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강정마을 평화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없는세상은 2019년에 딸기(강정마을 평화활동가), 유민석(철학 연구자), 문아영(피스모모 대표), 은유(작가), 랑(일러스트레이터) 다섯 분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군사주의, 퀴어, 예술행동, 평화교육, 평화운동을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균열
내가 열심히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때가 있었다. 좋은 대학, 집안 형편에 알맞은 국립대학만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안정되게 삶을 꾸려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처음 균열이 생긴 것은 열아홉에 가 보았던 광주에서였다. 518을 앞둔 주말 광주로 향했다. 햇볕에 바래 얼굴 형태마저 사라져 버린 행방불명자들의 사진, 계엄군에 의해 다치고 죽어간 사람들의 피투성이 된 몸들은 비록 액자 속 사진이었지만 몸서리쳐지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전 잠깐 들려 보자던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려는 구사대, 경찰들의 충돌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뿌연 연기 속에 날아다니던 돌멩이, 벽돌들 그걸 피해 공장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막아선 사람들… 아마 그곳에 있던 시간은 수십 분 정도로 매우 짧았겠지만 그날의 사건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머릿속에 박혔다. 소위 말하면 밀레니엄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며 떠들어 대던 2001년의 봄날,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내 앞에 나타났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이런 일을 모르는 걸까. 내가 갖은 이 질문은 이후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삶의 방향이 바뀌니 평온했던 일상은 구역질나는 위선으로 가득했다. 알면 알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다. 효순이 미선이 두 여중생들의 내장이 다 터져버린 포스터를 쳐다보며 분노하기는커녕 월드컵이 한창인데 잔치분위기 망친다는 ‘시민’들의 차가운 눈초리는 가슴속에 박힌 바늘이 됐다. 세상에는 알면 알수록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의 목격자로 불의한 것을 세상에 말하는 증언자로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일들의 겪는 사람은 아니었다. 관찰하고 목소리를 함께 내는 사람, 연대하는 사람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변화
그러다 강정에 와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나의 몫을 느끼게 됐다. 집회하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투쟁이 하루의 일과가 되고 이곳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나누는 것이 나의 직업이 되었다. 우리와 싸우는 경찰들만이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경찰-법원-자본으로 연결되는 권력의 카르텔을 몸으로 느끼게 됐다. 정부의 정책 결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보상을 빌미로 주민들을 이간질시키고,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빨갱이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더 가슴 아픈 국가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온몸으로 분노를 쌓아 가는 강정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내가 하지 않는 일 중 하나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일인데, 그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건이 있기 전 혹은 그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있을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뉴스의 전과 후가 머릿속에 더 자세히 그려질수록 용기 내라 말하는 것조차 두렵고 외면하고 싶었다. 뉴스조차 보지 않았던 시간을 보낸 후 나 역시 그 폭력의 굴레, 그것이 가져온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가폭력의 목격자, 증언자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당사자로서 강정에서 살고 있던 것이다. 내가 이곳에 살며 겪는 곤란함을 생각하니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내가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 아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질문을 퍼붓고, 더 자세히 묻고, 쉽게 해결을 말하고, 마음을 다잡고 말하는 사람에게 너를 모두 이해했다는 듯 섣부른 위로를 건네고….. 말할 수 없이 많은 실수들이 뒤통수를 뜨겁게 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알리겠다는, 당신을 공감한다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그들에게 재현시켜 왔는가.
듣기, 말하기
지난 4월 둘째 주 ‘2019 광주평화기행워크숍’에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의 초대로 강정에서 평화교육을 하는 호수와 함께 진행자로서 참여하게 됐다. 이 워크숍에는 4.3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유족,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 여순 항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들, 5.18 당시 ‘주남마을’의 학살 과정에 참여한 계엄군과 생존자가 모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자리가 워크숍의 한 세션으로 준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에,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이 워크숍에 참여를 했다. 이 자리에서 호수는 ‘이야기를 하러 오는 분들은 평생의 용기를 모아 이 자리에 오는데, 정작 듣는 사람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며 좋은 듣기 동료가 되어 보자고 하면서 트라우마 치유의 과정을 따라가며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 상실한 것을 기억하고 슬퍼하며, 사회적 관계를 재연결하는 과정을 함께 따라오면서 고통을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용기를 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들어야 한다. 안전함이라는 것은 ‘물리적 폭력이 없음’ 뿐 아니라 고통의 당사자가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용기를 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끼어들거나 섣불리 해결을 말하지 않고 그들이 됐다고 느낄 때까지 말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함께 하는 것.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폭력의 악순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때로는 말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인내하며 듣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연대한다. 누군가 고통을 말할 때 그 누가 ‘지겹다’ 하여도 우리가 듣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 역시 다시 용기를 내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듣고 말하며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