나 이분법을 거부하며 사유하고 행동하고 살고있는 사람이에요. 젠더가 흐르듯 변한다는 의미의 젠더플럭스이거나 역시 젠더가 유동적인 젠더플루이드 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저의 신체와 제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 트랜스젠더인거죠.
너무 쉽게 우리는 타인을 여성으로, 혹은 남성으로 규정해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편하고 쉽기 때문이죠. 사실 이번 행사 포스터에서 제목을 봤을 때 많은 생각이 교차했어요.
“난 내가 남자가 아님을 안다. 이걸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그렇다고 여자도 아니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적어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일에 대한 많은 사람의 규칙에 따르자면, 난 여자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 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또 무엇인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 주려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무법자>
경계에서 전쟁이 일어나죠. 제 몸은 경계선이고 제 몸이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삭발을 하고 다니다보니 종종 “여자야 남자야?”하는 외침을 듣는다던지, 누군가 위 아래로 뚫어져라 쳐다본다던지 하는 경험을 많이 해요. 저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이나 차별로 피해를 입기도 하고, 퀴어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피해나 차별을 입기도 하죠. 여성이자 퀴어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도 있고요.
얼마전 안희정 무죄판결이 나온걸 보고 사법부에서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국민이 아니다”라고 선포한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 했죠. “여성인 나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원래 비국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법부에서 이렇게 명백하게 확인을 시켜줄 줄은 몰랐습니다. 저의 비국민성과 제 몸이 전쟁터라는 걸 깨닫고 나니 이게 병역거부와도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제 몸이 전쟁터인데, 더 큰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군대가 (젠더퀴어인 저를 포함한) 여성을 보호하나요?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걸까요?
수요시위 현장만 가봐도 우리는 군대가 전시에 여성을 지키고 보호하기는 커녕 어떻게 여성성을 도구화하고 성적대상화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요. 2018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불법촬영 카메라에 찍혔는지 모르는 삶을 살아갑니다. 도지사라는 권력을 지닌 인물의 성폭력과 강간에 대한 판결이 무죄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죠. 위력을 위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위계질서가 너무 당연하고 이등시민은 일등시민에게 노동, 성, 감정 착취를 당해야 하는 사회. 군사주의 사회에서 지정성별 여성인 제가 병역거부를 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원래 비국민으로 취급받는 존재가 국가의 체제에 저항하겠다는 선언을 한다는 것. 가진 것이 많은 이들보다 없는 자들이 저항하고 선언하는게 더 무서운게 아니겠습니까. 잃을게 없으니까요.
저는 저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오늘 병역거부 선언이 저만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다양한 주체들의 병역거부 선언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됩니다.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문을 새로 쓰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병역거부선언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어서 하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