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시대가 변하니 예비군 안보교육도 변하는 모양이다. 2019년 3월에 다녀온 6년차 예비군 훈련의 안보교육은 지난 5년간의 그것과 정말이지 판이하게 내용이 달랐다. 달랐던 것 하나, ‘북한’과 ‘김정은’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달랐던 것 둘, 공공연한 위협을 지운 자리에 ‘국뽕’을 가득 채웠다. 작년 4월 말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상호대결 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면서 군대도 이 흐름에 발을 맞추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노력하고 있는 걸까.
2019년 이전의 안보교육, 북한의 위협
적어도 내가 입대한 2011년 이후부터 2019년 이전까지 안보교육은 뻔할 뻔자였다. 먼저 6.25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이때 베트남의 ‘보트피플'(베트남전쟁 당시 보트에 몸을 의지해 베트남을 탈출하던 사람들)을 함께 보여주며 우리도 우리 안의 ‘종북세력’을 간과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 다음 천안함 사건을 보여주고, 연평도 포격을 보여준다. 박수 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나오고, 3대 세습 독재의 공포를 보여준다.
이 다음부터는 현역이냐, 예비군이냐에 따라 분기가 생긴다. 현역이면 현역 장병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국민들(대체로 부모세대다)의 인터뷰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예비군이면 예비군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국민들(대체로 젊은 여성들이다)의 인터뷰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예비군일 경우에는 여기에 추가로 2015년 목함지뢰, 확성기 사건 이후 전투복과 전투화를 인증하며 ‘불러만 주십쇼’ 하던 예비군들의 SNS 포스팅들을 함께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도발의 정도가 더 강하고 위협적이었던 천안함, 연평도 당시에는 이런 인증들이 없다가 왜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야 생겼을까?)
새로운 안보교육, 국뽕
이 뻔한 레퍼토리들이 2019년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바뀌었다. 이야기는 ‘난민’으로 시작한다. 6.25 전쟁 당시 난민이 된 한국인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는 ‘새벽’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장 어두워진 이후에 새벽이 오는 것이라는 듯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어떻게 전후 폐허 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빠질 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일군 경제가 빛나게 성장해 ‘세계 1위’를 이룬 통계를 인용한다. 세계 1위인 것으로 세 가지 정도가 인용되는데, 그 중 하나는 ‘인터넷 접속속도’다. 이외에도 나올 만한 것들이 나온다. 손흥민? 그렇다. BTS? 그렇다. 갤럭시S10? 세상에, 내가 예비군 훈련을 받던 날은 아직 정식개통도 안 된 시점이었지만 이것마저 나왔다. 정리하자면 ‘위대한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것이 이 날 안보교육의 1/3을 차지했다.
시청 대상이 일반 국민이나 태극기부대라면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시청 대상은 바로 예비군이다. 전역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우리를 불러다가 쓸데없는 훈련이나 시키고 별 맛도 없는 도시락 주고 훈련비랍시고 꼴랑 5천원 쥐어주며 집에 보내는 행태에 세상 모든 귀찮음과 짜증을 느끼고 있는 예비군.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려면 아무래도 역시 “왜 예비군이 필요한가”를 역설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가장 적절하고 간편한 것은 ‘일상적 위협’의 강조다. 언제 전쟁이 닥칠지 모르므로 예비군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서의 레퍼토리가 남용돼 왔다.
주체 없는 위협이라는 이상한 안보 논리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북한과는 화해 무드이고, 김정은은 우리 군의 통수권자와 함께 판문점을 넘나드는 외교 파트너가 된 2019년 3월에, 무슨 수로? 군의 고뇌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들은 여전히 북한을 남한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믿을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커리어에 큰 위협이라고도 믿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북한과 김정은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일상적 위협’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고뇌에 빠진다.
고뇌 끝에 택한 답이 뭐였을까? “주변 국가의 위협”이었다. “평화롭다고 믿어도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습니다. 평화와 위협은 늘 공존하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국가의 정세에 언제나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받쳐주기 위해 ‘역사적 사례로서 위협’을 보여준다. 물론 그 사례로 등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북한’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침착함이 빛을 발휘했다. 심지어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조차 단지 ‘이미지’로서 동원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이것들은 북한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 변화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쥐어짜진 것이라는 느낌은 그래서 들었다.
요컨대 위협은 있었으되 위협을 가한 주체는 없는, 그런 요상한 안보교육이 ‘2019년 문재인 정부 시대’에 탄생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교육용 영상자료와 별개로 편성되는 마무리 안보교육이 이번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예비군 훈련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늘 예비역 장성을 불러다가 말도 안 되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프로그램 없이 훈련이 마무리됐다. 자기들이 통제하는 영상자료와 달리 ‘사람’은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흥미의 정도와 무관하게, 영상자료의 변화나 강사 교육의 폐지나 썩 중요한 변화는 아닐 것 같다. 어차피 예비군의 절반 이상은 자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