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연세대 젠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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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허윤, 〈1950년대 퀴어 장과 병역법 경범법을 통한 ‘성 통제’〉, 《‘성’스러운 국민》, 서해문집, 2017;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 역락, 2018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병역을 기피하는 청년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은 소시민인 남성 주인공을 통해 부끄러움을 고백하거나 냉소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때 주체의 부끄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은 도시에서 훼손된 누이와 같은 여성들이다. 그런데 「무진기행」을 바탕으로 김승옥이 직접 각색한 영화 <안개>(김수용 감독, 1967)에서는 윤기준의 과거를 좀 더 자세히 다룬다. 윤기준은 한국전쟁 당시 징집을 피해 고향집 무진에 숨어 언제 군대가 자신을 잡으러 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윤기준이 느낀 불안은 군사화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일으킨 ‘트러블’이기도 하다.

1950년대 한국사회는 ‘적’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통일독립전쟁’의 열기로 들끓었다. “백두산 영공에 태극기를 휘날리자”는 ‘우리의 맹세’가 모든 출판물에 인쇄되던 시절이니 신성한 병역의 의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담론이었다. 1949년 개정된 병역법(법률 제41호, 1949. 8. 6.)은 총칙 1조 “대한민국 국민 된 남자는 본법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병역에 복무하는 의무를 진다”에 따라 남성 일반을 관리했다.

 

제일 영광스러운 죽음은 나라에 일이 있을 때에 군인이 되어 전쟁에 나아가 순국하는 죽음일 것이다. (중략) 다음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은 비록 그 몸이 죽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죽을 자리에서 (중략) 겨우 생명을 보존한 상이군인들이니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제일 영광스러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 이승만, 〈상이군인 제대식에 보내는 치사〉, 《대통령 이승만 박사 담화집》, 공보처, 1953, 169쪽.

 

대통령 이승만은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과 상이용사를 가장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칭송했다. 하지만 이 위계화를 따를수록 남성은 죽거나 장애를 입고, 남성성을 훼손당한다는 모순이 생겨난다.

태평양 전쟁에 이어 한국전쟁을 경험한 청년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호적을 위조해 나이를 속이거나 다른 사람의 제대증, 신분증 등을 가지고 다녔다. 대학 진학생 60퍼센트가 군대 기피자라든가, 미군의 일을 도와주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신문기사로까지 전해진 것은, 병역을 피하는 것이 1950년대 남성 청년들의 주요 관심사였음을 보여 준다. 1955년 《서울신문》에 연재된 염상섭의 소설 《젊은 세대》는 대학생 남성 청년들을 중심으로, 병역기피 문제를 이야기하는 대목을 삽입한다.

 

“아니 실례지만 이 형은 이중호적은 아니시겠지?”

하고 정진이가 허허거리니까

“그 어떻게 길이 있으면 나두 한다리 꼈으면 하지만 그나마 길이 있어야죠.”

하며 상근이도 껄껄 웃는다. 상근이는 내년 봄에 학교를 나오면 자기 아버지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가호적 신청은 여기서 언제든지 받아들이니 염려마세요.”

원룡이가 옆의 수득이를 돌아다보며 불쑥 이런 소리를 하고 웃는다.

– 염상섭, 《젊은 세대》, 민음사, 1987, 218쪽.

 

가난한 집의 장남인 수득은 30살이 넘은 것으로 나이를 속인 가호적을 가진 상태이다. 병역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친구인 원룡은 수득이 나이가 많다느니, 가호적 신청은 여기서 하라느니 하며 농담을 한다. 소설 속 남성 청년들은 미국 유학이나 이중호적, 가호적 등으로 병역을 기피할 방법을 모색한다. 1950년대 중후반 대학생의 병역 유예 제도를 폐지할 움직임을 서두르고 나서면서 국민개병제가 강화되고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나 당사자들은 병역에 불공평함이 없이 사를 버리고 개병주의의 원칙을 실현하기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라”고 종용하는 한편 “대학 기피자는 이를 철저히 단속하고 엄히 취급하여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1) 그러나 이러한 ‘협박’은 청년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전 협정 이후에도 북진통일을 강조하는 국가의 목소리는 계속되었고, 곧 전쟁이 발발한다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따라서 청년들에게는 병역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병역법 강화를 골조로 한 1957년 법 개정을 가져온다.

 표지

<젊은 세대> 표지

병역법을 통한 전국민의 잠재적 범죄자화

제2차 전부개정 병역법(법률 제444호, 1957. 8. 15)은 병역 복무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한다. 1957년 병역법에서 벌칙 항목 강화는 병역법 위반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반증한다. 당시 호적을 허위로 기재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기피한 자가 하루 만에 100명에 달할 정도였고, 1957년 병역법 개정 이후 3년간 경북 지구에서만 병역기피자 5,600여 명을 고발했다.2)

그러나 병역법이 더 실효를 가졌던 것은 사회를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할 때였다. 불심검문이나 징병검사 강화와 같은 병역법 단속 항목은 정치 문제를 포함한 여타 이슈에도 적용되었으며,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밀접한 감시를 정당화했다. 보안법 위반 투쟁을 전개하던 민주당 인사들을 병역법 위반으로 검거하거나3), 자유당의 선거 당선을 위해 “경찰관이 선거운동을 하다가 증거가 잡히면 곤란하니 민간인과 1대 1로 하되 ‘병역법 위반’, ‘밀주’, ‘도벌’, ‘도박’ 등 사소한 것이라도 입건 구속하겠다고 위협을 하라”는 구체적 지시가 서장으로부터 내려왔다는 고백도 있었다.4) 국가가 병역법 강화를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역법은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국가를 방위한다’는 본래 목적에서 멀어져 다른 의도로 활용되었다. “병역 위반 사실의 증거를 완전히 얻지 못하면서도 위반자로 규정해 경찰에 연행하는 사실이 허다”5)할 만큼 병역법은 국민을 통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국적(國賊)의 시대, 지워지는 이야기들

이런 상황에서 군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자는 국가의 상징 질서를 파괴하는 국적이 되었다. 손창섭의 소설 〈혈서〉(《현대문학》, 1955)는 “자기는 왜 죽지 않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삶을 ‘낭비’하는 세 청년을 그린다. 늘 발표하지도 못할 시를 쓰는 규홍과 취직을 못하고 있는 달수, 한 쪽 다리를 잃은 준석은 죽음에 가까운 예외상태를 살아간다. 이들은 훌륭한 군인도, 훌륭한 대학생도 되지 못한다. 매일 시를 쓰지만 제대로 완성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규홍이나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고학생 달수, 군대에 갔다 다리를 다쳐 집안에만 있는 준석은 한 집에 살며 기묘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상이군인인 준석은 대학생 달수를 향해 “이 육실할 자식아. 너는 국적이다. 병역 기피자니까 너는 국적이나 같아. 이 자식 어디 견뎌봐라. 내 당장 경찰서에 고발하구 만다. 너 같은 건, 너 같은 악질은 문제없이 사형이야, 사형. 내 당장 가서 고발하구 올 테다.”라며 폭언을 퍼붓는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악질적 인물은 상이군인인 준석이다. 준석은 규홍의 경제력에 기대 살면서 같은 처지인 달수를 ‘병역기피자’라며 비난하고 무시한다. 규홍의 시쓰기에 대해서도 비웃는 것은 물론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창애를 임신 시킨 것도 준석이지만, 결혼하거나 책임지려는 일말의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국적보다 더 악질인 군인의 시대, 히스테리에 가득찬 준석마저도 생산적인 국민은 될 수 없기에 1등 국민은 될 수 없다. 이 훼손된 남성들을 지우고 쓰여진 것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신화다.

<혈서>가 실려있는 단편 전집 표지.

 

각주
  1. <개병주의를 강조〉, 《동아일보》 1956.3.22.
  2. 경북 지구 병사구 사령부에서 약 2년간(1958년 1월부터 1960년 3월 현재까지) 도내 병역기피자 5651명을 집단 고발했다.(〈병역기피한 자 5600명〉, 《동아일보》 1960. 4. 2)
  3. 민주당 간부인 민의원 의원 이만우 씨 장남 이상만 씨가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대학 재학 중 소집을 받고 훈련소에 갔다 신체 이상으로 귀향조치를 받았으며 그 후 위암을 앓은 환자를 신체검사 미필을 이유로 긴급 구속 조치했다.(〈보안법 반대투쟁에 보복?〉, 《경향신문》 1958. 12 .29)
  4. 4월 14일까지 현직 경찰관으로 재직하던 지서 주임 및 사찰계 형사가 재직 당시의 선거 간섭 공작을 폭로하였다.(〈경찰의 선거간섭공작을 폭로〉, 《동아일보》 1958. 4. 26)
  5. 이성재는 박인수와 문선명을 나란히 비교하면서, “국민 사기를 순자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판한다. 이후 문선명은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되었으나 나이를 고친 것은 사실이지만, 병역을 기피할 목적은 아니었다고 판단, 무죄가 되었다. (〈기피자단속 신중히 하라〉, 《경향신문》 1958.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