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늬(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피스모모 활동가)
도대체 ‘세계평화게임’이란 어떤 게임일까?
어떤 게임이기에 그 게임의 여정을 담은 책의 제목이 <10대, 평화를 디자인하다>일까?
평화를 게임으로 아는 것이 가능한 걸까?
게임을 통해서 평화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가능한 걸까?
과연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책의 서평쓰기를 제안 받고 책을 실제로 읽기도 전에 나는 ‘세계평화게임’과 이 책 제목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 게임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에 갖는 자연스러운 물음이기도 했을 것이지만, 더 솔직한 내 마음은 ‘세계’, ‘평화’, ‘게임’ 이 어떻게 만나 교육과 연결되는 것일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신뢰가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평화게임의 창작자 존 헌터는 1978년부터 세계의 복잡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문제들을 국가 간의 협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을 수업에 도입해 지금까지 게임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10대, 평화를 디자인하다>는 존 헌터의 40여 년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몇 달 전, 서평쓰기를 제안 받고 책의 첫 부분을 읽었을 때 존 헌터의 시각이 너무나 이상적으로 느껴져 책을 읽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존 헌터가 제공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대부분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참여자들이 지혜롭게 게임을 평화롭게 이끈다는 예시들이 많았다. 한참 청소년 참여자들과의 평화교육에 고민이 많았던 나에게 존 헌터 경험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나는 끊임없이 실패를 맛보고 있었으니까.
2018년이 가기 전 꼭 서평을 쓰겠노라 약속하고 몇 달 뒤 다시 책을 읽었을 때(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일부러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본문을 읽기 전, 나의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한 번역자 ‘지우’의 ‘옮긴이 후기’를 먼저 읽었다. 지우는 전쟁없는세상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파코루도라는 평화게임 회사를 차려 평화와 사회 정의를 다루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 게임, 평화, 교육에 관심 있는 지우가 세계평화게임 진행자 과정을 수료한 수고를 생각하며, 교실 중앙에 배치되는 크고 투명한, 여러 층으로 나누어진 아크릴 판의 지구를 떠올리며 세계평화게임을 진행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지우와 세계평화게임에 대해 아주 짧게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는 세계평화게임에서 평화적으로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라 했다. 어쩔 때는 핵무기로 다른 나라를 공격하려는 참여자를 만나 곤혹스럽다고도 했다. 지우가 옮긴이의 후기에도 토로했지만, 이 게임이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잘 실현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아 진행하면서도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나는 궁금했다. 세계평화게임의 어떤 지점이 지우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 왔을까.
평화교육 진행자의 역할을 보여주는 책
<10대, 평화를 디자인하다>의 가장 큰 매력은 책을 읽는 동안 독자를 세계평화게임으로 초대해 참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각 장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참여자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해 준다. 이 설명으로 하여금 독자는 참여자들을 알게 되고 그 교실에 함께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다시 말해, 책은 독자를 세계평화게임의 관찰자로 초대한다. 이는 독자가 단순히 책을 읽는 역할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게임의 진행 상황을 관찰하면서 참여함으로서 좀 더 적극적인 독자가 되는 것에 기여한다. 물론 참여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떤 관계를 서로 맺고 있는지는 전적으로 존 헌터의 시각과 관점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참여자들과 존 헌터 사이에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충분히 그의 설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존 헌터의 설명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먼저 특정한 분석에 기반을 두지 않고 최대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존 헌터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야 진행자로서 어떤 심정이었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설명하며 상황에 대한 첨언과 진행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 방식은 독자가 충분히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이후에 자신은 진행자로서 어떻게 대응했을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존 헌터는 참여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순간이나 평화로운 방법보다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순간 진행자로서 개입하는 것이 좋을지 혹은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나눈다. 세계평화게임을 진행한 지 40년이 넘은 진행자로서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한 채 고민을 한다는 이 솔직함은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평화교육 초보 진행자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며 또는 더 나은 진행자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그 물음을 꾸준히 던져 준다.
또한 존 헌터의 이러한 솔직한 모습은 참여자와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교사는 답을 알고 있어야만 하는 위치에 서 있어야 했는데 이는 학생과의 관계를 형성할 때 확고한 위계질서를 갖게 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생 사이에 권력을 작동하게 한다. 때로는 답이 없음,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서 존 헌터는 ‘선생님’으로서 자신이 갖게 된 권력을 내려놓으려 노력하며 게임을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 존 헌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 교실의 ‘통제권’을 넘긴다. 바로 이와 같은 존 헌터의 노력은 세계평화게임을 끌고 가는 힘, ‘빈 공간’을 마련한다.
폭력과 평화를 사유하는 힘, 빈 공간
빈 공간. 각 장마다 그 장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이 책에서 혹은 세계평화게임에서 존 헌터가 강조하고 싶은 키워드는 바로 ‘빈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존 헌터는 본문에서 빈 공간을 참여자들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화가 중단된 상태,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활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표현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또 다른 생각이나 활동, 난관에 봉착한 상태를 넘어가고자 하는 순간, 스스로 혹은 공동으로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순간이 될 수 있겠다. 존 헌터는 이 빈 공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교실 한 가운데에 아크릴 조형물을 세워 둠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참여자들은 그 조형물을 둘러싸고 원으로 앉는다. 익숙한 교실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새롭게 구성하는 것, 이 역시 참여자들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존 헌터는 정해진 답이 없음을 참여자들에게 알려줌으로서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진행자 역시 답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면서, 참여자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게임을 평화적으로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정해진 답이 없음’에서 오는 짜릿함도 있겠지만, 게임이 난관에 봉착하면 막막함 역시 크다. 이 막막함에서 오는 빈 공간, 이는 참여자들을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하고, 게임에 참여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세계평화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번역자 지우(가운데). 공간의 가운데 지구를 형상화한 구조물을 두고 아이들이 빙 둘러 앉아 게임에 참여한다. 가장 아래층은 바닷속, 그 위층은 땅과 산과 강, 그 위에는 하늘, 그 위에는 우주다. 아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 속에서 지구에 닥친 여러 문제들–전쟁, 빈곤, 자연재해, 무력갈등 들을 해결해나간다.
나는 이 ‘빈 공간’의 개념이 내가 속해 있는 평화교육단체 피스모모의 ‘돌아볼 시간, 돌볼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시간의 부재로 인해 다층적인 폭력이 발생하는데, 피스모모는 이 폭력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함을 알린다. 잠시 멈추어 나를 돌아보고, 내 옆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살피며 시간의 부재가 앗아간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 보기를 제안한다. 이 제안은 단순히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교육 현장의 시공간의 변화에서부터 발생한다. 일렬로 줄맞추어져 있는 책상을 굳이 수고를 들여 들어내고, 원의 형태로 의자를 재배열한다. 잔잔한 혹은 기분 좋은 음악, 원 한가운데를 밝혀 줄 꽃이나 촛불, 다채로운 천으로 꾸며진 공간은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린다.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자연스럽다고 믿어왔던 것,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혹은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스스로 멈추어 생각하도록 혹은 공동의 지혜를 촉진하기도 한다. 참여자들은 그 시공간을 매우 어색해하기도 하지만 빈 공간이 내어주는 긍정의 침묵 속에서 어떤 참여자는 모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제안을 하며 모두에게 ‘도약’의 순간을 제안하기도 한다.
세계평화게임이 남긴 고민들
세계평화게임의 이런 흥미로운 지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몇 가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나는 평화교육 진행자로서 어떻게 게임을 이끌어갈지에 대한 기술적인 물음인데 첫 번째가 진행자와 참여자 간의 두터운 신뢰관계 형성이며 두 번째가 참여자의 의지와 동기여부이다. 존 헌터에 따르면, 게임의 진행자와 참여자 간의 두터운 신뢰 관계 형성은 게임에 있어 중요한 조건이며, 참여자 역시 수많은 규칙이 존재하는 이 복잡한 게임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세계평화게임은 이제 그 여정을 시작했다. 세계평화게임이 소개되는 방식은 주로 학교나 청소년센터에서 외부 진행자를 초대해 청소년들과 게임을 하게 된다. 이 조건에서 사전에 진행자와 참여자 간에 얼마나 탄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이다. 또한, 다양한 대안교육의 시도는 매우 훌륭하고 필요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새롭게 시도되는 외부교육에 대한 피로감이 어느 정도 쌓여있는 상태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하고 많은 규칙을 이해하며 이어갈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물론 게임이라는 매개체가 주는 흥미가 다른 교육보다 훨씬 더 집중도 있게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게지만, 대부분 비자발적으로 시작한 참여자들과 8주에서 10주 동안 게임을 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다른 고민의 지점은, 굉장히 현실적인 정치 상황을 반영해 고안된 세계평화게임 그 자체이며, 정치적 상황을 풀어가는 역할은 각 나라의 총리, 국방부 장관,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고위급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팅은 참여자들이 의사결정을 갖고 있는 역할을 게임에서 경험해 봄으로써 정치적 사안이라고 보이는 것을 자신의 일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강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경험하고 논의할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이 계속 머물렀고, 정책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개인들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총리나 대표자가 핵무기 공격을 결정할 때, 그것에 반대하는 혹은 찬성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나 적극적인 참여, 정책결정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민사회, 전문가, 활동가와 같은 역할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갖는 우려의 지점에 대해 게임을 진행해본 진행자들이 지혜로운 답변을 나누어 주리라는 믿음은 갖고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편이 불편했다. 이 물음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직접 게임 진행을 관찰해 본다거나, 게임을 좀 더 깊숙이 이해하는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평화게임 참여자들이 각자의 나라를 대표해서 평화조약을 맺는 문서. 정치와 전쟁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경험해보는 것은 이 게임의 큰 장점이지만, 평화의 행위자로써 국가 엘리트들만 등장하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포함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평화교육 진행자들에게 <10대, 평화를 디자인하다>를 추천하는 이유
그럼에도 나는 자신 있게 <10대, 평화를 디자인하다>가 평화교육이나 통일교육, 대안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많은 진행자 혹은 교사들이 읽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세계평화게임은 참여자들에게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정치나 외교 등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사안을 교실 안에서 다루기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세계평화게임은 학생들에게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촉진하며 이를 통해 대립보다는 공동의 지혜를 모색하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질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또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책에 담겨진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역량이 집단 안에서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평화게임을 직접 실행하기 어렵다면, 나는 존 헌터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빈 공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얼마나 일상에서 빈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일상에서 그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자각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덜 노력해도 얻어지는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고 내려놓을 것인가, 우리는 얼마나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빈틈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촘촘히 짜인 일상에서, 이와 같은 빈 공간을 끊임없이 만들려 시도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평화를 함께 디자인하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에 평화로운 상상력을 충분히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