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강정평화활동가/ 평화바람)
아주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나게 됐다. 몇 번의 인사가 오간 후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헤어질 무렵 강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나왔다. ‘요즘 강정은 어때요? 가본 지가 오래 돼서…’ 나는 간결한 열 문장으로 끝나는 강정 근황을 전했고 우리는 웃으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강정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베스트5를 뽑자면, ‘요즘 강정은 어때요?’, ‘힘들텐데 괜찮아요?’, ‘이제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제주가 고향이세요?’,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인데 뭐니뭐니해도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요즘 강정은 어때요?’이다.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이 질문을 받으면 서운함과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자주 얼굴이 굳고 한숨이 나오면서 머리카락 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화끈화끈 하기도 했다. 상황을 이야기 하다 보면 여러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다시금 떠올라 괴로웠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 또다시 뜨거운 뭔가가 스멀스멀 가슴팍에서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다른 사람들이 강정과 비슷한 경험을 겪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재현해 다시 경험해야 했다.
최근에 와서야 마음이 답답하고 얼굴이 굳고 목구멍이 꽉 막혀오는 것이 내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적 징후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내가 왜 이러지?’ 했던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요즘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주저되기는 하지만 감정을 재현해 겪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간적으로 그 일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통의 경험을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평화훈련에서의 연습이 도움이 되었다. 평상시와 달라졌을 때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멈추고 환기해 보는 것, 현재의 마음을 표현해 보는 것. 그러면서 트라우마의 징후를 흘러 나가게 하는 것. 물론 열 번 중 둘, 셋은 실패하고 내 화를 다른 사람에게 쏟아낼 때도 있고 어찌할지를 몰라 안절부절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경험을 다루는 연습을 한다고 해도 운동의 현장에 있다 보니 반복되는 것이 있다. 첫 번째는 비슷한 상황을 실제로 다시 겪는 것이다. 작년 국제관함식이 강행되었던 것과 같이 국가에서 또다시 공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갈등도 그렇다. 더 큰 대의를 위해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명분, 지금 당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르는 힘이 작동할 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낀다.
두 번째 반복은 주변의 환경이 변하는 것이 영향을 주는 것이다. 군인들이 더 이상 거리끼지 않고 마을을 활보 하거나, 큰 트레일러에 들여오는 이상한 물건을 보거나, 미군함들이 들어와 우리의 우려를 현실로 보여주는 그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공간의 변화, 환경의 변화는 사라지지 않고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변화를 억지로 인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구럼비가 사라지고 투쟁의 비통함 속에 지어진 해군기지를 그것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2016년 준공 이후 해군기지를 바라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여전히 억지로 인정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가장 큰 변화는 제주의 2공항이 강행되고 그곳이 공군기지로 쓰이면서 해군기지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 상황을 다시 겪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무척 두렵다.
세 번째 반복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다. 강정이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것, 평화는 이상적이라고 하는 말들이다. 기억을 재생하고 절망을 재경험하며 이야기 한 끝에 결국 우리는 이렇게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앞에 선 벽을 만나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일들은 이곳에서의 절망이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강정에서 겪는 고통의 경험은 삶의 방식에, 운동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지나온 길을 의심케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질문은 활동을 지속하는 힘이 된다.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와 그것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고통을 통해 연대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성에 기반 한 평화를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해본다. 연대를 위해 고통이 전시되기보다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지길 기대한다. 왜 사람들의 인생이 갑작스러운 국가권력의 억압 속에 송두리째 흔들려야 하는 것인지 그 구조의 재생산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질문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권력을 갖지 못한 억압받는 사람들보다 권력을 갖고 있지만 억압받는 사람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즘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다.
오키나와의 재일조선인 평화운동가 유영자는 ‘스스로의 삶을 묻기 시작할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라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의 기억은 끝없는 질문을 촉발한다. 왜, 어디에서부터 이 일이 시작되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중단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화된 상처는 어려움을 주지만 질문을 통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삶에 대한 질문 없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폭력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하나의 지지대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언제나 올곧게 해내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시도해 볼 수 있다. 시도할 수 있는 한 평화적인 방식의 삶 구성하기 위한 도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살아가기 위해.