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병역거부자 홍정훈의 항소를 기각하며 다시 한 번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이렇다.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즉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이어야 하는데 홍정훈의 경우는 ‘삶의 일부만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경우 신념의 실체 알 수 없거나,신념이 가변적 유동적인 경우 주장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주장한 신념이 타협적 전략적으로 변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진실한 양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주 9월 19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예비군훈련 거부자 김형수의 재판부 또한 김형수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0시간의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형수가 제출한 다양한 활동 증거가 병역거부의 양심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연결된다 하더라도 진실된 양심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병역거부자의 양심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은 지난 대법원의 판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위에 판결문 인용에서도 드러나는 바, 병역거부의 양심은 신념이 깊고 진실되며 삶의 일부분이 아닌 삶 전반에서 절대적인 준칙이어야 하고 가변적이거나 유동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 기준에 입각한 일련의 판결에서 재판부가 보여주는 공통된 모습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로 양심의 판단 기준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로 지나치다는 것이다. 양심을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제도가 안착되기 전인 대체복무제 도입 초창기에는 현실적으로 좀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화된 기준은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대체복무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엄격한 심사는 소위 “양심을 빙자하는 병역기피자”를 가려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다. 또한 양심이 가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은 국회의 대체복무제 입법과 충돌할 수 있다. 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비롯해 현재 발의된 여러 법안이 예비군 훈련 거부를 인정하고 있고, 유엔 등 국제 사회의 입장 또한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시기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양심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 병역거부자의 생애 전반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양심이 형성되어 온 맥락을 살피기 위한 것이어야지, 절대적인 기준을 내세워 과거를 재단하기 위한 것이면 안 된다.
두 번째로 현재 재판부의 기준은 양심의 자유를 보통의 국민들이 누리는 권리로부터 배제시킨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 모든 국민의 보편적 권리다. 보통 사람들의 양심은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긴 하지만, 재판부의 기준처럼 삶의 전반에 절대적인 준칙으로 작용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고 유동적이지 않은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여러 국면에서 자주 흔들리고 유혹받고 때로는 양심을 스스로 배반하다가도 특정한 순간에 발현되어 때로는 목숨보다 더 강하게 지키기도 하는 것이다. 재판부의 현재 기준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보장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인 사람들일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모든 국민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취지와는 어긋나게 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양심의 자유라는 개념이 비전향 장기수나 병역거부 이슈에 주로 등장하며 마치 감옥을 불사하는 대단한 신념의 소유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제라도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서 양심의 자유가 자리매김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양심의 자유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그것을 권리로서 적극 옹호하는 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재판부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 번째 문제점은 재판부의 유죄 판결로 인해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점이다. 작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며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를 할 수 있도록 국회가 대체복무 법을 입법할 것을 결정했다. 법원의 유죄 판결은 대체복무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심사위원회에서 판단을 받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는 것이고 이는 작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와도 어긋나는 일이다. 재판부는 병역거부자들이 향후 독립적이고 공정성이 담보된 심사위원회에서 심사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온전히 수행함으로서 그들의 양심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의 보편적인 권리로서 양심의 자유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법원은 진지하고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2019년 9월 27일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