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쉔 王郁萱
평화시민으로서 병역거부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만출신이고 제주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평화시민 왕유쉔이라고 합니다. 제주에서 살아온 9년 동안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현장활동을 하며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일도 연습해 온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병역거부를 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나누며, 함께 참여하시는 친구들을 통해서 병역거부로 가는 여정을 내딛어 보겠습니다.
저는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하는 것보다 처음에 자기소개 할 때 이야기했던 평화시민으로서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일단 이분법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을 나누는 일은 다양성을 묵살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은 저에게 좀 맞지 않은 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이런 이분법을 적용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합니다.
대만과 한국에서 모두 실시해 온 징병제도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분법으로 나눠진 생물학적인 여성은 징병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상조차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권리도 오랫동안 인식되지 못 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병역거부를 하는 행동과 운동에서 생물학적인 여성 그리고 이분법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 함께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주체성을 선명하게 나타내지는 못하거나 주체성을 잃은 채로 (예를 들어 지지하는 자나 동참하는 자로서) 역할을 해왔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법으로 나눠진 사회에서 징병대상이 아닌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으로도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당사자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틀을 떠나서 다양한 정체성들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저는 “평화시민”의 정체성으로 병역거부 선언을 준비했습니다.
이 병역거부 행동을 통해 이분법으로 나눠진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에게 그리고 다른 다양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들에게 모두 평등하지 않고 고통을 주는 이 구조를 거부합니다. “남자가 만든 전쟁에서 여자가 희생자가 된 이미지”로부터 꼭 벗어나고 싶습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 “울지마, 남자인데…”,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인간이 되지” 같은 말들은 많은 사람, 심지어 여성의 입에서도 나오는 흔한 말입니다. 이 작은 폭력을 전쟁의 씨앗이라고 봅니다. 전쟁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으로만 보기가 어렵습니다. 전쟁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고 전쟁에서 그리고 전쟁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 모두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이분법적인 사회에서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 그리고 다른 다양성을 가진 존재들에게 부당하게 사회적인 역할과 기대를 강요하는 구조에서 그런 역할과 기대에 맞춰서 살아남기에 모두가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것을 함께 인정을 하고 애통해하며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병역거부 선언을 통해서 전합니다.
이제 저의 정체성이라고 표현한 평화시민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만든 평화시민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사람이다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살며 감수성과 상상력 그리고 창조력으로 흔들리는 정체성을 가꾸며 폭력을 변혁시키는 노력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 정체성의 이름과 정의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제가 저의 병역거부 선언을 쓰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보석 같은 깨달음들을 정리해서 만든 것입니다. 병역거부를 하는데 이렇게 애를 써서 정체성의 이야기 하는 이유는 권력자들에게 정체성을 만드는 권력을 양도하는 것은 군사주의를 키워가는 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이 만든 정체성의 틀 안에 산다는 것은 군사주의와 함께 하는 승리자의 역사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승리자의 역사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이 지워지고 영웅과 적을 만들게 됩니다. 승리자의 역사로 국가공동체를 세우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에 맞는 흔들리지 않은 정체성의 틀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만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도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註1) 혹은 그 정체성의 틀에 딱 맞는 선택적인 아픔을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註2)
아픔이 나눌 수 없다면 정체성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 얼어버린 현상은 세대 이어가는 (역사의) 트라우마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며 군사주의를 합리화시킬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나라와 국경이 바뀌어도 계속 군사주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힘을 군사주의에 주게 되었지요. 그 힘은 우리가 양도 해주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안전함을 추구하는 방식도 지속적으로 군사주의와 국가안보를 의지하게 합니다.
국가안보는 국민조차도 못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안전을 추구하는 일을 특권화시키며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봅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며 환경과 사람을 희생시킵니다. 국가안보가 국민을 지킨다고 치더라도 국민만 지키는 국가안보라서 국경 안에 다양한 이유로 정착하고 있는 여러 존재들을 묵살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국경 밖으로 나가 있는 국민은 더욱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정체성의 틀에서만 살아가려는 것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폭력적으로 인간사회를 부자연스럽게 찢어버리는 일이라고 봅니다. 국가와 국가안보는 흔들려서는 안 되고, 만약 이것이 흔들리는 경우에는 국민에 속하는 이들은 국가안보 범죄자로 죄를 물을 것이고 국민이 아니라면 아예 정착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평화시민으로 살기 위해서 제주에서 군사주의에 저항하고 폭력을 변혁시키는 실천을 하다가 입국거부를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조사와 재판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상태로 이 땅에 정착했는지 한마디도 묻지 않았고, 저를 그냥 국경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이유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입국거부가 중지된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주지 않았습니다. 언제 또 다시 그럴 수 있는지도 당연히 말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비국민인 제가 당한 “국가안보”의 경험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전쟁으로 인해서 예멘 친구들이 한국에 들어온 것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 말은 국적으로 다양성을 품은 공동체를 찢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딸은 한국 국적이지만 저는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서 살아야 ‘우리 모두 다 먼저’라고 여겨질 수가 있을까요? 어느 나라 군대도 다양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의 국가안보도 우리에게 안전함을 주지 못합니다. ‘국민’과 같은 흔들리지 않은 정체성, 군사주의와 국가안보 자체가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틀에 맞춰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서 군사주의와 함께 공생하는 흔들리지 않은 정체성을 흔들어보며, 다양한 아픔을 공감하며, 자기다움을 외치는 다양한 정체성과 만남으로서 사랑하며, 군사주의로 인해 끊겨진 세상을 다시 연결하고자 평화시민으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합니다.
마지막으로 군사주의에 저항하는데 왜 꼭 병역거부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자면, 오랫동안 군사기지에 저항하는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에서 받게 된 선물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군사기지에 오가는 군인들은 저처럼 선한 마음 갖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함께 군사주의에 저항해온 동료들까지 징병제도 때문에 잠깐 우리가 저항하고 있는 군사기지에 들어가서 군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까지도 군대에 입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데에 어떤 특정그룹의 책임만 물으려고 하면 지금까지 존재해온 많은 고통과 책임들을 외면하는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실은 징병제 역시 이 사회가 겪은 고통에 반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그 고통과 책임을 나누려는 노력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고통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고통을 나누는 방식에 대해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사기지는 군인들이 닫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함께 닫게 해야 하는 것이고, 군사기지 안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총을 내리라고 말하기 전에는 제가 먼저 총을 내려야 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제 손에 실제로 총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 폭력의 구조를 깨지 않은 이상 제가 바로 그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든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병역거부 선언으로 무기를 내리겠습니다.
이 병역거부 선언문을 쓰게 만드는 여정에서 많은 영향을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군복무 아닌 평화복무의 꿈을 꾸는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군사기지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예를 들어 활동가, 현지주민, 새로운 정착민, 군인, 경찰, 공무원, 노동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등 다양한 존재들에게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나눠진 아픔들이 저를 행동하게 만든 용기가 되었습니다. 또 평화시민으로서 살게 된 과정에서 나의 감수성, 상상력과 창조력을 깨워주신 많은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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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어느 평화세미나에서 만난 베트남출신이고 한국에 유학하러 온 베트남 활동가가 질의응답시간에 나눠준 말을 떠올랐다. (“베트남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 때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나요?” “별로 관심 없어요. 베트남에서 배운 역사는 베트남이 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역사관점에서 베트남 민간인의 희생에 대해서 관심 없어요.” ) 강한 나라의 의식 혹 정체성의 틀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만 막아버리는 것은 아니라 자신의 아픔도 말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註2) 제가 관찰하는 한국사회의 예를 들자면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는 나라이다.” 조선까지 가기 전의 한국역사는 신라, 백제, 고구려 등 나라들 나눠져 있었고 서로에게 향하는 전쟁/침략은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 혹은 한국이라는 나라 세우기에서 그 것을 군사주의와 아픔의 역사라고 잘 보이지 않은 것 같이 느낀다. 특정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선택하지 않은 트라우마 있고 선택한 트라우마도 있다.
또 한국근현대사에서 중대한 제주43사건 과 광주518 민주항쟁을 예를 들자면 43에서 한국군이 작용한 초토화 작전은 일본군이 난장대학살 때 써먹었던 전법이다. 난징대학살에서 일본군이 그 전술을 사용하기 전에 중국역사 속에서 이미 자주 썼던 견벽청야(堅壁清野)라는 전술이었다. (출처: 제주 43 바로알기 P26) 또 “미국국방정보부의 기밀문서에 광주 518의 잔혹한 진압은 전두환의 베트남전 경험 때문 이라고” 언급 되어있다. (출처: 만남 그 자체가 선물이다/ 김동원) 이어가는 군사주의로 일으킨 비극들이 왜 가끔 전쟁이고 가끔 국가폭력일까요? 제가 볼 때는 그냥 단순한 전쟁인데 왜 부자연스럽게 국가폭력이라고 할까? 아픔을 말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다가 못 막게 될 때는 흔들리지 않은 정체성의 틀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습관이기도 하고 권력자에게 필요하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국민에게 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 공동체를 흔들리는 일이니까 말이다. 군사주의와 함께 사는 자들이 역사의 트라우마를 선택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