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일러스트레이터)
피켓만 들면 보호색을 작동시킨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돼 본 적 있는가? 유인물을 나눠주려고 서 있는데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자신을 피했던 경험은? 여기 간단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팁을 소개한다. 전업 활동가뿐만 아니라 짬짬이 데모에 참여하는 프로시위러, 1인 활동가들도 활용할 수 있다.
1. 일상에 액션 끼얹기
불특정 다수에게 주목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전형적인 모습에 이질적 요소를 얹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켓팅이라고 하면 판넬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렇다면 이 방법만 피해서 피켓팅을 기획해보자.
‘피켓팅’이 ‘피크닉’이 된다면 데모는 즐거워 질 것이다. 위의 사진은 연남동 잔디밭에 둘러앉아 함께 피켓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제작과정을 노출시켜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도 ‘저기 저건 뭐지?’ 하는 궁금증이 들도록 했다. 우리는 그저 피켓을 옆에 세워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피켓을 살펴보았다. 멈춰 서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시민이 먼저 활동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피켓팅이라니!
길거리 피켓팅의 가장 큰 목적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메시지 전달이라고 볼 때 이 방법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아래의 네 가지 팁을 기억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공원으로 나가보자.
- 2절지 크기의 큰 우드락 판넬과 종이를 준비한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슬쩍 보더라도 메시지가 잘 읽히는 크기여야 한다.
- 손글씨나 손그림은 인쇄물에 비해 훨씬 친근하고 부드럽게 전달된다. 우리의 강력한 메시지를 손글씨와 손그림으로 잘 포장해 보자.
-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택한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에게도 잘 보이도록 시야가 트여있는 곳이 좋다.
-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이든, 1인 활동가이든 직접행동을 할 때에는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자. 직접행동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영원히 남고, 공유되기도 쉽다.
2. 피켓팅에 유머 끼얹기
다음은 더 간단한 방법이다. 한 명의 활동가는 피켓을 들고, 다른 한명의 활동가는 모션을 취한다. 모션을 취하는 사람은 미끼상품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역할을 한다. 모션이나 장소를 고려할 때에는 사소한 것이라도 피켓의 내용과 연관성을 갖도록 한다.
캠페인은 장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캠페인을 기획할 때에는 먼저 참여자가, 나 자신이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문제에 압도되어 소진되지 않도록 즐거운 방식으로 투쟁하자. 데모는 고달프지만 예술은 즐겁다.
3. 공유지에 예술 끼얹기
2017년 안산 시민들은 세월호 안전공원 건립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당연히 건립해야 한다는 입장과 땅값이 떨어지는 ‘납골당’을 내 집 근처에 세우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제 세월호는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록 304명의 희생자들이 안치될 봉안시설의 부지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둘이서라도,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문제 상황을 은유할 수 있는 상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팽목항과 광화문광장을 가득채운 노란 리본들이었다. 그 애도의 공간을 안산으로 가져와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오후 일찍부터 저녁까지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노란 리본을 묶고 또 묶었다. 두세 시간을 묶다보니 공간이 노란리본으로 둘러싸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만의 공간에서 애도의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발언 시간을 가졌다. 근사한 노래나 멋진 그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시선을 묶어두기 위해 사소하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애도의 노래를 들어 주었다.
인간의 시선은 변화를 잘 포착하도록 진화했다. 작고 연약한 포유류였던 인간은 안전한 피신처를 찾거나 식량을 채집하고, 위협을 경계하기 좋은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 현대인의 눈도 마찬가지 이다. 매일 다니는 길에서는 거리의 모든 것이 풍경처럼 무심코 스쳐가지만, 평소에 없었던 이질적인 것이 배치되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시선이 꽂힌다. 하지만 그 이질적인 것도 일주일, 한 달 동안 반복되면 역시나 배경이 된다. 같은 이유로 장기 농성장에는 시선을 환기시켜 줄 지속적인 이벤트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시선이 가던 농성 모습이 계속되면 다른 모든 풍경들과 같이 익숙해져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직접행동에서 시각 연출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유는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변화이건, 기괴한 변화이건 상관없다. 지금 당장 당신의 의제를 돋보이게 해 줄 직접행동을 생각해보자. 얼굴에 검정색 물감으로 X 표시를 크게 그려도 좋고, 길바닥에 누워 판넬을 들고 있어도 좋다.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투쟁현장에 갈등요소를 녹여줄 위트와 예술을 살짝 얹어보자. 사람들은 당신의 메시지를 더 많이 보고,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